외국같던 풍경 그대로.
이모집에 도착했다.
어릴때는 남동생이랑, 커서는 엄마랑 둘이서 오가곤 했는데 그나마도 생활을 하느라 왕래를 하지 못한지 오래되어서 어색할 것 같았다. 뭐 여행하는데 여기까지 엄마가 따라오나 싶기도 했지만 이모네 있는 동안 일종의 버퍼존으로써 엄마의 존재가 감사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는 흔히 생각하는 외가댁의 외할머니 같았다. 웹 어딘가에서 '할머니 배고파요=지금 저는 기아상태로 굶어 죽을 것 같습니다.' 로 번역되는 글이 고대로 적용되었다. 식도락인 이모네 식구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를 양질의 음식을 먹여 1키로라도 찌워서 보낼까 연구한 사람들같았다. 바다가까이서 최고의 회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게 배려했고, 위장에서 목구멍까지 차오른 음식뒤에는 항상 과일이 따라서 나오곤 했다.
친척언니는 영국인인 형부와 같이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시간이라도 내서 한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노력하다가 이모랑 싸움이 나길 일쑤였다. 괜한, 기분좋은 무안함이 들기도 한다. 이모부는 그냥 무난무난하게 친척언니에 비해 조용하게 살고 있던 내가 스쿠터를 타고 전국을 돌고있다니 대단하다 하면서 신기해 하셨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 대화거리가 많지 않았던 내가 천상 여자쯤으로 여겨지셨었나 보다. 사실 그런 사람 없는데.
이틀쯤지나 밀린빨래를 끝내고 개인하늘을 보았다. 펑크를 때워야했다. 시골에 들어가도 오토바이 고치는 곳은 하나씩 꼭 있던데 영 찾아지지가 않는다. 제철로 꽤나 먹고살만했던 곳이라 오토바이보다는 자동차를 많이 이용하나보다. 시청근처에 오토바이 센터를 하나 찾았다. 센터가 주변에 많이 없었던 관계로 두어명 오토바이를 고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인장이 뭣때문에 왔냐고 묻는다. 펑크라고 하니 대수롭지도 않게 타이어를 돌려보더니 영 펑크난 곳이 안보이는 지 세제섞인 물을 분무기로 뿌린다. 한군데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드라이버로 구멍을 좀 넓히고 고무검같은 것을 집어넣은 다음 끝을 잘라낸다. 그리고 바람을 다시 집어 넣는다.
"달리면 압력으로 얘가 바퀴에 퍼져서 붙을 거예요. 만원입니다."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