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경이로운 세계다. 138억년전 우주가 대폭발로 탄생했을 때 (빅뱅이론이 사실이라면) 폭발하는 소리가 났을까. 소리가 났다면 어떤 소리였을까. 또 얼마나 컸을까. 누군가 그것을 듣는 생명체가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수천억개의 은하수에 있는 행성들, 지구 바닷가의 모든 모래알들보다 더 많은 행성들 중에서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생명체가 있을까. 45억년 전 탄생한 지구. 이 곳에서 400만년 전쯤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이후 160만 년 전에는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진화했다.
그 직립보행을 하는 생명체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만들었다. 사냥을 하다가 활줄을 튕겨보니 재미있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그것을 악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막대기로 돌을 두드리다가 역시 다양한 소리를 조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인간이 이처럼 다양한 음을 조합해서 음악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정말 경이로운 인류의 업적은 바로 화성학이다. 화성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어떤 음들이 모여 어떤 코드를 이루고, 어떤 코드에서 어떤 코드로 진행해야 음악이 되며, 어떤 음의 조합은 어떤 음의 조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등의 이론이 정립된 것은 16세기 중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론을 고치고 발전시켜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런 이론 덕분에 작곡가들은 음악을 만들기가 더욱 쉬워졌다. 지금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작곡이 훨씬 더 쉬워졌다.
인간이 만든 음악이 위대한 것은 그것이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장조(major)로 신나는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단조(minor)로 비장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전쟁에서 씩씩한 행진곡이나 비장한 느낌의 군가 등을 이용해 군대의 전투력을 증강하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라디오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노랫말을 붙인 대중음악도 있고, 수많은 악기가 조화를 이루어 웅장한 음을 내는 교향곡도 있다. 간단하게 기타 줄을 튕기며 혼자 노래를 하는 행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은 1977년9월5일 인류 최초의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를 발사했다. 이 우주탐사선은 인류가 만든 물체중 최초로 태양계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를 항해중이다. 우주의 어떤 생명체가 그 탐사선을 발견하기 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태양과 가장 가까운 항성도 지구에서 4광년 넘게 떨어져 있다. 시속 5만6천km 이상으로 항해하는 보이저1호가 이곳까지 가려면 8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아무튼 보이저 1호에 실린 외계생명체에 대한 메시지에는 인류의 모습과 생각도 있고, 인류가 만든 음악도 있다. 금제 음반에 바흐의 브란덴브루크 협주곡 제2번 바장조,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등 90분 분량의 음악이 담겨있다.
만일 먼 행성에 살고 있는 외계 생명체가 보이저 1호를 만나 인간의 음악을 듣는다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보이저 1호를 우주공간에서 낚아챌 정도의 기술을 가졌다면 그 생명체도 이미 음악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생명체는 음악의 고향을 찾아 지구까지 여행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멀리 떨어진 지구까지 여행할 수 있고,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대단히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가진 외계인임에 틀림없다. 그 외계인이 공원 벤치에서 혼자 기타를 튕기며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인간 옆에 앉아있다면 무엇을 느낄까. 고향의 가족들이 보고싶어 질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그 생명체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음악을 수입해 자기네 행성으로 가져가서 전파할 생각을 할까.
음악은 이성으로 습득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감성으로 그냥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외계인이 듣는 귀만 가졌다면 또는 소리의 울림을 감지할 감각기관만 가졌다면 음악을 듣는 순간 그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내가 기타를 메고 다른 행성에 우연히 도착했을 때 그 행성의 생명체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면 그 생명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너도 나도 기타 줄을 튕겨보려 하고, 노래를 따라 불러보려고 할까. 정말 궁금하다.
만일 외계인들이 나의 연주나 노래를 듣고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일종의 「음악적 커뮤니케이션 (musical communication)」이다. 그들과 이른바 「음악적 소통」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역시 나에게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려 할 지 모른다. 인간은 언어 외에 여러 가지 소통의 수단을 갖고 있다. 표정이나 몸짓, 미술, 음악, 영화 등등 .. 인간은 이처럼 많은 방법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목소리라는 악기를 갖고 있다. 구제불능의 음치가 아니라면 많이 듣는 음악은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다. 평소에는 음악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음악에 전혀 흥미를 갖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에 갈 때에는 나름대로 감정을 실어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아마추어지만 상관없다. 자기가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도취하고 즐기면 그만이다. 음정이나 박자가 좀 틀려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노래를 잘 부른다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앵콜을 청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의 노래를 즐기는 태도다. 음악은 일부 엘리트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 엘리트들은 노래를 잘 부르거나 악기를 잘 연주하겠지만, 그들만이 그 노래를 부르거나 그 곡을 연주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엘리트만큼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도 아마추어들은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자신의 노래를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즐기는 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을 즐기는데도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왜 같은 음악이라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 음악을 깊이 느낄 수 있을까. 왜 그 음악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 사람의 가슴을 더 파고들까. 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지하상가 광장에서 누군가 훌륭한 솜씨로 `짚시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어떤 사람들은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지나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참을 서서 들으며 그 음악에 빠져들까.
사람들은 감정적인 경험의 폭 만큼 느끼게 마련이다. 또는 이렇게 말해보자. 살아진 만큼 느껴진다. 세계 초일류 피아니스트라도 자신이 치는 쇼팽의 `녹턴 13번'을 일반인들보다 덜 느낄 수 있다. 첫사랑의 설레임과 실연의 아픔, 배신의 상처, 타인의 비웃음, 왕따, 싫어도 월급 때문에 할 수 없이 해야하는 회사일의 스트레스, 가족간의 갈등, 비극의 경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우주의 실체나 섭리에 대한 절망과 그로인해 느끼는 허무,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준 날카로운 통증... 세상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과 부딪히면서 몸으로 느낀 감정들이 광대한 세계를 이루고 있을 때 듣는 쇼팽의 `녹턴 13번‘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아오고, 슬픔, 비탄, 스트레스 등의 감정을 별로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듣는 `녹턴 13번'과 좀 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