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성공
어떤 피아니스트는 “애인에게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싶은데, 내가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그건 내 직업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이럴 때는 피아니스트가 내 직업이 아니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다. 평범한 회사원이나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애인을 피아노 있는 카페로 데려가 혼자 몇 달간 연습한 쉬운 편곡의 `월광 1악장‘을 쳐준다면 그 애인은 얼마나 놀라겠는가. 더구나 “당신에게 프로포즈하려고 백일간 피나는 연습을 했어”라고 말하면 그 애인은 얼마나 감동할까. 나의 고등학교 후배는 그렇게 부인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그 후배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면, 그렇게 프로포즈한다 해도 여자친구는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트 피아니스트에게는 그런 이벤트를 할 특권이 없다.
엘리트 피아니스트는 `득음’을 하기 위해 거의 매일 장시간을 연습하며 구도자적인 삶을 살지만, 일반인 아마추어들은 그냥 피아노를 즐긴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말은 역시 피아니스트와 아마추어 연주자에게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피아니스트가 `잘 친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도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에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잘 친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 연습할 필요는 없다. 그저 “취미로 치는 것 치고는 잘 치네”라는 말만 들으면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는 유키구라모토의 `로망스‘를 연주해 아내에게 칭찬을 듣는 것만으로도 환희를 느낀다. 엘리트 피아니스트는 그런 작은 일에 환희를 느낄 수 없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엘리트 피아니스트에게 성공이란 직업적인 비평가로부터 `당대 최고의 연주자‘라는 평가를 듣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에게 `성공’이란 `로망스‘를 연주하면서 내가 스스로 도취할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칭찬까지 듣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성공의 의미는 상대적이다.
나는 하루중 작은 시간을 내어 피아노를 배운다. 그렇게 십여년을 배우고 나서 베토벤의 `월광 1악장’을 또는 일본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즐기면서 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면 나는 그것을 스스로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피아노라는 취미를 즐기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백건우가 그런 곡들을 아무리 잘 친들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취미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소설을 썼다고 하자. 그 소설이 책으로 낼 만큼 훌륭하다면 그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역시 취미 분야에서의 성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소설을 쓰는 시간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취미란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아마추어가 때로는 프로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