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여름

by 비마

다른 나라의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외국에서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 특히 스포츠대회에 많이 취재를 다녀보았기 때문에 미국생활도 별 것 아니려니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미국은 처음이었는데, 막상 워싱턴에 도착해보니 1년을 지낼 일이 아득했다.취재를 하기 위해 잠깐 외국에 머무는 것과 외국에서 1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생활하는 것은 크게 달랐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달랐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이 사람들과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면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 가장 부담이 됐다. 그것은 마치 미국인들에게 “당신들과 나는 같은 편이 아니야”라고 떠들면서 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털이 하얀 개들 속에 들어간 노란 털의 개처럼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불안했다고나 할까. 막연하게나마, 피부색을 비롯해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에게는 경계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때로는 적의마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인이건 유럽인이건 백인들은 다 비슷하게 보인다. 스페인 사람이나 이탈리아 사람이나 미국에 오면 말은 미국식의 윤기흐르는 영어를 쓰지는 못하겠지만, 체격이나 얼굴, 피부색으로는 미국인과 잘 구별이 안된다. 흑인들도 숫자가 많다보니, 어디를 가나 흑인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당연히 그곳에 있다.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 살게 된 것이지만,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라도 미국인으로 보인다. 때문에 어쩌다 영어를 못하는 흑인들을 보면 이상하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워낙 숫자가 적기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나 원어민같은 영어를 쓰는 한국 또는 일본인 2세, 3세라 해도 거리를 걷다보면 이방인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더욱이 처음 미국에 온 동양인이라면 피부색은 물론, 행동도 말도 다 이방인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한동안은 자신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불편하게 지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인구는 1990년 현재 2억5천만명이며 그중에 백인이 2억명, 흑인이 3천만명, 히스패닉 (라틴계)이 2천2백만명, 아시아계가 7백만명이다. 아시아계는 2.8%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밖에는 아메리칸 인디언이 1백96만명, 기타 인종이 7백80만명이다. 백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많아 보이는 흑인들도 12%밖에 되지 않는다.


아시아계 사람들은 백인이나 흑인들의 텃세를 항상 의식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미국에 처음 발을 디딘 동양사람들은 그것을 더 민감하게 느낀다. 그리고 매사에 조심을 해야한다.


예를 들면, 서투른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공격적으로 또는 무례하게 보이지 않기위해 조심을 해야했다. 어디를 가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항상 누구에겐가 물어야 했고, 그 질문이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될 지도 미리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어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지만, 미국에서는 말하기 전에 또는 행동하기 전에 하나하나 그 결과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해봐야 했다.


현지 제도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눈치도 중요하고 순발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눈치없고 둔한 편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여행을 하면 사람이 겸손해진다던가. 어쨌든 미국에 왔으니 미국 법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었고, 눈치껏 그곳의 제도에 적응해야 했다. 어린애라면 그런 적응이 빠르겠지만, 나이가 마흔살 정도 되면 그게 쉽지가 않은 일이다.


이런 스트레스들은 나중에 어느 정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적응이 되면서 많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나도 당연히 그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현지인들도 당연히 나를 그렇게 여길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생활이 그렇게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되면 그때는 ‘이제는 미국생활에 어느정도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한다. 혼자서 운전면허를 따고, 사회보장카드도 받아보고, 혼자서 차를 몰고 8시간 동안 운전도 해보고, 아파트 입주계약도 해봐야 한다. 그런 일들은 미국에서 몇 년이든 살려면 반드시 겪어야 할 절차들이었지만, 한국 문화와 절차에만 익숙해져있던 나로서는 무엇하나 쉽지가 않았다.


워싱턴에서의 한달은 미국생활에의 적응기간이었던 셈인데, ‘어려웠다’ 또는 ‘힘들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워싱턴 생활이 끝났을 때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렴풋이 알게된 것 같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선배의 말씀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연수도 하고 워싱턴 특파원생활도 했던 그는 내가 미국 연수를 간다고 하니까, “미국을 어느 정도 알게되면, 친미파 (親美派)가 되고 그 이상 미국을 알게되면 반미파 (反美派)가 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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