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와 우표

시러큐스대 유학기 1997

by 비마

납힐 아파트에 정착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갖가지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전기료, 케이블 텔레비젼 시청료, 전화비, 보험료 등등.


그런데, 희한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청구서 봉투 속에는 예외없이 또 하나의 봉투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 봉투가 실수로 끼어왔나 하고 생각했지만, 곧 그것은 돈을 낼 때 사용하는 봉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현금은 절대로 그 봉투로 보낼 수 없고, 모든 요금은 수표를 써서 부치도록 돼 있었다.


따라서, 은행에 구좌가 없으면 이런 요금을 낼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전기회사나 보험회사 등에 직접 찾아가서 현금을 지불하는 수 밖에 없는데, 매달 그런 짓을 하려면 무척이나 삶이 피곤해 질 것이다. 은행의 구좌는 운전면허증이나, 학생증, 주거증명등만 있으면 열 수 있다. 한국처럼 은행에 구좌를 개설하는 것이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돼 있다.


또 공공요금들을 모두 수표를 써서 우편으로 부치다보니, 우표가 필요하다. 우표도 역시 생활필수품인 것이다. 보통, 수퍼마켓이나, 웬만한 큰 식료품점에서는 다 우표를 판다. 그것도 한 장, 두장을 파는 것이 아니고, 10장, 20장 단위로 판다. 그것을 청구서가 올 때마다 한 장 한 장 뜯어서 편지봉투에 붙이는 것이다.


수표도 수표책에서 한 장 한 장 뜯는다.


상점에서 물건 값을 지불할 때에도 100불이 넘으면, 대부분이 수표를 쓴다. 그런 액수를 현금으로 지불하면, 점원이 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물건을 사러갈 때에는 항상 수표책이나, 신용카드를 갖고 가야 한다. 수표책은 미국생활의 필수품이다.


한국에서는 신용카드나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등으로 큰 액수의 물건값을 지불하고, 공공요금은 지로용지를 갖고 은행에 돈을 지불하면 된다. 미국과 한국의 체제들이 이렇게 다른데, 어느쪽이 더 편리한 제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이쪽의 제도에 익숙해지면, 이쪽의 제도가 더 편리하고, 저쪽의 제도에 길이 들면, 또 저쪽의 제도가 더 편리하게 생각될 것이다.


미국 제도의 특징은 은행에 당좌예금 구좌를 여는 것이 경제생활에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 만일, 은행 잔고를 초과하는 액수의 수표를 발행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신용이 문제가 되고, 신용이 문제가 되면 미국사회에서 은행과 거래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한두번 그런 일이 계속 되다보면 수표끊는 일도 어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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