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씨라큐즈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무엇이든 사려면 대형 매장에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소개되기 시작한 대형 할인매장 (Discount Store)들이 이곳에는 무척이나 많다. 인구가 불과 50만 정도인데도, K-마트와 월마트 (Wal★Mart)를 비롯해, 비제이 (BJ's), 위쯔 (Nobody-beats-the-Wiz), 리치미어 (Lechmere), 웨그만 (Wegmans), 프라이스 초퍼 (Price Chopper) 등 많은 할인매장들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다.
서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네 수퍼마켓은 발견하기 어렵다. 단, 흑인들이 사는 달동네를 지나가다 보면 가끔씩 구멍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의 구멍가게 역할은 이곳에서는 주유소가 하고 있는데, 담배를 비롯해, 콜라등 음료수, 빵, 커피 등을 판다. 주유소의 물건값은 할인매장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비싸다.
따라서, 주민들은 일주일 정도에 한 번씩 대규모 쇼핑을 한다. 웨그만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K-마트나 월마트에 가서 가습기등 공산품을 산다. 큰 전자제품들은 리치미어나 위쯔에 가서 사는데 그것도 거의 주말마다 하는 할인대잔치 (Sale)때 신문에 나는 쿠폰(coupon)들을 오려가지고 가서 싸게 사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전자제품의 값이 매우 싸다는 것.
31인치 텔레비젼을 사기위해 리치미어에 갔을 때 일제 파나소닉 텔레비젼을 불과 600불 (한화 약 50만원)에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29인치 텔레비젼을 100만원 넘게 주고 샀던 것을 기억하면, 거의 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이다.
그러나, 물건값이 600불이라고 해서 그냥 600불만 주면 낭패를 당한다. 점원은 흥정이 끝나면 계산기를 두드려보고는 “660불입니다”라고 말한다. 세금은 따로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처음부터 물건값에 간접세를 붙여서 가격을 매기는 한국과는 다른 체제이다.
브이씨알 (VCR)도 쓸만한 4 헤드 제품을 110불 (10만원 정도)에 샀다. 골프채는 한국에서 100만원이 넘는 맥그리거 제품이 불과 300불 (25만원 정도).
컴퓨터는 96년 12월 현재 펜티엄 200메가헤르쯔의 컴팩제품이 15인치 모니터를 포함해 세금까지 2,400불 정도 (약 200만원)였다. 한국에서는 당시 아직 나오지도 않은 제품이었다. 컴퓨터 쇼퍼 (Computer Shopper)라는 잡지를 보면, 더욱 놀라게 된다. 펜티엄 프로 제품이 펜티엄 200메가 제품과 비슷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 주문하면서 신용카드번호를 일러주면, 이틀 후에 컴퓨터가 배달돼 온다. 다른 주에서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도 없다. 이 컴퓨터들은 대부분 12배 속의 씨디롬 (CD-Rom)을 내장하고 있었다. 단 하나 결점은 내장 소프트웨어가 많지 않다는 것. 대형 전자제품 매장에서 파는 컴퓨터에는 보통 34종 정도의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으나, 우편주문으로 사는 컴퓨터에는 기껏해야 5-6종의 소프트웨어밖에 들어있지 않다.
휘발유값은 한국의 3분의1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1갤런 (약 3.78 리터)당 가격은 중급 (Special)이 1불45센트 정도 (1,200원). 96년12월말 현재 한국의 휘발유값은 1리터당 900원정도.
이처럼 일일이 한국과의 가격을 비교하다보면 한국에서는 바가지만 쓰다 온 것 처럼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모든 한국사람들이 다 같은 값을 치르니까 나혼자 바가지 쓴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한국기업들이 가전제품 분야에서는 정말 많은 보호를 받아왔다고 느끼게 된다. 한국 시장에 당장 50만원짜리 31인치 텔레비젼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또 200만원 짜리 펜티엄 200메가 컴퓨터가 96년 가을에 상륙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모든 것이 이처럼 싸지는 않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상품, 또는 아이디어가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종류들은 가격이 비싸다. 자동차 수리비용은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엔진오일을 바꾸는데 약 20불 정도 드니까. 비디오 대여료는 한 개를 이틀 빌리는 데 3불35센트 (약 2,700원). 한국에서1개 빌리는데 500-1,500원 정도라고 보면 거의 두배 정도 비싼 셈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가상 비행 (Flight Simulator for Windows 95) 프로그램이 53불 (약 45,000원) 정도. 마이크로 소프트 오피스 97프로그램이 530불 (448,000원 정도).
