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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보 Jun 09. 2022

0. 엄마! 고양이는 죽어서 고양이 별에 가나요?

헤어짐은 느닷없이.


 



 쪼깐이가 떠난 지도 삼일이 지났다. 우연인지 그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나 대신 울어주기라도 라는 걸까.

 

 나는 울 시간도 부족한 아기 엄마. 펫로스를 느낄 여유도 주지 않는 나의 30개월 아들은 "쪼깐이 어디 갔어?" 하고 천진하게 연신 묻는다. 쪼깐이 달님한테 갔어.


 아기들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모든 이가 죽음이란 관념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다른 얘기지만 아기를 보다 보면 뭐든지 저절도 얻어지는 것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의 걷기라던가, 물병을 딸 때 손가락을 이용하는 방법조차도 당신이 아기였을 시절 기백 번의 연습 끝에 얻어낸 결과임)

 헝가리 출신 심리학자인 마리아 네이기는 아이들이 인식하는 죽음은 3단계에 걸친다고 말했다. 먼저 5세 미만의 아이들은 죽음을 '부재의 개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여긴다. 이후 6~9세가 되면 죽음이란 다시 되돌 일 수 없는 것이란 걸 인식하지만 반드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 이후 10세 전후가 되어서야 죽음이 아무도 회피할 수 없고 되살아 날 수 없다는 걸 인지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기가 그나마 아는 단어들을 고르고 골라 나의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해 쪼깐이의 부재를 설명해야만 했다. "쪼깐이는 아주 많이 아파서 무지개 타고 달님한테 갔어. 거기에선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거래." 그래도 잠시 뒤 아기는 때 묻지 않은 말간 눈으로 또 이렇게 묻겠지. "왜?"

 이 시기 아기들은 도대체 왜 왜? 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도 어린아이처럼 묻고 싶다. 왜 착하디 착한 쪼깐이를 이리도 빨리 데려갔는지.


 그러나 나의 슬픔은 온전히 나만이 가져가면 될 일. 나는 집안 곳곳에서 슬픔을 느끼면서도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기쁘고 움직이면 배가 고프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맛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아이가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무서워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써 내려 본 것이다. 그 무릎 덮혔던 따듯한 온기, 적당히 묵직했던 무게, 부드러운 감촉이 생생하다.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침대 발치를 좋아했던 쪼깐이가 늘 있던 그 자리에 누워있을 듯하다. 아니,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쪼깐이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했고 그 아이의 장례식까지 치러 주고 왔지마는 머리가 쪼깐이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싱크가 안 맞는 동영상 같달까.

 

 그도 그럴 것이 참 느닷없는 이별이었다. 우리의 불행은 주말 아침 불청객처럼 정신 차릴 새 없이 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 보니 고양이 배가 불룩한 것이 아닌가. 중성화된 수컷 고양이가 배가 부를 일이 뭐가 있겠어 살이겠지. 대수롭지 않게 며칠 넘어가자 점점 배가 더 불러오는 것이다. 그때부터 공포가 찾아왔다. 마냥 복스럽던 큰 배가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보이는 것이다. 수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다 해도 이 것은 복수가 차는 것이란 걸 짐작하게 했다. 세 마리의 고양이를 9년간 키우며 고양이가 이토록 크게 아픈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집 근처의 동물병원을 예약해 쪼깐이의 검진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혈액 검사 결과와 복수로 가득 찬 복부초음파 사진을 보고서도 나는 치료만 하면 다시 쪼깐이의 배가 작아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 생각했다. 이 아이가 내 곁을 떠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죽음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못 볼걸 본 마냥 애써 부정했다. (죽음을 대하는 그런 태도가 나와 그 아이의 남은 시간을 더 짧게 만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완치 예정 없는 치료는 그 후로 매일 병원을 드나들며 한 달이나 지속되었다. 쪼깐이는 점점 말라가 5.5kg였던 몸무게가 3.5kg까지 줄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는 치료에 카드값은 무섭게 올라갔고 우리 부부는 현실적인 문제와 쪼깐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기를 재운 뒤 매일 밤을 싸우며 눈물로 조용한 전쟁을 치렀다.

복부초음파를 자주 찍어야 해서 털을 민 쪼깐이


 그러나 9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낸 쪼깐이는 치료 시작 후 겨우 한 달을 못 채우고 우리를 떠났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기는 그 이유로 느닷없는 가족 여행을 가야 했고 목적지는 전북의 '오수 펫 장례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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