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불만
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프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면 풀코스를 완주할 확률도 높아진다는데 의미를 둘 수도 있다. 또는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는데 의미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하프코스의 결점은 아무래도 감출 수 없다. 그것은 풀코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프코스를 달리고 난 뒤 느끼는 성취감은 풀코스를 완주한 뒤 느끼는 성취감과는 비할 수 없다. 어떤 일이든 절반만 끝내고 나서 성취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절반만 읽고나서, 햄릿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햄릿을 절반으로 압축한 글을 읽고나서 햄릿을 읽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거의 10분 길이의 쇼팽 `발라드 1번‘을 5분만 치고 난 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뭐든 절반만 하는 것은 뭔가 찜찜하다. 내가 하프코스를 뛰는 이유는 풀코스를 잘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프코스를 뛰며 컨디션을 조절한 뒤,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이다.
물론 하프 마라톤을 뛰고난 뒤 풀코스를 뛰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비록 성취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하프코스에 만족하는 것도 건강 증진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괜찮은 방법이다. 하프코스는 풀코스의 딱 절반이다. 정확히 말하면 21.0975km. 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다면 하프코스는 부담없이 출전할 수 있다. 뭐든지 그럴 것이다. 연주시간 9분15초인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할 수 있다면 연주시간 4분30초의 `캐논변주곡’을 연주하는 것은 별로 부담이 없다. 사실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풀코스보다는 하프코스를 여러번 뛰는 편이 더 좋다고 본다.
그런데도 풀코스를 달리는 것은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몸을 한계상황까지 몰고 가고 싶은 욕망. 죽어라고 달리고 난 뒤 죽지 않은 것을 자축하고 싶은 욕망. 땀을 여한없이 흘리고 난 뒤 깨끗한 물과 이온음료로 몸의 수분을 보충하고 싶은 욕망. 그런 욕망이 복합적으로 나를 충동한다. 그래서 풀코스를 달린다. 그리고 풀코스를 달리고 나면 한동안 슬럼프가 찾아온다. 풀코스를 달리면 최소한 2주일 동안은 잘 쉬어야 한다. 그래야 관절이나 근육이 다시 정상으로 회복된다. 자신의 몸상태를 과신하고 풀코스 완주 일주일만에 다시 풀코스 도전에 나선다면 틀림없이 몸의 어딘가에 부상이 찾아온다. 그래서 달릴 수 없는 기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몸은 참으라고 하는데 마음은 그 기간을 정말 참을 수 없다. 또다시 한강변을 달리면서 구슬같은 땀을 느끼고 싶은데, 그저 한시간 산보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풀코스 완주 이후에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달리고 싶은데 달릴 수 없으니 그런 것이다. 어떤 날은 한없이 이러저리 걸으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그리고 2주일 정도 지나면 다시 달리면서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풀코스의 사이클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프코스를 뛰고나면 다음에 풀코스를 뛰는데 부담이 없다. 근육의 손상 정도도 미미하고 몸에도 큰 무리가 없다. 그래서 풀코스 대회 한달전부터 하프코스를 두어 차례 뛰면서 풀코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하프코스를 달려보면 풀코스의 예상기록도 어느정도 정확히 나온다. 하프코스를 1시간40분에 달렸을때 풀코스를 3시간41분에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프코스를 1시간50분대에 달린다면 풀코스를 3시간대에 완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산술적으로 곱하기 2를 하면 (1시간+50분) X 2 = 2시간+100분= 3시간 40분이다.
