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합체로봇
포켓몬 세대에게 고라파덕으로 익숙한 오리너구리는 귀여운 외모를 가졌지만 진화론적으로 가장 미스터리 한 동물이라는 것을 아는가? 수달과 오리, 비버의 외형적 특징을 섞은듯한 이 동물은 번식의 과정도 특이하다. 흔히 포유류는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조류는 알을 낳고 젖을 먹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엄연히 포유류로 인정받은 오리너구리는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녀석이 가진 능력도 사기적(?)인데, 우선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부리의 미세 자기장을 감지하는 제6감각으로 사냥을 한다. 이 능력을 활용하여 물속에서 가재와 같은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하여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하였다.
두 번째, 꼬리는 낙타의 혹과 같아서 지방을 저장하는 곳으로 사용한다. 혹독한 주변 환경으로 먹이 사냥이 어려울 땐 꼬리에 저장해 둔 지방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나갈 것이다.
세 번째, 수컷은 발톱에 신경독을 가지고 있어 작은 생물들에게는 생명을 빼앗을 만큼 매우 치명적이다.
여러 동물들의 장점을 짜깁기한 것 같은 이 동물의 모습에서 회사에서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겹쳐 보였다. 나는 개발 및 제품 기획 부서와 협업하는 직군에서 종사하고 있는데, 스펙이 이것저것 추가되어 초기에 잡은 컨셉과는 멀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경쟁사에서 좋은 기능이 나오면 컨셉과 맞지 않아도 신제품에 추가되는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입사 초기엔 열심히 고민한 컨셉이 무너지는 것에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답답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회사는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는 걸 느낀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과정은 엉망진창이 더라도 결과물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되어 있고, 절대 회사는 제품이 망하도록 두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잡은 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그것이 답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중간에 방향을 틀 수 있는 융통성이 회사에서는 더 중요한 것 일지도 모른다. 변신합체로봇 같은 오리너구리가 2억 년 동안 살아남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