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미국의 대학원은 토론식이다. 교수들은 될 수 있는대로 말을 아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토론을 하게한다. 그리고 그것을 점수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침묵을 지키는 학생들도 있다. 하기야 경험으로 보면 나도 할 말이 많지만 영어가 자신이 없어서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교수들은 학기 첫 시간에 수업계획표 (syllabus)를 나눠준다. 그 계획표를 보면, 이번주에는 무슨 책을 어디에서 어디까지 읽어오고, 몇월 몇일까지 무슨 주제로 페이퍼 (paper) 를 써와야 하고, 시험은 언제 본다는 등 그 학기에 그 수업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대부분 알 수 있다.
언론학의 교수들은 대부분이 현직 기자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매주 무수한 관련 서적이나 잡지를 읽고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직접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그 분량이 하도 많아서 한때는 미국에서는 교수라는 직업이 해볼만한 직업이 아니라고 까지 생각이 들었다. 페이퍼를 내면 교수들은 바로 다음 시간에 성적을 매겨서 다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이의가 있는 학생은 얘기하라”는 말도 곁들인다. 한 학기가 끝나면, 교수들만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도 교수들을 평가한다. 교수들은 마지막 시간이 되면 학생들에게 평가용지를 나눠주면서 자신을 “평가하라”고 말하는데, 그 평가용지는 직접 학장실로 가게 돼 있다.
학생들의 수업태도도 가지각색이다. 모자를 거꾸로 쓰고 발을 의자에 올려놓은 채 교수와 의견을 주고받는 학생들도 있고, 열심히 콜라를 마시고 빵을 뜯어먹는 학생들도 있다. 한국의 대학같으면 어림없는 태도들이다. 나는 그것이 별로 좋은 태도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수들은 그런 태도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대개 한 과목은 일주일에 3시간씩인데, 가끔씩 두 번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는 과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루에 3시간을 해버리고 만다. 물론, 중간에 10분간의 휴식시간은 준다.
미국신문이라는 과목. 제리 랜슨 (Jerry Lanson)이라는 교수는 미국내에서 비교적 큰 신문인 새너제이 머큐리뉴스 (San Jose Mercury News)에서 20여년간 기자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처음 수업시간에 들어갔을 때 나는 랜슨교수가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하는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랜슨교수는 혀를 최대한 꼬아서 발음을 하면서 말하는 속도도 일반인들보다 상당히 빠른 것 같았다. 교수가 그렇게 빨리 말을 하니 학생들도 따라서 말을 빨리 했다. 게다가 학생들은 가끔 속어를 써서 다른 사람들을 웃게 했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혼자서 무표정하게 앉아있어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 수업시간만 되면 내 귀는 한껏 긴장해야 했다.
또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과목. 캐롤 리블러 (Carol Liebler)라는 40대 후반의 여교수는 앉아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수업을 이끌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데다 이론도 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어서 정말 어렵게 끝낸 과목이었다. 그 교수는 한국학생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미국학생들 하고만 얘기를 했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정말 괘씸하기 까지 했다.
너무 화가나서 그 수업시간에 교수를 골려주고 싶었다. 하루는 교수가 2차 세계대전 때에 미국 국방성이 제작해서 군인들에게 보여준 필름을 입수해서 수업시간에 보여주었다. 미국의 전쟁 참가 직전에 군인들에게 전쟁참가의 목적을 설득력있게 알려주기 위해서 제작한 영화였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중에서 “설득이론 (Persuasion Theory)"라는 것이 있다. 리블러교수에 따르면, 그 영화는 설득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
40년대에 만든 영화치고는 무척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교수가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 다른 학생들은 모두 설득이론과 그 영화를 연결시키려 했다. 그러나, 나는 “영화는 잘 만들었는데, 저 영화를 보고 미국이 반드시 전쟁에 참가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이론을 적용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는 아닌 것 같다고 삐딱하게 얘기했다.
교수는 약이 오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물었는데, 박사과정의 학생들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도 리블러 교수는 내 말이 신경에 거슬렸을 것이다. 기껏 힘들게 영화를 구해서 보여줬더니 딴 소리를 하다니!
그래도 리블러교수는 나중에 나의 논문 심사위원장을 흔쾌히 맡아주었다. 그녀는 좋은 교수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두 과목은 모두 화요일에 수업이 있었다. 미국신문은 아침 10시부터 1시까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1시부터 4시까지. 따라서 화요일은 점심도 못 먹고, 하루종일 스트레스 속에서 헤매야 했다. 그리고나서 집에 돌아오면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카펫위에 누워서 1-2시간 정도 선 잠을 자야했다.
수업시간에 오고가는 말들을 절반 정도 이해하는 데는 약 2개월이 걸렸다. 그 동안은 정말 화요일이 오는 것이 괴로울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매일 들으면 익숙해지는 것이 말이다. 말은 귀에 익어야 빨리 알아들을 수 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토론에도 참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또 하나 괴로웠던 것은 페이퍼 (Paper).
미국식 수업의 특징은 연구과제를 내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그 과제에 대해 연구해서 페이퍼를 써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페이퍼들이 그 과목 성적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과목의 페이퍼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한가지 주제를 자신이 선택한다. 나는 “어린이와 텔레비젼 광고”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그 다음에는 도서관에 가서 그 주제를 다룬 논문 10여편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는 그 논문들을 모두 읽고 그 페이퍼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1-2 쪽 정도 길이의 제안서를 교수에게 미리 내야한다.
페이퍼의 길이는 대략 12-15쪽 정도.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과목에서 배웠던 이론들을 그 논문들에서 찾아내서 논문들이 어떤 이론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어느 것이 가장 그럴듯한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지를 설득력있게 써야한다.
언론윤리라는 과목. “포르노와 언론자유”라는 주제에 대해서 12쪽을 써야했는데, 12권의 책에서 포르노의 역사와 법원의 판례, 현재의 포르노관련 규제에 대해 읽고, 자신의 주장을 써야했다. 그 주장의 근거는 물론, 책에서 찾아야 했다.
미국신문이라는 과목. 현재 미국신문이 21세기에 대비해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지 취재를 해서 잡지기사 스타일로 페이퍼를 써 오라고 했다. 교수는 학생들이 될 수 있는대로 범위를 좁히고 구체적으로 페이퍼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쓴 것은 “오디오텍스 (Audiotex)”라는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분야였다. 독자들이 신문사에 전화를 걸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나는 그 페이퍼를 위해 이 지역 신문사에 찾아가서 담당자와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고, 워싱턴 포스트의 오디오텍스 담당자, 새너제이 머큐리뉴스의 전자신문 담당자등 여러 사람들과 전화로 인터뷰를 해야했다.
그리고는 학기 말에 시간을 쪼개어 각 과목의 페이퍼를 쓰는데, 어느 날은 새벽 5시까지 꼼짝 못하고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야 했다. 그것은 고역이라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고, “고문‘이라는 말로 표현해야 적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