물론 하프코스 기록 곱하기 2의 속도로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문제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육상 트랙 최장거리 10,000m 세계기록을 15차례나 갈아치운 '트랙의 신화'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는 2006년1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대회에서 58분55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산술적으로 곱하기 2를 해서 풀코스 기록을 예상해본다면 그의 기록은 1시간57분50초가 돼야 한다. 그러나 막상 그의 풀코스 기록은 `하프코스 기록 X 2 + 6분‘ 정도였다. 게브르셀라시에는 2008년 베를린 마라톤 풀코스에서 2시간3분59초를 기록해 인류 최초로 2시간3분대에 진입했다. 1시간대 진입은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하프코스 기록 곱하기 2를 한 다음, 엘리트 마라토너라면 5∼10분을 더하고, 서브 3 기록을 가진 아마추어라면 10∼15분, 서브 4 아마추어는 15∼20분을 더해야 풀코스 기록이 나온다.
하프코스를 뛰어보면 몸의 컨디션을 잘 알 수 있다. 불과 몇 킬로미터 못 가서 힘이 달리는 것을 느낄 때도 있고, 처음부터 힘차게 치고 나가도 끝까지 지치지 않을 때가 있다. 힘이 들 때에도, 힘차게 달릴 수 있을 때에도 다 이유가 있다. 힘이 많이 든다면 장기간 운동을 못했거나, 몸이 약해지는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힘차게 달릴 수 있다면 술을 절제하고 열심히 체력단련을 했기 때문이다.
2014년 들어 처음으로 2월에 하프코스를 뛰었다. 3월의 동아마라톤을 위해 2월 중순부터는 하프코스를 뛰기 시작해야 한다. 2월 날씨로는 그렇게 춥지 않았다. 또 다행히 오전 10시에 비교적 느지막이 출발하는 대회여서 아침에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빵을 먹다가 이날 아침에는 모처럼 밥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마라톤대회에 나갈 때 아침에 치르는 의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화장실이다. 만일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지 못하고 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도중에 낭패를 당하기 쉽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충분히 본 뒤에는 `이제는 뛸 일만 남았다‘는 안도감마저 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짧은 시간에 식사와 스트레칭까지 한 뒤 화장실에서 큰 일을 해결한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회장까지 가서 옷을 갈아입고 그 옷을 가방에 넣어 물품보관소에 맡긴다. 그래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려면 이런 순서를 의식하고 아침에 시간을 잘 계산해서 분배해야 한다. 만일 대회장까지 한시간이 걸리고 마라톤 출발시간이 아홉시라고 하자. 그러면 대회장에 최소한 삼십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므로 집에서 늦어도 일곱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화장실 십분, 세면 십분, 스트레칭 십오분, 식사 이십분을 잡는다. 그러면 오십오분. 대충 한 시간을 잡자. 그러면 여섯 시 반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또 있다. 러닝 셔츠에 배번을 달고, 모자와 러닝팬티, 장갑, 작은 배낭, 선크림, 젖꼭지에 붙일 일회용 반창고, 선글라스 등을 챙긴 뒤 간편한 복장으로 출발하려면 아무리 바쁘게 움직인다 해도 기상 시간이 여섯시를 넘으면 안된다. 결국 마라톤 출발 3시간 전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집에서 대회장까지 한시간이 걸린다는 가정 하에서 그렇다.
어느 마라톤 대회든 처음에 출발할 때에는 그냥 완주만 하자고 생각한다.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자는 것이다. 그 생각이 마지막까지 유지될 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출발 신호 뒤 스타트 라인을 지날 때 손목에 찬 마라톤 시계의 출발 버튼을 누르는 것도 중요하다. 깜박 잊었다간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지 알 수 없게 된다. 동아마라톤에서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정신놓고 멍하니 달리다가 갑자기 스톱워치를 누르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1km 표지판을 보고서야 스톱워치를 눌렀다. 그래서 42.195km를 달리는 내내 과연 내가 첫 1km를 몇분에 달렸을까를 생각해야 했다. 마라톤에서 첫 1km의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처음부터 속도를 올려 오버페이스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느리게 달려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첫 1km의 속도가 전체 레이스의 기준이 된다. 그것을 기준으로 나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속도를 높일 지 낮출 지를 결정한다.
