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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관매니저 Mar 11. 2023

호텔의 유휴공간, 영화관이 되다

국내 최초의 호텔 시네마, 케이트리호텔 X 모노플렉스 오픈기

바야흐로 호캉스의 시대다. 코로나가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4~5성급 호텔 객실과 뷔페는 예약이 힘들 정도로 꽉꽉 들어차고 있다고 한다. 호캉스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4~5성급 호텔이 주는 프리미엄함이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따지는 요즘 트렌드와 잘 맞았기 때문일 것다.


4~5성급 호텔에는 3성급 이하의 호텔에서 보기 어려운 인피니티 풀 수영장, 럭셔리 스파, 아이스링크, 피트니스 센터, 필라테스 스튜디오 등의 다양한 부대시설 다. 프리미엄한 것만큼 가격이 상당히 높지만 고객들은 이미 큰 마음을 먹고 호캉스를 즐기러 왔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좌) 시그니엘 서울 수영장, (우) 그랜드하얏트 서울 아이스링크 / 출처: 호텔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그 많은 프리미엄한 부대시설 중에 아직까지 '영화관'은 없었다. 호텔 측에서 영화관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4~5성급 호텔에서는 영화관에 대한 니즈가 강했고, 실제로 CGV 등 멀티플렉스와 여러 접촉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 제약과 손익적 문제에 부딪혀, 제휴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영화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6~7m 이상의 높은 층고에 최소 3개관 이상에 각각 80석 이상의 좌석을 설치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더불어 별도의 영사기 설치 공간도 필요하고, 또 어찌어찌 영화관이 만들어진다 해도 영화관을 운영하기 위해 많은 인원과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호텔에서 영화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단순히 부대시설 하나를 추가하는 것 이상의 문제였기에 사실상 진행이 불가능했다.


8개관이 있는 CGV수원의 영사실 전경 / 출처: 끼뉴스 http://gyeonggi.egloos.com/4528315


하지만 3년 전 홍콩의 서버 회사인 GDC에서 초소형 영사기 Supra-5000 개발 뒤부터 영화관 크기에 대한 제약이 거의 사라졌다. 이 초소형 영사기는 우리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쓰는 일반적인 프로젝터보다 조금 더 큰 수준에 불과하고, 레이저 영사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 램프 영사기의 문제인 열 해소를 위해 필요했던 별도 배기 공사도 필요가 없다. 아래 사진처럼 간단하게 천장에 달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매우 편리하다.


초소형 영사기 Supra-5000의 설치 사례 / 출처: GDC 공식 홈페이지


모노플렉스는 3년 전 바로 이 Supra-5000 영사기를 독점으로 공급받아 소형 컨셉 영화관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 유일의 소형 영화관 솔루션을 보유한 것이다. 기존의 영화관 설치를 위한 공간 제약 조건이 없어짐에 따라 이제 호텔에도 쉽게 영화관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숙박업과 영화관업의 경기가 좋지 못했던 상황에서 호텔 측에 영화관을 만들자고 하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22년이 되어 코로나로부터 한 숨을 돌리게 되자 바로 첫 호텔 영화관 후보가 연결되었으니, 바로 일산 킨텍스에 위치한 '킨텍스 바이 케이트리호텔'이었다. 2021년 5월에 오픈한 킨텍스 바이 케이트리호텔은 킨텍스에 많은 행사가 있는 만큼 422개나 되는 객실을 보유한 비즈니스호텔이다. 훌륭한 루프탑과 비즈니스 센터로 이용하는 공간이 있어, 이 공간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분위기의 루프탑 바 The Oksang / 출처: 케이트리호텔 측 제공


킨텍스 바이 케이트리호텔 총 지배인님의 강력한 의지로 논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옥상은 야외다 보니 콘텐츠 수급 등의 어려움과 계절과 날씨에 따른 운영 변동 문제 등이 있어, 2층에 위치한 실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정식 영화관을 만드는 것으로 최종 협의되었다. 영화관 이름은 '케이트리호텔 X 모노플렉스'로 결정되었다.


층고 3m에 18평짜리 유휴공간이 영화관이 될 수 있을까?


9월 말 오픈을 목표로 공정표가 작성되었다. 국내 최초의 호텔 시네마를 오픈하는 만큼, 프리미엄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고급 리클라이너 의자와 모던한 디자인의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호텔 이용객들이 호텔 내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사이니지가 필요했다.


