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모짜르트와 살리에리

by 비마

귀국한 지 몇 달 뒤인 2005년11월부터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중고 피아노를 구입했다. 생산된 지 1년이 좀 넘은 업라이트 야마하였는데 420만원을 줬다. 새 모델은 620만원이라고 했다. 내가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었으나, 의욕이 넘쳐 무리했다. 좁은 아파트에 큰 피아노를 갖다놓고 시간 날 때마다 쳤다. 이웃사람들이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나는 그때 피아노를 무조건 박자에 맞춰 건반만 두드리면 되는 줄 알았다.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다. 하긴 손가락 움직이기도 바빴으니, 아름다운 소리에 신경 쓸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도 이웃사람들이 항의하지 않은 것은 정말 미스테리다. 지금도 그때 이웃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런 실력으로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할 엄두를 냈을까 생각하면 창피하기 까지 하다. 피아노의 세계를, 소리의 세계를, 음악의 세계를 너무 몰랐던 것이다.


아들도 가끔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소리가 뭔가 달랐다.

“아들이 치는 피아노 소리는 당신이 치는 것과 달라. 내가 음악은 잘 모르지만 자꾸 들으니 차이가 많이 느껴져.” 아내가 말했다.

아들이 치는 피아노는 소리가 예쁜데, 내가 치는 피아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재능이라던가 소질 같은 것들을 그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이든 무조건 열심히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내가 몰랐던 것은 재능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차이는 매우 크다는 사실이었다. 아들은 초등학교때 1학년부터 4년 정도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그리고는 어느날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 학원 안다닐래.” 아들은 피아노보다는 축구에 빠져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축구할 시간에 피아노 학원에 가야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 조금 싫더라도 계속 다녀봐.”

“근데, 내가 피아니스트 될 것도 아닌데 왜 학원을 계속 다녀야해?” 아들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항의했다. 일리있는 말이었다.

“그럼, 그만 다녀.” 그후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홍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찼다. 피아노는 깨끗이 잊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워싱턴 특파원에 부임한 지 일 년 정도 된 어느 날 중학생이 된 아들이 차 안에서 내게 말했다.

“아빠, 이 음악이 제목이 뭐야?” 차에서 내가 즐겨듣던 CD였다.

“이거? 캐논변주곡.”

“나 이거 악보 좀 구해주면 안돼?” 아들은 당시 7학년(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미국 메릴랜드주는 5(초)-3(중)-4(고)-4(대)의 학제를 채택하고 있다. 아들에게 악보를 구해주고, 근처 피아노점에서 헌 피아노 한대를 리스했다. 한 달에 50달러 정도 지불한 것 같다. 나는 아들에게 악보를 구해준 뒤에도 과연 그 애가 그 곡을 혼자 연습해서 칠 수 있을 지 반신반의했다. 초등학교때 겨우 4년을 배웠는데, 그것도 싫어하면서... 제대로 칠 수 있을까. 아들은 하루에 5시간 이상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했다. 그 소리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초보자가 다섯 시간 동안 캐논을 피아노로 연습하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다고 상상해보라. 참아야 했다. 역시 희한했던 건 옆집에서 전혀 불평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달이 지나자 아들은 거짓말처럼 캐논변주곡을 훌륭히 연주했다. 그러나 나는 뭔가 좀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일아, 선생님한테 한 달만 레슨을 받아봐. 이 곡만 가르쳐 달라고 해.” 아들은 그러자고 했다. 나는 아들이 이왕이면 그 곡을 제대로 배워서 치기를 바랐다. 서투르게 치면서 만족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서투르게 치느니 아예 못치는 것이 낫다. 다시 한 달이 지나자 아들은 그 곡을 정말 훌륭히 연주했다. 하루에 두시간 레슨해주고 35달러를 받는 한국계 피아노 선생님은 “아들이 청음(음을 구별하는) 능력이 정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요? 그건 몰랐는데.”

“아드님이 악보를 잘 못 읽더라구요. 그래서 음을 듣고 치는건데, 그런데도 그 곡을 그렇게 잘 치는 걸 보면 청음 능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애요.”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아들이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만큼 혼자서 노력을 한다는 것은 대단했다. 대부분 음악을 듣고 그대로 피아노를 쳤다는 것인데 좀 믿기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아들의 재능이 부러웠다. 어느날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도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고 싶었다.”

“왜 잘치고 싶었어?”

“옛날에 월광 1악장을 듣고 내가 이걸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지.”

“그래?”

