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인들, 어디에 사나

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by 비마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납힐(Nob Hill) 아파트’라고 부른다. 처음 집을 계약할 때 캐롤린 프린스 (Carolin Prince)라는 사무원 아줌마는 재정보증서, 은행관계 서류, 재직증명서 등을 요구했다. 1년동안 내가 제대로 집세를 낼 능력이 있는 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집세는 한달에 452불 (38만원 정도).


시라큐즈대학이 있는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이 아파트는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들이 그렇듯이 공기도 맑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아침 저녁으로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거나 가볍게 뛰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아파트 단지는 그리 넓지 않다. 붉은 색의 벽돌로 지은 5층 또는 6층 짜리 건물 4개가 “ㄴ”자 모양으로 서 있다. 그 단지를 뛰어서 한바퀴 도는 데는 약 10분이 걸린다.


그런데, 낮에는 까마귀 소리가 좀 귀에 거슬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까마귀는 이 지역에만 많은 것이 아니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원래 까마귀가 많다. 아파트 주위를 뛰다보면 갑자기 “까악”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한 마리가 울 때에는 섬뜩할 정도로 기분이 나쁘고, 여러마리가 한꺼번에 울어대면 참기힘든 소음이 된다. 나는 처음에 그 새가 까치이기를 바랬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월세를 내려고 들렀을 때 물어보니, “crows (까마귀)”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면서 차차 느낀 것은 엘리베이터가 무척 느리다는 것과,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도 그렇게 느리게 작동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날씨가 좋으면, 혼자서 또는 부부끼리 아파트 주위를 걷는 노인들을 많이 본다. 부부가 함께 걷는 경우보다는 혼자서 걷는 노인들을 더 많이 보았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더 많은 모양이었다.


어떤 때에는 이런 노인들이 안됐다고 느낀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따라 내 방으로 가고 있었는데, 앞에서 등이 심하게 굽은 노파가 오고 있었다. 내가 “하이”하고 인사를 하니까, 이 노파는 갑자기 “여보시요”하고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이 휘파람 소리를 당신도 들을 수 있오?” 복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요.” “그렇겠지.” 노파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환청이었다.


이 할머니는 몇 달 뒤에 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인사를 하자 이번에는 “여보시우, 오늘이 토요일이유 일요일이유?” 하고 물었다. 이쯤되면 혼자사는 할머니이고,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어하며 자기의 감각, 즉 청각이나 시간에 대한 감각등에 대해 자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글세,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을 두고 연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아파트 건물 1층에는 우편함이 있고, 파티를 열 수 있는 넓은 방과, 사람들이 앉아서 잡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1층에서는 항상 60-70년대의 팝송이 흘러나왔다. 예를 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When a man loves a woman)"라든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오늘밤 외로우세요 (Are you lonesome tonight)?" 등의 ”구닥다리“ 팝송만 들을 수 있었다. 빠른 템포의 랩송이나 최근에 유행한 ”마카레나 (Macarena)"같은 노래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는 한달에 한 번씩 “납힐 신문”이라는 것을 발간한다. A4 용지 크기 4면이 들어있는 일종의 아파트신문이다. 내용은 건강과 영양, 날씨, 보험, 요리클럽 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기사라고 해야 엉성하게 다른 신문을 베껴놓은 것이지만 노인들에게는 유용할 수도 있는 정보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전국 건강영양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년중 3월에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가고 8월에 가장 적게 나간다고 한다. 이것은 생물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우리가 그 계절에 먹는 음식과 할 수 있는 운동과 관계가 있다”라고 일반적인 건강정보를 알려주는 기사도 있다.


한달간의 일정을 적어놓은 달력도 한 면을 차지한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혈압검사”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포커 클럽”같은 시간도 들어있다. 혈압검사라는 항목은 당연히 노인들을 위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노인들의 돈으로 운영된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니까.


이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서 7년을 근무했다는 캐롤린 프린스 아줌마는 이 아파트단지에는 761개의 아파트가 있고, 그 속에 모두 1,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중의 25%-30%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등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노인들이었다. 다시말하면, 이 아파트에는 노인들 아니면 외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들의 80%는 혼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캐롤린의 설명이었다.


“그럼, 가끔 노인들이 죽어서 발견되는 일도 있습니까?”

“예, 가끔 있어요.”

캐롤린은 나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1년에 한 번 정도?”

“아... 예, 1년에 한 번 정도.”


