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romise
“침이 잘 안 나오는데요. 입안이 바짝 마르고, 빵 먹을 때 침이 잘 안나와 너무 푸석푸석해서 먹기가 힘드네요. 침샘도 하루 걸러 붓고.” 갑상선암을 수술한 의사에게 말했다. 2008년에 왼쪽 갑상선을, 2012년에 오른쪽 갑상선을 각각 떼어냈다. 그리고는 림프절까지 전이됐다고 해서 2013년2월 3박4일 입원하면서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까지 받았다. 그때 동위원소의 방사능이 침샘을 공격했다. 그 뒤 별로 후유증을 모르고 살았으나, 만 일년이 지난 뒤 후유증을 심각하게 느끼게 됐다. 침샘염이었다.
“지난번 드린 약은 어땠어요?” 의사가 물었다.
“별로 효과가 없던데요.”
“그건 약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한번 타격을 받아 파괴된 침샘은 복구가 안돼요. 그러니 온전히 남아있는 침샘과 침이 나오는 관이라도 잘 관리해야 됩니다.” 의사가 근엄하게 말했다. 의사는 입안이 마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입속에 뿌리는 약과 구강건조증 치료제를 처방해줬다. 그러면서 말했다.
“인공 침은 있기는 있는데, 너무 비싸요.”
그 말은 충격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뱉던 침이 너무 비싸다니. 그리고 그런 인공침이 존재한다니. 한때 침이 너무 잘 나와 귀찮던 때도 있었다. 그 침이라는 것이 식도를 보호해주고, 위속의 제산효과도 있으며, 활성산소도 제거해주고, 소화도 잘 되도록 해준다고 한다. 그밖에도 소장 대장의 기능을 활성화시켜주고,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우리 몸의 자연 치유 능력을 도와준다고 한다. 가히 만병통치약이며, 건강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액체다. 그런 침을 나는 왜 뱉었었던가. 우리는 무엇이든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것의 귀중함을 모른다. 그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이제는 일정량의 침은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갖고 있는 침이라도 잘 유지해야 한다.
침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은 늘어난다. 언젠가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악보가 또렷하게 보인 적은 없으나, 그날은 유난히 악보가 흐리게 보였다. 그래서 악보를 보며 건반을 누르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악보가 안보이지?”내가 혼잣말을 하자, 레슨을 해주던 곽샘은 옆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20대의 곽샘이 그것을 이해할 리가 없다. 그녀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과를 한번 가볼까? 안경을 바꿔야 하나?” 나는 그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곽샘에게 악보를 잘 못 읽는데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 듯이.
그런데 그것을 왜 그렇게 늦게 깨달았는지 모른다. 노안 때문이었다. 눈은 노화되고 있는데 안경은 계속 멀리 있는 물체가 가장 잘 보이는 도수의 렌즈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를 걸어가며 모든 물체를 또렷이 볼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눈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길을 찾을 때에도 간판이나 빌딩의 이름이 선명하게 보이니 좋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이 돋보기를 쓰기 시작할 때에도 나는 오목렌즈를 끼고 신문을 읽었다. 그런데 이제는 신문의 글자가 많이 흐려진 것이다. 그리고 악보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눈의 노화과정이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고 느꼈던 것이다. 악보를 복사했다. 그리고는 회사 근처의 안경점에 갔다.
“피아노 치는데 악보가 잘 안보이네요. 안과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오면 되나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여기에서 렌즈를 바꿔서 껴보세요. 돗수를 좀 낮춰드릴께요... 어떠세요?” 그가 시험용 안경에 두세 벌의 렌즈를 갈아 끼워주며 물었다.
“어, 잘 보이는데요. 악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악보를 보며 감탄했다.
“돗수를 낮춘 거예요. 그러니 누진 다초점 렌즈를 끼시면 멀리 있는 것도 선명히 볼 수 있고, 가까이 있는 것도 잘 보실 수 있어요.”
“난 그런 건 싫은데. 그냥 도수를 낮춘 안경을 쓸께요.”
“그럼 멀리 있는 물체가 선명하게 안 보이실 텐데요.”
“상관없어요. 멀리 있는 물체를 선명하게 볼 필요가 별로 없어요. 지금 중요한 건 가까이 있는 신문이나 악보를 제대로 읽는거니까.”
사실 아침에 전철에서 신문을 읽는 것과 저녁에 피아노 학원에서 악보를 선명하게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도수를 낮췄다 해도 멀리 있는 물체들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다 볼 수 있었다. 도수를 두단계 정도 낮춘 안경을 쓰니 악보 읽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멀리 있는 물체를 선명하게 보는 능력이었다. 평소에 여분의 안경을 갖고 다니지 않으니 필요할 때 내 눈에 딱 맞는 도수의 안경을 쓸 수 없는 단점은 있었다.
`멀리 또렷하게 보는 건 포기해야지.‘ 좀 섭섭하긴 하지만 중요한건 신문과 악보를 잘 보는 것이니까. 영어로 타협한다는 뜻의 `compromise'에는 `무엇을 위해 또다른 무엇을 포기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이제 왜 그 단어가 두가지 뜻을 갖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눈이 노화되는 현실과 멀리 볼 수 있는 능력 사이에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멀리보는 능력을 `compromise'한 것이다.
담배는 워싱턴 특파원 시절 끊었으나, 술은 아직 끊지 못했다. 그러나 술도 역시 포기해야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동위원소 치료의 후유증으로 침샘이 타격을 받았으나, 본격적인 문제가 나타난 것은 지난 연말에 술을 많이 마신 이후부터다.
“술과 커피는 몸 속의 수분을 배출시키기 때문에 침샘에 좋지 않아요. 될 수 있으면 마시지 마세요.” 의사가 말했다.
그러나 술과 커피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다. 특히 아침에 단팥빵을 곁들여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맛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단 맛의 빵과 쓴 맛의 커피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입속을 즐겁게 해준다. 그 커피의 향은 아침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동시에 몸에 활력을 준다. 커피를 마시면 글도 더 잘 써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커피를 포기하라니. 아직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두렵다. 이러다가 침샘염이 악화되면 어쩌나. 나도 최인호처럼 침샘암으로 가는 것 아닐까.
술은 더 문제다. 젊었을 때 특히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 새벽 2-3시까지 폭탄주를 마시고 새벽 5시에 경찰서를 돌며 취재한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후 술은 동료들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친분의 촉매’ 역할을 했다. 이제는 그런 술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 포기할 때도 된 듯 싶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취미인 마라톤과 피아노는 죽을 때까지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래도 노화과정으로 내 몸의 운동능력은 서서히 저하될 것이다. 해외토픽에 나오는 사람처럼 내가 100세가 돼서도 마라톤대회에 나갈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내가 그렇게 건강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눈이 노화되고 있지 않은가. 노화 속도를 늦출 방법이 발견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 취미들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정말 살 맛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결국 나이가 들면서 하나 둘씩 포기하다가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게 되면 마지막에 삶을 포기하게 된다. Compromise! 인생이란 갖고 있는 것을 하나씩 `Compromise'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