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학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실 나로서는 반드시 학위를 취득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기자란 기사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가 문제지, 학사냐 석사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공부를 많이 한 박사라고 해서 공부를 덜 한 학사보다 더 기사를 잘 쓸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신문사에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을 ‘전문기자’라는 이름으로 채용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교실에 막상 들어가보니 학위코스를 하지 않더라도 토론에 참여하려면 예습을 열심히 해야했다. 하루에 보통 20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읽어야 예습이 됐다. 예습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강의를 따라갈 수도 없고, 토론에 참여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듣기나 말하기도 제대로 못하는데다 예습까지 안한다면, 교수에게나 학생들에게나 ‘지진아’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이왕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아예 학위코스를 신청하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학위코스를 신청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서류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선 추천서 3장이 필요했고, 대학원 수학능력 평가시험 (GRE) 시험을 치러야 했다. 또 토플시험 성적표도 다시 학교로 부쳐야 했다. 우선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교수 추천서와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등을 학교에 가서 만들어서 부치라고 했다.
9월중순께 GRE 시험을 치렀는데, 미국내에서는 GRE 시험이 의외로 간단했다. 우선 전화로 날짜와 시간을 약속하는데, 신청한 뒤 불과 일주일이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로 치르는 시험과 재래식 시험문제지로 치르는 시험등 두가지가 있는데, 컴퓨터시험이 보다 간편했다. 컴퓨터 시험은 학생들이 밀리지 않아서 비교적 시험을 빨리 치를 수가 있고, 시험문제 수도 재래식 시험보다 적었다.
9월말에 모든 서류를 다 제출했으나, 결과는 11월중순에서야 나왔다.
학위코스에 들어가자 여러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직도 그것이 잘 하는 일인지 어떤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도 학교에 얽매이지 않고 이곳저곳을 여행하거나, 여러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연수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위코스 신청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차라리 입학을 거절당하면 마음 편하게 여행이나 다니자’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기자생활을 하면서 1년 동안 외국에서 연수를 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1년 연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이므로, 나름대로 알차게 보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런데, 과연 1년 동안 공부만 하는 것이 알차게 보내는 것일까.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기왕에 학위 기회가 주어졌으니,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공부를 해도 얻는 것은 많다. 우선, 4과목을 듣는다면 일주일에 한 과목에 3시간씩 모두 12시간 수업이다. 수업에 그저 들어가서 앉아 있기만 해도 일주일에 12시간씩 영어듣기 연습을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숙제, 즉 페이퍼 (paper) 쓰는 것이 보통 과목당 레터용지 (8.5 X 11인치) 12페이지 짜리 2개 정도씩이니까, 거의 100페이지 만큼 영어작문을 하게 된다. 또 읽는 것은 한 과목당 보통 일주일에 200쪽 정도의 분량이니까, 일주일에 800쪽을 읽어치워야 한다. 거기에다 토론식 수업이니, 말하기도 늘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공부만 한다해도 영어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익혀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공부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미국의 이 구석 저 구석을 관찰해 볼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또 남들처럼 취미생활을 할 여유도 없어진다. 따라서 1년 연수 기간동안 쉬지는 못하고 맹렬히 공부만 함으로써 다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는 또다시 일에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