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은둔의 시간

by 비마

인생은 살 가치가 있나. 그렇게 많은 좌절과 배신, 실망, 이별,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얼마나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다, 은퇴하고 나면 별로 하는 일 없이 죽을 날을 기다린다. 인생이 이렇게 천편일률적이고,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삭막할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산다. 어떤 사람의 인생은 삭막한데, 어떤 사람의 인생은 열정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업에서 열정을 불태우지만 어떤 사람은 직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 그저 돈 벌기 위해 할 수 없이 일하는 사람도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 하며, 회사에서는 적당히 눈치보며 산다. 적당히 힘센 자에게 붙어 줄을 잡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괜찮은 처세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년이 되면 퇴직하면서 회사가 왜 자신을 더 붙잡지 않는지 불평을 한다.


그러면 일에 열정을 갖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열정을 담은 적극적인 행동 때문에 실수도 많이 하고, 다른 동료들과 갈등도 많이 겪는다. 그들은 힘 센 자에 붙어 줄을 잡기 보다는 자신이 맡은 일이 잘 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잘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들도 역시 정년퇴직할 때 같은 얘기를 한다. 회사가 왜 나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더 붙잡지 않는거지?


열정을 갖건 갖지 않건 회사는 언제든 나를 배신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얘기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어떤 회사에서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승진도 더 잘하고, 정년후 임원이 되는 비율도 높다. 그래도 배신당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배신당한다는 것은 나의 헌신만큼 회사가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평생을 헌신했는데도 회사로부터 찬밥 취급을 당하면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냥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돌아서야 한다.


그러나 취미는 다르다. 취미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다. 열정이 담길 여지가 많고 세월이 가면서 쌓인 실력과 노하우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미는 중요하다. 취미는 그 사람의 실체를 비교적 정확하게 드러낸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보다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를 보는 편이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가 여가시간에 바둑을 두는 지, 영화를 보는 지, 당구를 치는 지, 도둑질을 하는 지,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는 지, 골프를 치는 지, 사진을 찍는 지, 그림을 그리는 지, 그리고 그런 취미에 어떤 열정을 쏟는 지 등을 보면 그의 성격이나 인생관 등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취미는 정말 그 사람을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물론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다보니 취미를 만들 시간을 못가졌거나 매사에 별로 흥미가 없거나 둘중 하나다. 그들의 인생은 다채롭지 못하고, 여유가 없다. 사실 취미를 즐길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도 즐길 수 있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것은 문제다.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의 인생은 그리 삭막하지 않다. 물론 자신의 직업, 즉,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과 돈과 관계없이 즐기는 취미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일은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다.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실력만으로 일이 잘 풀린다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실력뿐만 아니라, 다른 외적인 요인들, 즉 정치 경제 사회적인 여러 요인들이 나의 일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일이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취미는 잘 되던 안 되던 그저 즐기는 것이다. 잘되면 좋고, 안돼도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영국 출신의 미국 사회학자인 로버트 맥키버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긴 하지만, 때로는 은둔의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사생활의 시간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자기 평가를 해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시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왜곡되지 않는 시간, 자신을 온전히 다시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기만의 취미는 그래서 소중하다.


취미는 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외적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이 드물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경제가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해서, 그 뉴스가 내가 한강변을 달리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또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했다고 해서 나의 피아노 연주가 엉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취미는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치유의 기능까지도 갖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심했을 때 한강변을 두 시간 정도 달리거나, 거실 피아노 앞에 앉아 월광 1악장을 연주하고 나면 어느새 상심의 충격이 완화된 것을 느낀다. 온 세상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나의 절반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절반의 세상은 온전한 나만의 세계이며, 상심한 나머지 절반에 대한 치료약 구실도 한다. 그것이 반드시 마라톤이나 음악일 필요는 없다. 문학이나 미술, 패러글라이딩 등 취미로 즐기는 모든 것이 자신의 절반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취미가 없다면 어떨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면, 자신이 언제까지나 매우 중요한 인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될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내 주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점심 저녁 약속, 골프 약속을 잡느라 바쁘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려고 애를 쓴다. 앞으로 내가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함께 밥 먹을 사람을 골라야 하고, 함께 골프 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굽신거린다. 내가 마치 왕이 된 것 같다. 세상은 정말 살 맛 나는 곳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


그러나 착각은 금물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감과 허전함, 때로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그런 갑작스런 변화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혼자서 등산을 가보기도 하고, 먼 도시로 여행을 떠나보기도 한다. 때로는 영화에 미쳐보기도 하고,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읽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 인생은 송두리째 무엇에 바쳤을까. 나이가 육십이 넘은 지금 나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남아있는가. 내가 한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나는 퇴직했다. 나에게는 그 회사 하나밖에 없었다. 그 회사가 나를 버린 지금 또는 그 회사가 나와 관계가 없어진 지금, 나에게는 무엇이 남았나. 인생이 무상하다. 이제 이렇게 아무런 열정 없이 재미없게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는 일만 남았나.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인생을 다시 한 번 산다면 이렇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았어야 하나. 퇴직 후 그림을 그리거나 낚시를 다니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품위 있는 취미에 탐닉해볼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그런 취미가 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허전하지는 않을 텐데.


하루아침에 권력이나 재산이나 명예를 잃어버렸을 때 인생의 허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Macbeth)‘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을 떠올린다. 바로 맥베스가 아내의 죽음을 보고받고 비통에 잠겨 내뱉는 독백이다.


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 (언젠가는 어차피 죽어야할 사람이었다.)

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 (한번은 듣게 될 소리였지.)

To-mo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은)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하루하루 기록된 시간의)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마지막 음절까지 주춤주춤 기어가고)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과거의 날들은 한낱 잿빛 무덤을 향해)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가고 있음을 바보들에게 비쳐주었다. 꺼져라 꺼져 단명한 촛불아!)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인생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주어진 시간을 무대 위에서 활개치고 안달대지만)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 곧 영영 잊혀져버릴 가련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 것.)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인생이란 그저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일 뿐,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signifying nothing.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참으로 비장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권력욕에 불타던 맥베스는 권력과 아내를 잃었을 때 비로소 인생의 허무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허무를 그저 담담하게 읊조린 것이다.


내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재산이 아니다. 물론 물려줄 재산이 많다면 좋겠지만, 그럴 형편은 못된다. 그리고 재산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마라톤과 피아노다. 거기에다 문학에 대한 사랑까지 물려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면 내 자식들에게서는 언제나 매혹적인 향기가 날 것이다.

사람들에게서는 각양각색의 냄새가 난다. 그것은 코로 맡는 냄새가 아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냄새다. 정말 잔잔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향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독서, 훌륭한 취미에 대한 탐닉의 결과다. 그들과는 항상 대화하며 교류하고 싶다. 물려주는 재산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으면 많이 쓰고, 적으면 적게 쓰면 된다. 돈이 적으면서도 많이 쓰려고 할 때 탈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매일 달리는 버릇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면 그들은 평생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덤으로 건강도 챙길 수 있다. 탁 트인 한강변을 달리며 삶의 희열을 느끼고, 운동이 주는 육체의 활기를 즐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육체의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잠시 낮잠을 즐길 때의 그 달콤함을 경험한다. 또 내가 자식들에게 악기를 배울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평생 악기가 내는 소리의 오묘함을 구별하고 즐기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어쩌다가 시끄러운 랩이나 록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예술가의 섬세한 연주가 빚어내는 음악의 깊이를 더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건반을 누르며,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의 연주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일하느라 바빠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월광 1악장의 연주를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 그 연주를 사랑하는 이에게 들려주며 음악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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