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즐겁지 않는 활동에는 시간을 쓰지 않는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의미가 있다. 평생을 자신이 좋아하고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에 바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세상의 유명한 예술가들은 거의 모두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다. 고호는 평생 그림에 미쳐 살았다. 그는 가난했지만 미친듯이 그림을 그렸다. 베토벤도 마찬가지다. 그는 평생 작곡에 몰두했다. 존 스타인벡은 소설을 썼고, 도스토예프스키도 돈을 위해 소설을 썼다. 그들이 다른 취미를 갖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그 일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돈에 쪼들리는 평범한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돈이나 명예 때문에 할 수 없이 해야 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됐다고 하자. 그런데 막상 의사가 되고보니 삶이 재미가 없다. 내가 이 일에 평생을 바쳐야 하나. 회의감마저 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미 상황은 또는 운명은 정해졌다. 돈 잘버는 이 직업을 박차고 나가 내가 재미를 느끼는 자동차 수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취미로 자동차 정비학원에 다닌다. 그리고 나서는 새 차가 출시될때마다 그 차를 사서 각종 부속품을 뜯어보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 그래도 그럴 시간이 있으면 다행이다. 십중팔구는 시간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잘 나가는 의사들이나 판검사들, 사업가들이나 중역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싫어도 그 일만 하는 수밖에 없다.
서양속담에 `과자를 먹으면, 손에 다시 그 과자를 갖고 있을 수는 없다 (You cannot eat your cake and have it.)'는 말이 있다. 한정된 자원을 이리 쓰고 나면 저리는 쓸 수 없다는 얘기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시간을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쓴다면 자동차 부속품 뜯어보는 일에 들일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도 그 취미를 정말 좋아한다면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려 할 것이다. 애당초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시간을 회사일과 마라톤이나 피아노에 쓰고 나면 그 시간은 독서 등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나는 하루에 마라톤 연습에 한시간, 피아노 연습에 한시간 정도를 쓰는 것 같다. 휴일에도 주로 하는 일이 한강변에 나가서 달리거나,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일이다. 친구가 묻는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나?”
“왜? 무슨 일 있나?”
“골프나 치러가지.”
“골프? 아, 난 골프대신 마라톤을 해.”
“마라톤?” 그는 뜬금없다는 듯 되묻는다.
“응, 마라톤.” 나는 웃으며 재방송을 한다.
“그래도 한번인데 어때. 마라톤은 다음주에 하고 이번주는 골프나 치자.”
“골프는 한번 치기 시작하면 마라톤 연습을 할 시간이 없어. 그리고 나는 휴일 새벽에 일어나서 2-3시간 운전해서 골프장에 가는 것 자체를 싫어해.”
골프를 배우기는 했다. 워싱턴 특파원 생활에서 다른 특파원들이나 주재원, 외교관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골프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골프를 좀 잘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골프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골프를 쳐도 재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사교를 위해서 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운동이,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운동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골프는 4시간동안 18홀을 돌아도 땀이 별로 나지 않는다. 반면에 날씨가 좀 추워도 한강변에 나가 한 두 시간만 달리면 땀이 셔츠를 흥건하게 적신다. 휴일의 귀중한 시간을 운동도 하고 재미도 느끼는 일에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사회적인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활동을 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인생은 짧고 한정된 시간이다. 불가피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그 한정된 시간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일에 쓸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