지난 4월에 새로 입사한 디자이너의 훌륭한 솜씨로 각종 사이니지가 멋지게(또 빠르게!) 만들어졌다. 그동안 디자이너가 없어 디자인에 대해 1도 모르는 필자가 파워포인트로 사인물을 그리고 크몽에서 디자이너를 찾아 의뢰하는 식으로 일했던 것을 생각하면 퀄리티면에서도, 속도 면에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좌) 리클라이너 의자 후보, (우) X배너 디자인 시안


새로운 사업에 있어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지점은 바로 인허가다. 모노플렉스 브랜드를 운영하는 (주)알엔알은 영사 전문기업으로서 국내외 2천 개가 넘는 스크린을 설계, 설치했기에 인허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화관을 만들 때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데,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하는 시설 문제라던가, 담당자에 따라 같은 법령이어도 적용에 있어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양시청에 영화관 설치 가능 구역인지를 최종 확인받고, 설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영화관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시야각이다. 앞사람의 머리에 가려 영화 하단부가 가리거나 자막이 보이지 않는 등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객석단 높이와 스크린의 위치, 의자의 폭 등을 잘 계산해 배치해야 한다. 모노플렉스의 설계 담당자는 영사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분인데, 설계도를 그리실 때 보면 과거의 사람들이 피카소가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경이로움을 느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관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야각 / 출처: [작은 영화관 조성과 운영 매뉴얼], 영화진흥위원회 2014. 04. 11 발행


비교 견적을 통해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고,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가 끝나면 시청에 인허가를 받게 되고, 인허가 승인이 나면 영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과정이 그렇다 해서 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인허가 승인 직후에 영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 시간에 예매 시스템 등록과 PG 가입, 운영 매뉴얼 작성, 가격 체계 및 운영 방식 결정 등 사전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가격은 일반 영화 30,000원, 키즈 영화 15,000원으로 설정했다. 호텔이라는 공간과 리클라이너 의자가 주는 프리미엄함에 음료와 스낵을 기본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격에 대한 저항을 낮추었다. 추가적으로 숙박자들에 대한 할인 정책, 숙박과 영화를 한 번에 할인 예매하는 숙박패키지, 푸드박스가 제공되는 푸드패키지를 구성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


다음은 현장 직원 교육 차례였다. 모노플렉스 사업은 영화관에 대해 1도 모르는 사업주에게도 영화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영화관 설치, 인허가, 콘텐츠 수급, 정산 등 복잡하고 전문적인 부분은 모노플렉스가 모두 대행하고, 파트너사는 고객 안내, 티켓 인쇄, 검표, 청소 등 단순한 현장 운영만 하면 되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에 케이트리 호텔 직원분들에게도 영화관 현장 운영 교육을 2일간 진행했는데, 확실히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습득력이 매우 빠르셔놀랐다.  


공사가 완료되고, 소방안전점검 및 전기안전점검을 진행했다. 모든 서류가 완비되고, 시청 담당자에게 최종적으로 인허가를 받았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상영관등록증이 나왔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가입을 진행하고, 예매를 오픈했다. 또 하나의 모노플렉스 영화관이, 국내 최초의 호텔 프리미엄 시네마가 탄생했다.


https://www.mk.co.kr/news/it/10470607


국내 최초의 호텔 프리미엄 시네마가 된 케이트리호텔 X 모노플렉스


22년 9월 29일 첫 상영을 시작으로, 매월 수백 명의 관객이 케이트리호텔 X 모노플렉스를 방문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예상외로 키즈 영화 관객이 많다는 것이었다. 매월 30~50% 관객이 키즈 영화에 몰렸는데, 15,000원이라는 가격에 영화+스낵 or 음료가 제공되고 프리미엄 시네마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자녀를 둔 주민분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밖에 꾸며놓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고객이 많았다. 영화를 보지 않는 숙박객도 지나가다 사진을 찍고 간다고 하니, 레드카펫과 포토존, 시네마 간판이 주는 느낌이 괜찮나 보다.



※고객 인스타그램 후기

https://www.instagram.com/p/CkQRi-qPk5l/?utm_source=ig_web_copy_link

https://www.instagram.com/p/Cn9J_-xPw9k/?utm_source=ig_web_copy_link



화덕피자와 치킨샐러드, 계절과일, 샌드위치가 제공되는 푸드 패키지의 경우 영화 금액에 1인당 15,000원을 추가하면 선택이 가능한데, 전체 고객의 약 8% 정도가 선택했다. 양이 꽤 많고 맛도 있어서 좋은 구성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남는 음식에 대해 포장하기 좋도록 박스형으로 제공되는데, 예쁜 식기에 제공되어 사진 찍기 좋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좌) 기본 제공 스낵과 음료, (우) 푸드 패키지(2인)


호텔 시네마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에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가지고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유명한 5성급 호텔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5~6월 중 영화관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 이곳까지 오픈하게 되면 아마 국내의 모든 5성급 호텔에는 모노플렉스 영화관이 기본 부대시설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23년은 모노플렉스의 본격적인 확장의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케이트리호텔 X 모노플렉스 홍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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