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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관매니저 Oct 14. 2024

[위플래쉬] 찰리 파커가 아니어도 돼


  "3년만 죽었다고 생각해!" 대한민국 입시과정을 거쳤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만 하라는 말에 기계적으로 책을 펼쳐 들고 나면, 이후로 다시 쓸 일이 있을까 싶은 온갖 기호들이 눈을 어지럽혔죠. '왜 공부를 잘해야만 하지?'하는 물음도 잠시,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면 최면에 걸린 듯 멍해졌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걸 포기하면서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으레 돌아오는 답변은 '한 가지만 독하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몇 마디 안 되는 문장에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바로 '성공은 최고가 되는 것'이라는 관념입니다.


'최고'라는 말은 마법과도 같다


   우리는 '최고'에 열광합니다.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나왔던 '1등밖에 기억 못 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처럼 우리는 최고가 아니면 쳐다보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제품이 최고라며 광고하고, 축구팬들은 누가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는지를 비교합니다. 올림픽에서 주력종목에서 순위권을 놓치면 올림픽 정신과는 상관없이 선수들을 인신공격하곤 합니다. 최근 각종 오디션프로그램과 순위결정프로그램이 TV에서 승승장구하는 데에도 이런 '최고'를 가리는 데에 익숙하고 흥미를 느끼는 시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최고가 아니라고 불행해야 할 당위성은 없다


  하지만 최고가 아니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이 빛날 수 있듯이 2인자, 3인자, 4인자 모두 각자의 의미가 존재합니다. 내가 축구를 좋아한다 해서 반드시 호날두나 메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뛰는 친구가 나보다 축구를 잘한다 해서 내가 축구를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내 전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나, 그것이 남과의 비교로 이어져 '저 사람은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데.....', '저 사람은 내 나이대에 이런 성공을 이루었는데....' 하며 자책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던 일일지라도 '최고'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을 갉아먹는다면 이는 좋은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최고가 되지 못해 불행했던 살리에리


  살리에리 증후군 Salieri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1985년에 개봉한 영화 <아마데우스>의 흥행으로 나타난 말로써,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하며 평생 2인자일 수밖에 없었던 살리에리의 극단적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절망에 가득 찬 살리에리가 신을 원망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죠.



    신이시여, 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었는데,
 주님께선 제게 갈망만 주시고 절 벙어리로 만드셨으니,
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제가 음악으로 찬미하길 원치 않으신다면 왜 그런 갈망을 심어 주셨습니까. 갈망을 심으시곤 왜 재능을 주지 않으십니까.
- 아마데우스 대본 中 -



  살리에리를 왕궁악사의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를 만난 후 그 원동력은 큰 독이 되어 그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살리에리가 조금만 더 자신의 삶에 만족하였다면 어땠을까요? 최고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위플래시는 찰리 파커가 되기 위한 앤드류와 찰리 파커를 만들어 내기 위한 플레처의 광기를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죄어오는 압박감을 느낀 것은 비단 JK. 시몬스의 명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 역시 앤드류였기 때문에, 쉽게 낙오자가 돼버리는 스튜디오 밴드 한가운데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찰리 파커로 키우기 위해 극한으로 압박하는 플렛처와 찰리파커가 되기 위해 여자친구도 차버리는 앤드류의 모습은 우리네 교실과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극한까지 몰아붙여졌을 때, 사람은 무너지기 십상입니다. 순수히 드럼을 좋아하던 앤드류는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약에까지 손을 대며 무너지고 맙니다.

INT. ROAD TO DUNELLEN - GREYHOUND BUS -
우리는 그레이하운드에 있다. 또 다른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앤드류: 밥-바-드-드-다-밥... 바다-밥-밥-밥...
앤드류다. 이어폰을 끼고 고개 숙여 악보에 집중하고 있다.
카라반 음악에 맞춰 큰 소리로 박자를 세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 비닐로 쌓인 약들이 보인다.
그 약들은 앤드류가 기숙사에서 나와 파티에서 교환했던 것과 동일하다
승객들이 그를 힐끔 바라본다. 대체 이 미치광이는 누구지...?
- '위플래시' 대본 中 -



   결국 대회날에 있었던 사고 이후로 앤드류는 드럼을 그만두고 플렛처는 교수직에서 잘리게 됩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둘은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어느 정도 선이 있지 않냐는 앤드류의 물음에 넥스트 찰리파커는 좌절할 리 없다고 대답하는 플렛처와의 이 대화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마지막 10분의 드럼연주씬보다도 더 중요한 지점입니다.


앤드류: 하지만 선이란 게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찰리 파커가 찰리 파커가 되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잖아요.
플렛처 : 아니. 왜냐면 정말 찰리 파커라면 그 정도로 좌절할 리가 없거든
- '위플래시' 대본 中 -  


  플렛처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평범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기에 '왜 저렇게 살아야 하지?', '꼭 저렇게 해야만 하는가?' 하고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자기 계발보다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싶고, 도전하는 것보다 안주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습니다. 15년 전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오는 지원과 민재의 대화는 평범한 우리를 위안합니다.


지원 : 그런 애들 있어. 처음부터 80점에서 시작하는 애들. 우리 같은 사람은
         기껏 30점에서 시작해서 죽자고 해도 겨우 70점인데 그런 애들은 처음부터 80점이지.
민재 : 내가 70점짜리로 보이냐?
지원 : 그것도 죽고자 해서 70점 아니니? 살리에르의 슬픔이지.
민재 : 살리에르?
지원 : 아마데우스란 영화 안 봤어? 거기 살리에르 나오잖아. 아무리 해도
         모차르트를 이길 수 없었던 사람. 살리에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야.
         모차르트랑 경쟁을 안 하는 거지 모차르트란 인간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세상에는 살리에르가 99퍼센트니까, 모차르트 때문에 너무 마음 쓰진  마.
- 드라마 <카이스트> 중 -


  우리는 각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멋진 사람들입니다. 찰리파커가 아니면 어떤가요. 천재는 천재대로 인정하고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면 됩니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 맙시다. 명심합시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 중의 챔피언'입니다.


  *참고자료*

  1) Whiplash Screenplay

  2) Amadeus Script

  3) SBS 드라마 <카이스트>

  4) LA중앙일보, '위플래시' 한국서 흥행 열풍…'강압적 교육' 내용 공감, 2015.4.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293289





p.s 이 리뷰는 2016. 7. 19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옮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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