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를 넘어야 올라간다
한 후배는 학원까지 따라와서 피아노 연주를 듣더니 자기는 기타를 한번 배워보겠노라고 말했다.
“옛날에 배우려고 기타를 집에다 사놓은게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미안해서.” 그는 말했다.
“그래? 기타는 쉽지. 몇 달만 배우면 웬만한 코드는 다 잡을 수 있고, 웬만한 노래는 다 칠 수 있어.”
“근데, 조금 해보니까 기타줄 잡는 손가락이 좀 아프더라구요.”
“아픔 없이 되는게 있나?”
“그럼, 한번 해보죠.”
그는 일단 한 달간의 기타 렛슨 등록을 했다. 그리고는 첫 2주일동안은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4주째 되는 날 자신 없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이 비마이너(Bm) 코드를 가르쳐줬는데, 잡기가 어렵네요.”
“그거? 비마이너만 잡을 수 있으면 기타는 끝나는거야. 잘 연습해봐.”
그러나 그는 결국 `비마이너‘에 대해 불평을 계속하다가 학원을 그만뒀다. 나의 악기렛슨 전도가 결국 실패로 끝난 것이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비마이너’는 어느 악기에나 다 있다. 그 언덕을 넘는 노력은 어떤 악기든 일정 수준에 오르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악기뿐만 아니다. 마라톤에도 `비마이너‘가 있고, 공부에도 `비마이너’가 있으며, 인간관계에도 `비마이너‘가 있다.
문제는 그 언덕을 넘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그리고 그 의지를 갖고 노력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그 선택을 어느 쪽으로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는 대학생활을 포함해 5-6년간 고시공부를 했으나, 최종합격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몇 년간 고시공부를 할 수도 있고, 그 시점에서 포기하고 일반 회사 입사시험을 볼 수도 있다. 그가 고시에 합격해 고급공무원이 되는 것과 입사시험에 합격해 나중에 회사의 임원이나 사장이 될 가능성을 갖는 것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고시에 떨어지고 회사에 들어간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고시공부에서는 `비마이너’라는 언덕을 넘지 못했으나, 일반 회사생활에서는 `비마이너‘라는 언덕을 넘어 임원이 될 수도 있다. 또 설사 그가 고시에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그때부터 더 높은 단계의 `비마이너’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그가 고급공무원의 `비마이너‘와 일반 회사원의 `비마이너’중 어느쪽을 더 수월하게 뛰어넘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그가 갖는 가치와 야망일 것이다. 그가 공무원 쪽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야망을 갖는다면 그는 어떤 `비마이너‘든 뛰어넘을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어떤 종류의 `비마이너’도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일생에 이루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