아들은 캐논변주곡을 잘 칠 수 있게되자, 선생님에게 월광1악장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얼마 후 그 지역 한인 피아노 선생님들이 모여 개최하는 콩쿨대회에 나가서 이 곡을 연주했다.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 대회는 참가자들의 순위를 매기는 대회는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저 자신의 평가만을 코멘트했다. 아들에게는 “아름다운 연주였으며, 앞날이 기대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들은 그 뒤로도 베토벤의 `비창‘까지 배웠다. 믿기 힘든 발전이었다. 피아노 렛슨을 다시 받기 시작한 지 불과 2년만에 그 어려운 베토벤 소나타까지 치다니. 그 2년 동안 아들은 피아노에 몰입했다. 한국에서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던 열정을 피아노에 쏟은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는 집안에서의 컴퓨터 사용을 금지한다고 했으니, 아들은 달리 할 것이 없었다. 공부 아니면 피아노, 그림그리기였는데, 아들은 공부보다 피아노와 그림그리기에 더 몰두했다. 미술 역시 개인 렛슨을 받았다. 우리집에서 50m 떨어진 곳에 한인 미술 선생님이 살고 있었다. 성이 남씨였던 그 여자 선생님은 근처의 한국인 학생들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렛슨을 했다. 어느날 남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아들이 그림에 재능이 있어요. 렛슨을 하루에 1시간 하는데 30분 더 렛슨을 받게 해주세요.”

“예? 1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남선생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그후 지역에서 주최하는 각종 미술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가장 큰 상은 전미총기협회(NRA)가 미국 전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사냥하면 안되는 동물 그리기‘ 대회였다. 아들은 7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중 최우수상을 받았다. 컴퓨터 게임을 금지하니 아들은 피아노와 그림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도 30분 더 렛슨을 받게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랬다면 아들은 자신의 재능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귀국을 한 달 앞두고 중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아빠, 나 졸업식에서 피아노 연주하기로 했어.” 아들이 말했다.

“그래? 뭘 연주할건데?”

“캐논.“

“실수 안 할 자신있어?”

“응.”

“선생님이 너에게 하라고 시키셨냐?”

“아니, 내가 하겠다고 했어.”

“자원했다구?”

“응.”

“자신 있어?”

“응.”


아들이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런 배짱이 있다니. 아들의 말에서는 왠지 자신감이 느껴졌다. 정작 나는 불안했다. 아들이 연주도중 실수라도 하면 얼마나 무안할 까. 미국 중학교의 졸업식은 정말 지루했다. 이렇게 지루한 행사가 또 있을까 생각했다. 학교측은 큰 강당에서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하고는 무대 위에 올라온 졸업생에게 교장선생님이 직접 졸업장을 수여했다. 그 많은 아마도 족히 이백명은 넘을 것 같은 졸업생들이 차례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았다. 그 장면은 두 시간 넘게 계속됐다. 너무 지루해 하품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무대를 바라보고 강당 좌석들을 앞쪽과 뒤쪽으로 나눴을 때 학생들은 앞쪽에 앉고, 학부모는 뒷쪽에 앉았다.


마침내 졸업장 수여 행사가 끝나고 아들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지 윈스턴 버전의 캐논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강당에서 캐논의 화음이 서서히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음들이 코드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캠코더로 그 장면을 찍으며 아들이 실수할 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아들은 실수하지 않고 연주를 끝냈다. 거의 완벽하게 쳤다고 느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나는 그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예의상 심드렁한 박수를 쳐줄 것으로 생각했다. 모두들 졸업식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학생들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것 아닌가. 노랑머리, 검은머리, 곱슬머리, 빨강머리가 물결을 이뤘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아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아들은 귀국한 뒤 과천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공익근무를 했다. 아들이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학을 기다리고 있을 때 집에서 쇼팽의 `발라드 1번‘을 가끔 절반 정도 연주했다. 자기가 인터넷에서 악보를 구해서 연습했다. 아들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그 곡을 처음 들은 뒤 그 곡을 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 애는 처음과 끝부분은 그런대로 연주했지만 중간의 어려운 부분은 항상 포기했다.

“이왕 그 곡을 치려면 제대로 쳐라.”

아들을 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곽샘에게 `발라드 1번‘을 가르치라고 부탁했다. 아들을 첫날 가르친 곽샘이 말했다.

“그런데 아드님이 악보를 잘 못보시는 것 같애요.”

“예? 정말이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아들이 악보 보는 법을 당연히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아들에게 악보를 보여주며 음표나 기호의 의미를 아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아들은 도레미파솔라시도만 알았을 뿐,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쉼표의 길이도 구분을 못했다. 4분의4박자가 한마디에 4분음표가 4개 들어간다는 의미라는 것도 몰랐다. 정말 미스테리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쇼팽을 칠 수가 있나. 그리고 미국에서 렛슨을 받을때 선생님이 악보 읽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니.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아드님은 악보는 잘 못 보는데 감정 표현은 정말 잘해요. 웬만한 피아노 전공자들보다 나아요.” 곽샘이 말했다.

“아버지랑 반대인 것 같애요. 아버지는 악보대로 또박또박 치는데 감정 표현이 좀 부족하고, 아드님은 감정 표현은 잘하는데 악보는 잘 못보고.

“아드님의 피아노 연주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잘 친다고 감탄할거예요. 그런데 좀 아는 사람이 들으면 `그런데 왜 이 부분을 이렇게 치지?’라고 생각할 거예요. 박자가 잘 안 맞으니까. 박자를 감정에 치우쳐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 박자를 잘 가르쳐 주세요.”