담배값도 비싸다. 말보로 라이트 1갑에 주유소에서는 2불75센트 (약 2,300원). 월마트에서는 10갑 단위로 파는데 1갑에 1불75센트 (1,470원 정도). 가장 싸다는 인디언보호구역에 가야 겨우 1갑에 1불45센트 (1,230원) 정도다.
누구나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화폐가치를 잘 못 느끼는 수가 많다. 1불, 10불 등을 “이까짓 것 쯤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손쉽게 써버린다. 돈처럼 생각이 들지 않고 그냥 종이쪽지 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환율을 꼼꼼히 계산해서, 1불을 쓰면서 “이건 840원이지”라고 말한다. 10불은 8,400원.
그러나, 미국 화폐가치와 한국 화폐가치를 환율로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불이 840원이라고 해서 10불이 8,400원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1불은 1천원, 10불은 1만원이라고 생각해야 비로소 자기가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그래야 화폐가치가 느껴진다. 1불쯤이야 하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것저것 물건을 사러 다녀보면 1불은 큰 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수퍼마켓도 두군데가 있다. 한스(Han's)와 안스 (Ahn's). 이곳에서는 미국 식료품 매장에서 살 수 없는 한국 식품들을 살 수가 있었다. 큰 병에 담아서 파는 김치 (배추 1포기정도 들어감)가 하나에 11불 정도였다.
이 지역 쇼핑센터들의 특징은 ‘세일 (sale)'을 많이 한다는 것. 대형 쇼핑센타에서는 휴일이나 국경일등에는 반드시 세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일요일을 앞두고는 ’휴일 세일 (Holiday Sale)', 추수감사절을 앞두고는 ‘추수감사 세일 (Thanks-giving sale)’,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크리스마스 세일’,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재고정리 세일 (Clearance Sale)’을 한다.
그러나, 연말 세일을 놓쳤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연초에는 또 새해맞이 싹쓸이 세일 (Clearance Sale)을 한다.
일요일 신문에는 각 쇼핑센타에서 보낸 광고지들이 거의 신문 두께만큼이나 많이 끼워져 배달된다. 그 광고지들에는 예외없이 할인권 (coupon)들이 들어있는데, 그것들을 갖고 가면, 물건값을 10%에서 50%까지 할인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멋도 모르고 평일에 가서 비싼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게 돼있다. 여러 곳에서 세일에 관한 정보를 모아가지고 가장 싼 곳에서 가장 싼 값에 물건을 사야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 이곳에서 “정보는 곧 돈”이다.
그러나, 상설할인매장들 즉, 케이마트 (K-Mart)나 월마트 (Wal★Mart), 비제이 (BJ's)같은 곳에서는 세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왕에 가장 싼 값에 물건을 팔고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단 하나의 문제는 상품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 예를 들어, 컴퓨터를 사려고 가면, 비제이에는 팩커드벨 (Packerd Bell)사에서 만든 제품밖에 없다. 컴팩 (Compaq) 이나 아이비엠 (IBM)같은 제품을 사려면, 위쯔나 리치미어같은 대형 전자제품 매장에 가거나, 오피스 맥스 (Office Max)같은 전문상점에 가야한다.
이런 대형 매장들이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서, 작은 상점들은 점차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다음은 1997년 1월11일 이곳 지역신문인 포스트 스탠다드 경제면에 실린 기사. 봅 니에트 (Bob Niedt)라는 기자가 쓴 이 훌륭한 기사의 제목은 “고든 형제들은 위쯔를 이길 수 없다. (Gordon Brothers Can't Beat The Wiz.)”
