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傳道)‘는 기독교 교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여 다른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전도 (傳導)‘는 그냥 “전하여 인도한다”는 뜻이다. 내가 얘기하는 전도는 후자의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다른사람도 좋아하기를 바라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옛날부터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많아야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발전해서 이런 생존 본능으로 진화한 것은 아닐까.
예컨대, 내가 빵대신 밥을 즐겨먹는다면 내 주위에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야 나에게 유리하다. 내가 소속된 사회가 밀 대신 쌀을 더 생산하려 할 것이고, 쌀을 이용한 요리법도 다양하게 개발할 것이다. 만일 누가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 대신에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는 자신처럼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어느정도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아이폰을 적극 추천할 것이다.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상 그런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나 사상, 취미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도 일종의 전도라고 할 수 있다.
마라톤이 취미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다.
“무릎은 괜찮아요?” 이 얘기는 바로 `마라톤하면 무릎이 상하기 때문에 나는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무릎이요? 옛날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요.”
“그래요? 많이 뛰면 연골이 많이 상하고 관절에도 안좋다고 하던데.”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얘기한다. 그는 다른사람들의 얘기를 그저 전하고 있다. 자신이 책을 읽어보거나 전문의에게서 조언을 들은 것이 아니다.
“나는 풀코스를 열여섯번 완주했는데, 아직 무릎이 멀쩡한데요? 관절도 문제없고.”
“나중에 더 나이 들면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어요? 지금은 모르지만.”
“그러면 황영조나 이봉주는 지금 목발 짚고 다녀야겠네요?”
“그 사람들은 젊었을 때 뛰었으니 괜찮겠죠.”
“그럼 나는 앞으로 십년쯤 후에는 다리를 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거죠?”
“글쎄,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좋지는 않을 것 같네요.”
이쯤되면 조금씩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무릎은요, 그 주위의 근육으로 보호하는 거예요. 달리지 않는다고 무릎이 보호되는 게 아니라구요.”
“아니, 달리면 무릎이 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있다구요.”
“그러니까 무릎 주위 근육을 강화시켜야죠. 나도 처음 풀코스를 완주할 때 무릎이 아팠어요. 그런데 헬스클럽에 가서 다리근육 강화운동을 몇 달하니까 풀코스를 달려도 무릎이 하나도 안 아프더라구요.”
“그래요?” 상대방은 그래도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라톤의 즐거움과 효능을 백번 얘기해봐야 소용없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부실한 소식통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무장하고 다른 정보는 철저히 배척한다. 마라토너이자 작가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가. “달릴 사람은 달리지 말라고 해도 달린다”고. 마찬가지로 “달리지 않을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달리지 않는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해 `전도‘가 소용없다는 얘기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멋있다‘고 감탄하거나 `저건 어떤 느낌일까’라는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달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악기도 마찬가지다. 회사동료들중 호기심에 피아노 학원까지 따라와 나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취재해서 기사 쓰고 술 먹는 모습만 이십년 이상 보여주던 친구가 갑자기 피아노를 배운다니까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나는 그를 옆에 앉혀놓고 `로망스‘를 연주했다. 그는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자네 인생 성공했네!”
몇 달 뒤 그는 피아노를 배울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가, 배움의 스트레스를 우려해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가족들이 말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몇 번이나 피아노 학원에 따라와 나의 연주를 듣곤했다. 그러나 그는 들으면서 미소만 지을 뿐 피아노를 배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네도 한번 배워봐.” 내가 말했다.
“배우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만 투자하면 되는데 뭐.” 내가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그 시간에 술 먹어야지.” 그는 술 때문에 실핏줄이 흉하게 불거진 코를 실룩이며 말했다.
“술은 매일 먹나?.”
“술 안 마실 때에는 쉬어야지.”
이쯤되면 두손을 들어야 한다. 이제는 전도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만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나의 취미를 공유하자고 권해봐야 소용없다. 결국 취미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