1km 표지판을 지나는데 시계를 보니 5분30초 정도였다. 약간 빠른 페이스였다. 오른 쪽 한강에는 작은 배 몇 척이 떠 있었다. 눈이 탁 트이는 시원한 경치였다.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몇 년 동안이나 이런 경치를 보면서 한강변을 달릴 수 있을까. 죽어서 눈을 감으면 어두컴컴한 관속에 갇혀 영겁을 보내야 한다. 어떻든 이렇게 시원한 경치를 영원히 즐길 수는 없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현재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느낀다. 한강 건너편에는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번에는 여의도에서 행주대교까지 왕복하는 코스다. 약간 빠르다고 느꼈지만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앞에서 짝을 지어 여유 있게 달리는 사람들을 지나쳐간다. 조금 있으면 저들이 나를 다시 추월할 지도 모른다. 새로 산 러닝화는 감촉이 좋다. 작년까지 밑바닥이 얇은 마라톤화를 신고 달렸지만, 레이스 후반에 발바닥이 아팠다. 그래서 이번에는 밑바닥이 두꺼운 조깅화를 샀다. 조금 무겁긴 하지만 발바닥이 받는 충격이 덜했다. 달리는 중 호흡도 중요하다. 한발 디딜 때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두 번째 발을 디딜 때 다시 한 번 들이마신다. 말하자면, “흡흡”정도 된다. 그런 뒤 세 번째와 네 번째 발을 땅바닥에 디딜 때 연속으로 숨을 내뱉는다. “푸푸.” 그러니 뛰면서 “흡흡, 푸푸”를 계속하게 된다. 나중에 지치면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고추먹고(흡흡), 맴맴(푸푸), 달래먹고(흡흡) 맴맴(푸푸).”
레이스 시작 전 큰 마라톤 대회 진행을 주로 맡는 코미디언 배동성과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확성기로 참가자들을 안내했다. 스트레칭을 하라는 둥, 스타트라인에 집결하라는 둥 열심히 대회를 진행했다. 어느 지방인지 모르지만 약간의 사투리를 썼다. 좀 어눌한 발음이 친근감을 주었다. 너무 잘난 척 하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는 재주인 것 같다. 레이스 전 행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산소음료 선전. 그 산소 음료를 마시면 몸에 힘이 난다는 얘기였다. 과학적인 근거는 별로 없는 얘기 같았다. 그 회사 직원인 듯한 사람이 열심히 마이크와 그 산소음료 봉지를 들고 설명을 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내 사업을 한다. 과연 그 상품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팔릴지, 대박이 날지 또는 쪽박을 찰지 궁금하다. 이제는 사람들이 공기중에서 마시는 산소를 갖고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도 산소통 장사가 성업중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두 번째 행사는 가수를 자칭하는 부부가 나와 노래를 부른 것이다. 특이했다. 오십대로 보이는 부부는 무대에 올라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노래를 열창했다. 그런데 화음을 넣는 것이 아니라 두사람이 같은 음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화음을 넣을 필요도 없었다. 가락이 단순했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본 얘기다. 그저 흔하디 흔한 비유다. 그래도 그 말 속에는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흔히들 인생을 길게 보라는 얘기를 한다. 너무 눈앞의 이익만 탐하지 말고,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대학입시에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학생들에 대한 보도가 가끔 나온다. 안타깝다. 그 어린 학생들에게 인생은 마라톤이니 길게 보고 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나는 대학입시에 세 번 낙방했다. 그리고는 군대에서 삼년가까이 생활한 뒤 제대했다. 그리고는 십오개월 간 대학입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결국 대학에 합격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칠년 만이었다. 칠오(75)학번이 돼야할 사람이 팔이(82)학번이 된 것이다. 그래도 지금 별 탈 없이 삼십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인생을 길게 본다면 대학입시에서 한두번 낙방하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마치 마라톤 레이스 도중 물을 마시려고 잠깐 멈추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영상 2, 3도 정도의 쌀쌀한 날씨에서 오킬로쯤 달리자 갑자기 힘이 떨어진다. 풀코스를 힘차게 질주하던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겨우 오킬로 달리고 이렇게 되다니. 몸은 이제 약간씩 더워지고 있었다. 속도를 늦췄다.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다. 그때는 십킬로 코스에 출전했는데 몸에 힘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한시간십분이 지나서 골인했다. 그런데 때로는 천천히 달리다보면 나중에 다시 힘이 나기도 한다. 속도를 늦추자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다 그런 것이다. 인생에도 상대성원리는 적용된다. 내가 속도를 늦추면 내 주위 사람들의 속도가 빨라진다. 내가 빨리 달리면 주위 사람들의 속도가 느려진다.
