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까
이 우주에는 수많은 소리가 존재한다. 그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근대음악이 발전한 이후 수백 년간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수많은 민요, 수많은 대중음악이 만들어졌다. 피아노 88건반의 조합으로만 생각해도 이미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음악을 다 만들어낸 것 같은데, 아직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음악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음악이 아직도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88건반의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겠으나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음악은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곡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연주가들은 계속 연습하고 노력할 것이다.
외계인이 볼 때 인간의 예술작품들은 얼마나 위대할까.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꽤 높은 지적, 감성적 수준을 가진 생명체일 것이다. 과학기술도 우리 인간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과학기술은 높은 수준인데 예술이라는 것을 전혀 감상할 능력이 없는 외계인들도 있을 지 모른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데 대해 감사해야 한다.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신에게,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감사해야 한다.
음악이란 연주자가 악기로 내는 소리를 청각을 통해 인지하는 예술이다. 외계인이 만일 청각이 없다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소리가 진동을 발생시키면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데 이것을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촉각으로 리듬과 음의 강약, 높낮이를 인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인간이 청각신경으로 느끼는 것만큼의 감동이 발생할지 의문이다. 그 미묘한 음색과, 소리의 울림, 화음의 절묘한 조화, 불협화음의 기교, 소리의 잔향 등을 완벽하게 느끼려면 역시 청각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청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쇼팽의 `녹턴 13번'을 들어보자. 낮은 음과 높은 음이 번갈아 가며 장중하게 시작한다. 느리고 단순한 템포의 애잔한 음조를 가진 첫 소절은 듣는 이의 가슴을 잡아끈다. 그러면서 청중의 마음을 가슴속 밑바닥까지 가라앉혀 그 다음에 나올 가락을 아무런 비평이나 방어기제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 음의 향연에 자신을 맡길 때 온갖 가공의 또는 현실의 스토리가 흐릿한 형태로 머릿속을 떠다닌다. 그 음악은 가슴을 둔중하게 때리며 마음 속에 쌓인 속세의 이해득실을 잊게 만든다. 한 인간의 짧은 생애에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연의 원리인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고 정립한 아인슈타인도 위대하지만, 음악의 원리인 화성학을 발견하고 이론으로 정립한 수많은 음악인들, 그리고 그 화성학을 바탕으로 걸작을 만들어낸 음악가들도 역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