그러나, 나는 그녀의 떨떠름한 대답과 표정에서 그보다는 훨씬 더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한 달에 한 번 정도냐고 물으면, 그녀는 또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았다. 캐롤린은 자기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설명을 계속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서로 연락을 해요. 그래서 누가 며칠 째 전화도 받지않고, 나오지도 않는다면 아파트 사무실에 연락하죠. 그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요.”


하긴, 살다보면 이웃 친구도 생기고, 서로 의지가 될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멀리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내가 혼자 살다 죽는 노인들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한 이유는 가끔 아파트 전속 수리공과 관리인이 아파트 마다 돌아 다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대개는 일주일 전에 문밑으로 “언제 아파트 검사를 할테니 문을 열어놓으라”고 적힌 통지서를 보낸다. 그리고는 주인이 있던 없던 아파트에 들어와서 화재경보기도 검사하고 눈으로 아파트내부를 훑어보기도 한다.


두 번 정도는 내가 없을 때 그들이 다녀간 것 같다. “당신이 없을 때 아파트를 보고 갔다”고 적힌 쪽지가 문밑에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늦잠을 자고 있는데 그들이 문을 두들겼다. 한 대여섯번 두들겨서 대답이 없으면 그냥 들어올 기세였다. 그들은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오더니 한명은 화재경보기를 검사하고, 한명은 방안을 둘러보고 무엇인가를 메모하더니 나갔다. 그들이 들어왔다 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도 채 안 된 것 같았다. 그러니, 혹시 혼자 살다 죽은 노인이 있더라고 이런 식으로 발견이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이 아파트에 들어왔어요?”

“내가 7년 전에 처음 이 아파트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있었으니까, 아마도 한 10년은 된 것 같아요.”


씨라큐즈에서도 이 지역은 노인들의 거주지역이었다. 바로 마주보이는 언덕에 “브라이튼 타워즈 (Brighton Towers)"라는 노인들 전용 고층 아파트가 있었고, 그 옆에는 ”로레토제리애트릭 (Loretto Geriatric)"이라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노인병 전문 의료기관이었다. 처음에 집을 구하러 다닐때 멋있게 지은 고층(아마도 30층 정도) 아파트인 브라이튼 타워즈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계약 담당자는 내 질문을 듣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보기에 아직 여기 들어올 나이는 안된 것 같은데..." 그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60세 이상 (60 years or older)이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납힐 아파트는 1969년에 처음 지었는데, 원래 노인들 전용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아니라는 것이 캐롤린의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이곳에서는 노인들이 혼자 사는 것을 보니 좀 안됐어요.” 내가 동정어린 어조로 말하자 캐롤린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노인들은 자기들이 혼자사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자식들과 떨어져서 사는 거죠. 자식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도 많이 있어요.”


캐롤린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야 좋을 지 몰랐다. 내가 듣기로는 이것이 미국의 관습이요 문화였던 것이다. 혼자사는 노인들. 그들이 과연 혼자 살기가 좋아서 혼자 사는 것일까.


차제에 미국 가정을 한 번 살펴보자.


미국교육기구 (IIE)가 연수생들을 위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996년 현재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78세다. 85세이상의 연령층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는 전체 인구 2억2,600여만명중 230만명이 85세 이상이었으나, 89년에는 전체 인구 2억5천만명중 85세 이상 인구가 300만명으로 늘어났고, 80년에 100세 이상 인구가 15,000명이었으나, 89년에는 61,000명으로 급증했다. 89년에 8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인구의 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89년에 전체인구 42,449,000명중 263,000명이 80세 이상으로 전체인구의 1%를 차지했다. 85세 이상 인구의 통계는 없다. 따라서 미국쪽이 더 노령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의 연령분포를 보자. 1960년에는 18-24세 인구가 전체의 36%, 65세 이상 인구가 9%였는데, 90년에는 18-24세 인구가 26%, 65세 이상 인구가 13%로 변화했다. 2030년쯤에는 18-24세 인구가 22%, 65세 이상 인구가 21%로 두 연령계층의 숫자가 비슷해 질 것으로 이 자료는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96년 현재 6%. 그러나 한국도 빠른 속도로 인구가 노령화되고 있다. 노인복지 문제가 과연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샌드위치 세대”라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식들과 부모를 함께 돌봐야 하는 세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대부분 자식들은 부모와 떨어져 살고, 부모들은 납힐 아파트 같은 데서 혼자 살거나, 노인요양기관 등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작가의 이전글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