물론 천천히 달릴 수는 있다. 천천히 달리면서 풀코스도 완주할 수 있다. 문제는 기록이다. 천천히 즐기면서 달린다면 기록은 포기해야 한다. 기록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내 몸 상태를 시험해볼 수 없다는 얘기다. 나는 마라톤 기록으로 내 건강 상태를 판단한다. 9년 전 처음 하프코스에 도전했을 때 기록이 1시간48분이었다. 첫 도전치고는 꽤 괜찮은 기록이었다. 그리고 첫 풀코스는 4시간20분에 완주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기록은 점점 좋아져서 한때는 하프코스가 1시간40분, 풀코스가 3시간41분까지 기록이 나왔다. 그래서 한때는 풀코스 기록이 다시 4시간대로 내려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다. 또 누가 만일 내 하프코스 기록이 결국 두시간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내가 갑상선 암 수술만 받지 않았어도 기록은 계속 좋아졌을 지 모른다. 2008년 처음으로 갑상선 왼쪽을 떼어낸 뒤 4년 만인 2012년에 다시 오른쪽 갑상선에 암이 발견됐다. 그래서 갑상선을 모두 제거하는 암수술을 받고 작년 2월에 3박4일간 독방에 입원해 방사성동위원소 치료까지 받았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마라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재작년 11월 암수술을 불과 2주일 앞두고 춘천마라톤에 출전했고, 작년 3월에는 동위원소 치료후 불과 2주일만에 동아마라톤에서 달렸다. 기록은 형편없었다. 춘천에서는 4시간30분 가까이, 동아에서는 4시간20분 가까이 달렸다. 그래도 완주했다는 느낌이 좋았다.
왜 달릴까. 가끔은 달리다 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사람들이 누워서 죽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비참하다. 아버지도 집에서 한 달여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누워서 앓다가 죽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 어머니도 암수술을 받으신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 호흡기를 끼고 돌아가셨다. 약품 냄새를 맡으며, 꼼짝없이 누워서 기계의 도움으로 연명하다가 결국은 저세상으로 가셨다. 어떻게 태어날지는 나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 지는 선택할 수 있다. 달리다 죽는다는 것은 어찌 들으면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달릴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면 죽지 않는다. 물론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달리다 쓰러지고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마라톤대회에서 달릴 수 있다면 쓰러질 염려는 별로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내가 몇 살까지 마라톤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달리다 죽을 지 아니면 병상에서 호흡기를 끼고 죽을 지.
인간은 몇 살까지 달릴 수 있을까. 2013년2월24일 102세인 파우자 싱(영국)이 10km 대회를 마치고 마라톤대회에서 은퇴했다. 그는 홍콩에서 열린 마라톤 10㎞ 레이스에서 1시간32분28초를 기록했다. 그는 레이스를 마친 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루"라며 "시작 전부터 상쾌한 기분이 들었고 달리는 내내 활력이 넘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레이스라고 생각하니 슬픔도 함께 느낀다"며 "오늘을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1911년 4월 1일생으로 당시 102번째 생일을 맞은 싱은 89세이던 2000년 런던마라톤에서 장거리 레이스에 입문했다고 한다. 당시 42.195㎞ 풀코스를 6시간54분 만에 주파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그는 92세이던 2003년 캐나다 토론토 마라톤에서는 5시간 40분이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냈다. 그는 100세가 된 2011년 토론토 마라톤에서 8시간 11분 06초를 기록하고 마라톤 역사상 그리고 인류 역사상 풀코스를 완주한 첫 100세 인간이 됐다.