“예.” 곽샘은 웃으며 대답했다. 곽샘도 좋은 제자를 두면 뿌듯하지 않을까.


아내의 생일에 일부러 피아노가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그런데 집사람 생일인데, 아들이 엄마에게 피아노 연주를 해주고 싶다고 하거든요. 식사중에 피아노를 좀 칠 수 있을까요?”

“예, 괜찮습니다.” 레스토랑 지배인은 어렵지 않다는듯 말했다.

나도 아내를 위해 연주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음은 틀리지 않게 치겠지만 과연 감정을 충분히 실어 후회없이 연주할 수 있을까.

“엄마를 위해서 피아노를 쳐봐라.” 식사를 한 뒤 아들에게 말했다.


피아노는 매우 비싸 보이는 그랜드피아노였다. 무대는 일층과 이층 사이의 공간에 고립돼 있었다. 아들은 먼저 월광 1악장을 연주했다. 우리는 2층에 있었는데 남녀 커플 손님들만 서너 테이블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레스토랑에 피아노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 레스토랑은 매우 고급 인테리어에 음향의 울림까지 고려해 설계한 곳이었다. 주말에는 팝페라 공연도 열린다고 했다. 그 날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손님도 많지 않았다. 음악이 없을 때에는 그저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며 아무런 특징이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런데 피아노 음악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그 레스토랑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의 품격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품격마저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꼭 아들이 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가 쳤더라도 음악이 그 장소의 품격을 얼마나 높여주는지를 실감했을 것이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그 장소의 품격 뿐만 아니다. 연주자의 품격, 감상하는 사람들의 품격까지 높여줬다.

“몇곡 더 쳐도 되나요?” 지배인에게 물었다.

“아예, 그럼요.” 지배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아들은 캐논변주곡을 비롯해 몇곡을 더 연주했다.

“연주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스토랑 지배인이 테이블로 찾아와 말했다.

“저희가 서비스로 준비한 와인입니다.” 그는 와인 잔을 3개 갖고 와서 우리에게 따라주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그 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잊지못할 저녁시간을 보냈다. 글쎄 한평생 살면서 행복이라는 것이 별 것인가. 가족과 함께 이런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

아들의 재능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모른다. 피나는 노력으로 `레가토‘를 완성해 재능을 꽃피울지, 아니면 그저 `스타카토’로 끝내고 피아노를 잊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한 회사 친구는 나에게 “살리에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모차르트의 음악에 압도돼 자신의 모자란 재능을 한탄하는 음악가 `살리에리’를 나에게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살리에리‘도 과분하다. 그는 그래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궁정악장까지 지낸 거장이다. 그는 오페라, 실내악, 종교음악 등에서 명성을 쌓았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재능은 가진 사람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피아노 학원을 몇 년 다녔는데 그 정도밖에 안 돼?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거 아냐? 살리에리야, 살리에리.”

“그래? 살리에리는 훌륭한 음악가야. 나를 그런 인물과 비교한다는 건 황공한 얘기지.” 아이러니한 일은 그가 사실은 나를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다니는 학원에 몇 번이나 따라와 나의 연주를 청해 듣곤 했다.

피아노도 어찌 보면 일종의 마라톤이다. 그 악기는 한두 달이나 일이년 배워서는 좋은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최소한 하루에 서너 시간씩 십년 이상을 연습해야 겨우 몇 곡을 그런대로 무난하게 칠 수 있는 악기다. 나처럼 회사 일을 하면서 하루에 한 시간 연습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은 몇 십 년을 연습해도 큰 발전이 없다.

“피아노 학원에 언제까지 다닐 거야?” 친구가 물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죽을 때까지 다니려고 하는데. 내가 정년퇴직할 때 쇼팽을 한번 쳐보는 게 꿈이야.”

“그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꿈이지.”


“참, 끈질기시네요.” 어떤 사람은 말한다. 칭찬이 아니다. 그 정도 재능을 확인했으면 진작 그만둬야지 왜 계속 학원을 다니느냐는 핀잔이다. 글쎄, 그런 관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건반을 두드려 음악을 만들어내는 신기한 일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 나도 안다. 내가 피아노를 짝사랑한다는 것을.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이십년을 연습하면 갑자기 실력이 늘지도. 그렇게 노력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나는 그 과정을 즐긴다. 매일 매일 내가 조금씩이라도 실력이 더 향상되는 것이 즐겁다. 행복하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잘 칠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런데 잘 친다는 것은 몰입한다는 것과 또 다른 문제다.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청중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제대로 듣고 평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은 가끔 자기 피아노 연주를 녹음해서 다시 듣곤 했다. 곽샘도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연주를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고쳐봤다.

“자기 피아노 치는 게 확실히 늘었어. 이제는 좀 들을만해.” 아내로부터 그런 칭찬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고, 피아노 연습을 더 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언제나 쇼팽을 칠 수 있게 될까. 벌써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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