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전화비

시러큐스대 유학기 1997

by 비마

미국의 전화비는 천차만별이다. 모르는 것이 죄다. 모르고 사용하면 다른 사람보다 몇배의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제도가 바로 이 전화비 산정제도이다.


처음 아파트에 들어가자 마자 전화를 사고 이곳 지역 전화회사인 나이넥스 (NYNEX)에 전화를 걸어 전화개통을 부탁했다. 나이넥스는 이 지역 전화회선을 책임지고 있었고 미국내 장거리 전화나 국제전화는 다른 회사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도, 요금 청구서는 나이넥스에서 장거리와 지역 전화 요금을 한꺼번에 징수해서, 수수료를 뗀 뒤 장거리 전화회사에 한꺼번에 지불하고 있었다.


“장거리 전화는 어떤 회사를 이용하실 겁니까?” 나이넥스의 직원이 물었다.


“아, 에이티 엔티 (AT&T)요.” 내가 아는 장거리 전화회사는 에이티 엔티밖에 없었다.


“우리는 처음 전화를 개통하면, 에이티엔티의 요청으로 한달 사용을 200불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너무 액수가 많아지면 못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20일이 지났을까. 갑자기 장거리 전화가 불통이 되었다. 나이넥스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더니 “200불이 넘었습니다”라는 대답이었다.


며칠 후에 전화요금 청구서를 받아보니, 280불 (22만원 정도)이 나와있었다. 불과 20일만에 280불이라니! 한국으로 건 국제전화는 1분에 1불44센트 (1,200원 정도), 미국내 장거리 전화는 1분에 60센트 정도로 계산이 돼 있었다. 요금이 비싼데도 놀랐지만, 일방적으로 장거리 회선을 끊어버린 것에 너무 화가나서 10일간 장거리 전화를 쓰지 않았다. 나이넥스에 전화해서 돈을 지불했으니, 장거리 전화를 다시 개통시켜달라고 말하면 되지만, 그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게 귀챦고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나이넥스에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두달째가 되자 어느날 전화가 왔다. 엠씨아이 (MCI)라는 장거리 전화회사라는 것이다.


“지금 어느 장거리회사를 이용하고 계세요?”


“에이티 엔티요.”


“여기는 엠씨아이라는 회사인데, 우리 전화회사를 이용하면 1분에 44센트로 한국에 국제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 미국내 장거리 전화는 낮에는 1분에 10센트, 밤에는 1분에 9센트에 해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싼 요금도 있다니! 한국의 전화번호 몇 개를 말해주면 그 전화번호는 1분에 44센트, 지정되지 않은 전화번호는 1분에 1불44센트였다. 그렇게 싼 전화회사를 진작 이용하지 못했다니! 그걸 모르고 처음부터 에이티 엔티를 사용한 것이 너무나 원통했다.


엠씨아이로 장거리 전화회사를 바꾸고 나서 처음 나온 요금 청구서에는 불과 134불이 적혀있었다. 전화는 더 많이 썼는데도 요금은 거의 반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한국사람이었다.


“여기는 스프린트 (Sprint)라는 장거리 전화회사인데요. 지금 어느 전화회사를 사용하고 계세요?”


“엠씨아이요.”


“한국에 전화하실 때 1분에 얼마씩 내세요?”


“44센트요.”


“아, 그래요? 우리는 36센트에 해드리는데요. 우리 스프린트로 바꾸시죠.”


그러나, 엠씨아이로 바꾸고 나서 한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또다시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요금 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엠씨아이에서 요금이 비교적 싸게 나온 것에 대해 상당히 흐뭇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엠씨아이로 바꾼 지가 얼마 안되니까, 한 달쯤 후에 다시 전화하시면 그때 바꾸겠습니다.”


그런데, 11월 어느날, 다시 에이티 엔티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우리 에이티 엔티로 다시 바꾸시면, 한국내 어디로 언제 전화하시던지 1분에 37센트로 해드리고, 미국내 전화는 언제 어디로 거시던지 1분에 10센트로 해드립니다. 물론, 앞으로 6개월간만 유효합니다. 그리고, 30불짜리 수표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에이티 엔티는 처음에 바가지를 씌워서 괘씸하긴 했지만, 엠씨아이보다 싼 요금을 적용하겠다는 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30불까지 거저 준다는 것이 아닌가! 또 6개월 후에는 한국에 돌아가면 그만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전화회사들은 에이티 엔티, 엠씨아이, 스프린트등 모두 3개이다. 이들은 서로 싼 요금을 적용해, 보다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래서 서로 직원들을 시켜 각 가정에 전화를 해서 다른 회사의 고객을 빼앗으려 한다. 이들 3개 회사는 어느 고객에게도 조건을 달지 못하게 돼 있다. 즉, 싼 요금으로 우리 장거리 회선을 이용하는 대신 얼마동안은 다른 회사의 장거리 회선으로 바꿀 수 없다던가, 오늘 우리 회사의 회선으로 옮겼으면, 내일 다른 회사의 회선으로 옮길 수 없다던가 하는 조건이 없다. 오늘 에이티 엔티를 사용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엠씨아이나 스프린트로 옮길 수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예 처음부터 싼 요금을 적용하면 사용자가 편리할 것인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왕창’ 바가지를 씌우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서로 싸게 해주겠다고 경쟁하고 있는 체제였다. 그 체제를 처음에는 몰랐지만, 언젠가는 알게 돼 있다. 그러면, 사용자는 자신이 ‘당했다’는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고,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좌우간, 이런 말도 안되는 전화비 산정체제로 경쟁을 하고 있는 이 장거리 전화회사들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하고 있다. 그 한 예가 엠씨아이의 대규모 감원.


에이티 엔티에 이어 미국내 2위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엠씨아이는 97년초에 전 직원 52,000명중 1,2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엠씨아이 대변인이 발표한 이유는 변화하는 통신시장에 적응해야하고, 지금 감원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은 직원들을 해고시켜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회선 재판매 회사들도 무수히 많다. 그 회사들은 장거리 전화회선을 할인된 가격으로 한꺼번에 무수히 산 뒤에, 일반 사용자들에게 싼 값에 제공한다. 그들은 그 대신에 앞에 다섯자리 고유번호를 누르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느 회사의 회선을 이용하던지 요금의 10%를 할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회선 재판매 회사를 이용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몰라서 사용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그들이 할인하는 가격의 기준이 바로 장거리 전화회사들의 가장 비싼 요금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이용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도 장거리 전화회사가 두 개가 있다. 한국통신과 데이콤. 그들은 이런 불합리한 전화요금 체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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