그러면 마스터즈 마라토너들의 꿈인 `서브쓰리(Sub-3)‘는 몇 살까지 가능할까. 서브 쓰리란 풀코스를 2시간59분59초99 이내로 완주하는 것을 말한다. 캐나다의 에드 휘틀락이라는 사람은 만 73세이던 2004년 토론토에서 열린 스코티아뱅크 워터프론트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54분49초로 골인했다. 그는 70대에 서브 쓰리를 달성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됐다. 그는 75세이던 2006년 같은 대회에서는 3시간08분34초5의 기록으로 70대 이상 출전자 중 1위를 차지하면서 75세 이상 세계기록인 3시간18분10초도 경신했다.
이들은 왜 달릴까.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지면 걷기도 싫어질 텐데, 이들은 왜 굳이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걸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달리며 땀을 흘릴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규칙적으로 발이 땅바닥에 착지할 때 그 충격으로 온몸의 근육이 흔들리고, 뱃속의 내장들도 아래위로 흔들린다. 그리고 땀이 온몸에 흐르기 시작한다. 코스 후반에는 숨이 턱밑에 차서 헐떡인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헐떡일 때 오히려 생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온몸의 모든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저 마냥 달리고 싶은 날이 있다. 아이큐 75의 포레스트 검프처럼. 검프는 무작정 달렸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달렸다. 나는 검프의 달리기를 이해한다. 때로는 나도 그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10km 지점에 도착하자, 생수와 산소수(水), 바나나가 기다리고 있다. 잠깐 쉬면서 반으로 잘라놓은 바나나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는 생수와 산소수를 천천히 들이켰다. 10.5km를 조금 지나 설치된 반환점을 돌 때 기록은 1시간06분이었다. 나는 2시간 이내에 골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하프 최고기록은 1시간40분30초다. 동아마라톤을 위한 워밍업으로 뛰는 대회였으나, 2시간은 넘고 싶지 않았다.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2시간 이내에 골인하려면 나머지 10.5km를 53분 이내에 달려야 했다. 1km당 5분이 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1km당 6분과 5분의 속도 차이는 매우 크다. 1km당 5분의 속도는 전력질주는 아니더라도 거의 힘차게 달리는 수준이다. 그만큼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산소수의 효과인지 바나나의 효과인지 1km당 5분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앞서 갔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내가 추월하기 시작했다.
골인지점 5km를 남기고 시계를 봤다. 계속 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2시간 이내의 기록도 가능했다. 힘은 남아있었다. 앞에 누군가 보이면 무조건 추월하려고 달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앞의 주자를 찾아 추월했다. 산소수가 정말 효과가 있었나. 여의도 국회의사당 옆을 지나 마포대교가 보였다. 약 1km가 남았을 때에도 전력질주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2시간을 넘긴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했다. 전력 질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스톱워치를 눌렀다. 기록은 1시간59분12초31.
결승선을 통과한 뒤 생수병을 받아들 때가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다. 물을 마시면서 `집에 가다가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을 받고 물품보관소에서 백팩을 찾아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주최측에서 제공한 순두부를 먹으며 식어가는 몸을 덥혔다. 백팩을 뒤에 메고 천천히 여의나루역쪽으로 걸어갔다. 주최 측은 확성기로 하프코스 1,2,3위를 호명했다. 이제 지하철 타고 가서 설렁탕을 먹고, 집에 가서 욕조에 찬물을 채워넣은 뒤 한 십오분간 하체를 담궈야 한다. 그래야 상처받은 근육과 관절이 빨리 회복된다. 뭐든지 마무리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