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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보 Jun 13. 2022

2. 한 여름밤 별 같은 찰나의 빛, 고양이 인생

냥 선생님, 그대처럼 아쉬운 미련 없는 듯이


 쪼깐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오전 , 병원에서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쪼깐이 보호자님. 죄책감 느끼지 마세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기 때문에 단단히 잡고 있던 내 감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쪼깐이를 보낸 후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병원에서 차갑게 식었을 아이.  

 전화를 끊고 나자 갑자기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 병원이 무리한 마취, 수술을 시킨 게 사망원인이 아닐까? 어떤 실수가 있어서 쪼깐이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게 아닐까? 왜 드라마에 보면 사망선고를 내리는 의사를 붙잡고 막 화를 퍼붓는 그런 씬이 있지 않나. 의사는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고.


 

 하지만 난 이 주치의가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알고 있다. 쪼깐이 주치의가 나에게 전화했을 때 어떤 용기가 필요했을지 나는 안다. 그 또한 심히 애석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쪼깐이의 병을 알아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 준 분이었다. 적어도 쪼깐이는 이 병원에서만 편안해했다. 그에게 분노하는 마음이 든 것은 자연스러운 애도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많은 반려인들이 동물병원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병원의 과진료이다. 아픈 곳을 직접 말을 못 하는 친구들을 치료하기란 의사도 보호자도 힘든 과정으로, 어떤 질병이라 명확히 확신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해당하지 않는 케이스를 삭제해가며 병을 유추해나가는 식으로 진행되간다.

 그 과정에서 보호자는 병원이 확실하게 무슨 병이다 말해주지 않고 이리저리 검사비용만 과다청구한다고 생각된다. 정보는 또 얼마나 많은가. 출처가 불분명한 곳에서 수집한 정보로 병원 주치의의 진료를 의심하기 시작해 여기저기로 병원을 옮겨 다닌다면 결국엔 아이의 치료에 골든타임을 놓쳐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고양이들은 아픈 곳을 잘 숨기기 때문에 보호자가 병원에 가려고 마음먹은 경우엔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평소 건강검진으로 자신의 성향이나 반려동물과 캐미가 맞는 병원 주치의를 찾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은 두 고양이들이 같은 이유로 병원을 다녀야 한다면 무리한 치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맞추고 인사할 것이다. 고양이들에게 나는 너의 집이고 내가 끝까지 지켜주겠노라 말해주고 싶다.


 반려동물들과 우리의 인생은 참 속도가 안 맞다. 우리는 아직 중간만큼 왔는데 이 아이들은 벌써 거의 다 왔다 한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조만간 곧 아끼는 친구의 죽음을 겪을 것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

  설거지할 때 문득 정강이 부분에서 얼굴을 비비던 쪼깐이가 느껴질 때면 등골이 섬뜩 해진다. 어라, 진짜 다리가 간지러웠는데? 감각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자고 있을 때 다리가 무거워 무의식 중에 ‘쪼깐이 인가?’ 싶었는데 그저 뭉친 이불이었을 때 나는 마음이 썰렁해졌다. 8년 세월이 어떻게 한 순간에 없어지랴. 살아가는 내내 쪼깐이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그 아이가 떠났음을 상기시킬 수밖에.



 어떤 고양이가 인생이 서둘러 간다고 아쉬워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최선을 다해서 느긋하게 나른한 잠을 잘 것이다. 30개월 우리 아기는 떠난 쪼깐이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늘에 달을 보면 “쪼깐이 있어?”, 책 속에 고양이를 봐도 “쪼깐이!” 쪼깐이를 보내고 와서 쪼깐이 이름을 더 많이 부른다. 그 덕분에 나는 쪼깐이를 잊을 새가 없다. 어느 날은 고양이 캐리어에서 쪼깐이 이름표를 떼 오는 것이다. 글자도 모르면서 왜 하필 그걸 가져왔니? 마음이 철렁하면서도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너가 남긴것은 작은 이름표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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