“이 지역의 전통있는 전자제품 소매점인 고든 형제상회가 이달 말 문을 닫는다. 이유는 인구에 비해 넘치는 할인매장들과 높은 세금. “우리는 경제와 씨름하기 바빴어요”라고 루이스 고든은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 루이스 에이취 (H) 고든은 1951년에 ‘고든 형제들’이라는 이 상점을 만들었다. ‘카루젤 쇼핑센터에 리치미어 (Lechmere)나 노바디비츠더위쯔 (Nobody-Beats-the-Wiz) 같은 대형 상점들이 들어와서 설치는 바람에 아주 어렵게 됐어요.’
에리路 2739번지에 위치한 고든형제상회는 이달 말에 문을 닫으면서 마지막 까지 남아있던 세명의 종업원을 졸지에 실업자로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고든 전자상회, 그 다음에는 고든형제들이라는 이름으로 경영해온 이 고든가족의 사업은 중부뉴욕지방의 고급 오디오, 비디오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루이 스 에이취 고든은 서 제네시街에서 루이스 굳맨 크라이슬러 자동차 판매점 옆에 작은 흰색의 건물을 빌려서 처음으로 그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들인 캐리 고든이 1960년에 사업을 인수받아 1966년에 현재의 위치로 점포를 옮겼다. 한때는 고든형재들은 씨라큐즈지역 주변에 있는 다른 대리점들을 흡수해서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캐리 고든의 아들인 루이스는 지난 13년 동안 가문의 사업에서 일해왔는데, 1992년에는 아버지로부터 이 사업을 인수받았다.
고든형제들은 그동안 사일로 (Silo)나 하이랜드 어플라이언스 (Highland Appliance)등 대형 전자제품 체인점들이 씨라큐즈에 들락거리는 와중에서도 살아남았으나, 1991년 리치미어가 들어오고지난해 (1996) 노바디비츠더위쯔 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경쟁이 힘겹게 된 것이다. 고든은 이런 대형상점들이 거의 매일 광고를 통해 강조한 염가판매의 개념에 대항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이 염가로 물건을 판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고든은 말했다. “위쯔는 로스리더 (loss-leaders)를 광고하지만, 나머지 제품들은 모두 똑같이 소매가격에 팔거든요. 물론, 소니 디스크맨이라는 제품을 위쯔에 가면 59불에 살 수가 있지만, 다른 제품을 보면 그것은 역시 우리와 똑같은 소매가격이예요.”
로스리더라는 것은 상점들이 소비자들을 자기들에게로 끌어들이기 위해 광고하는 상품들이다. 그 상점들은 그 로스리더 상품들을 아주 작은 이익을 남기고 팔거나 아니면 원가로 그냥 팔지만, 대신에 그런 상품들을 광고함으로써 더 많은 고객들을 끌어들여 다른 상품을 더 많이 파는 것이다. 한국말로는 "미끼상품" 정도 될 것 같다.
고든은 또다른 전자제품 할인 체인점인 서킷 시티 (Circuit City)가 역시 이 중부뉴욕 시장에 들어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우리가 고려해야 했던 상황이죠”라고 그는 말했다.
전국적으로는 전자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지출이 줄어들고 있다. 대형 체인점들은 이익 마진을 줄이면서 가격을 내리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더 많은 물건을 팔아서 그 줄어든 이익 마진을 보충하려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박리다매이다. 그런 판매방법은 영세한 가족단위의 상점들에게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
고든은 또 높은 토지가격과 높은 소득세도 역시 사업을 그만두도록 만든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역시 가문의 사업인 라린 할인점 (Ra-Lin Discount)을 경영, 지난 53년부터 고든형제들과 경쟁해온 알란 푸쉬터는 고든형제들의 폐업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참 안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푸쉬터는 말했다. ‘또 하나의 지역 상점이 문을 닫게돼서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고든형제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훌륭하게 사업을 해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