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들만이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메리칸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강의하고 있는 게리 위버 (Gary Weaver)라는 교수는 그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미국사회에서는 백인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유색인종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 수준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따라서 백인들의 의식 속에는 알게 모르게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저절로 느껴진다. 유색인종은 저절로 주눅이 들기 쉽고, 백인들은 유색인종이 주눅이 드는 것을 봐야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교육수준이 낮은 백인들도 그렇다. 주유소에서 담배를 살 때 매우 뚱뚱한 백인 여자가 나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한국인 친구가 “얼굴을 보면 성인인 줄 모르느냐. 왜 굳이 신분증을 보자고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그녀는 굳이 신분증을 확인했다. 나는 그녀에게 차별당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내 나이를 젊게 봐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낮에, 학교에 가려다 자동차의 오일을 점검해보니, 충분치가 않았다. 엔진오일을 갈고나서 고장난 깜박이 (blinker)를 사려고 자동차 부속품점에 들렀다가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점원이 나에게 불친절했던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점원들이 가끔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으레 인종차별을 생각하게 된다.
“깜박이를 찾는데요.”
“어떤차요?”
“93년산 토러스요.”
“어느쪽이요?”
“왼쪽 뒤에 있는 거요.”
그는 깜박이를 직접 찾아주었다. 거기까지는 괜챦았는데 거기에서부터 그는 불친절하게 나왔다.
“얼맙니까?”
그러자, 그는 내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집코드 (Zip Code)"라고 말한 것이다.
“뭐요?”
“집코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대개 그런 것을 물을 때에는 “우편번호가 뭐죠?”라고 묻는 것이 정상인데, 그는 간단하고 불친절하게 물은 것이다.
나는 그때 ‘아, 이 친구가 나에게 나름대로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점쟎게 나가야지. 이런 친구와 싸울 수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 우편번호를 일러주고 ‘고맙다’는 말까지 하고 나왔으나, 그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당히 기분이 언쨚았다. 물론, 가진 게 피부색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려니했으나, 생각할수록 기분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종간의 갈등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다 보니 미국사회는 “도가니 (melting pot)"나 ”샐러드 (salad)"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인종문제가 언젠가는 미국의 치명적인 골치거리로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미국에서 흑인대통령이 나온다면 인종갈등이 어느정도 해소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10년후일까, 아니면 100년 후일까. 아니면 영원히 그런 일은 없을까.
11월5일. 이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체를 서서히 보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이날 미국신문이라는 과목의 주제는 뉴스의 다변화 (diversification) 였다. 요지는 신문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골고루 신문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주로 인종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미국에서 "diversification"이라는 단어는 주로 인종문제를 얘기할 때 쓴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됐다. 뭐든지 너무 백인에만 치우치지 말고 다른 인종들의 입장도 공평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날 수업에서는 흑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흑인기자를, 라틴계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라틴계 기자를 써야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아니면 흑인사회에 고정적으로 출입기자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됐고, 교수도 인종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수업이 끝난 뒤, 밖으로 나오면서 같은 수업을 듣던 흑인인 칼 터너 (Karl Turner)라는 친구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그는 나와 다른 수업도 함께 듣고 있어서 익히 얼굴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수업시간에 나름대로 상당히 조리있는 의견을 제시하곤 해서 주목하고 있었다. 교수들에게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나를 보면 먼저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서먹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걸어본 것이다. 그저 한두마디 인사말이나 교환하고 가려고 했으나, 그가 갑자기 수업시간의 주제를 꺼냈기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다.
“대영, 우리 수업시간에 토의한 다변화 (diversification) 기억해요?”
“아, 그럼.”
“한국에도 그런 문제가 있어요?”
“어떤 문제?”
“인종간의 친화를 위한 기사의 다양화 같은 문제.”
“아, 우리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그런 인종갈등은 없어.”
“아니, 인종문제 뿐만 아니라 빈부갈등이나 사회계층간의 문제도 없어요?”
“아, 빈부간의 격차가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요즘은 경제발전으로 차차 해소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여기에서 다른 동양인들을 보면 그게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아니면 동남아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어요?”
“대개 알지.”
“한국에는 외국사람들이 없어요?”
“아, 요즘에와서 인건비가 싼 동남아 사람들을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할 수 있게 하고 있지. 한 10만명 정도 될거야.”
“그런 사람들과 한국인들이 결혼할 수 있나요?”
“그럼, 결혼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인데.”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높은 자리에도 올라갈 수 있어요?”
“아, 그건,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것은 힘들어.”
칼의 질문은 단순히 한국에 대한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자기가 미국에서 당하고 있는 차별에 대한 분노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이 됐다. 그는 인종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윤리라는 수업시간.
교수는 흑인인 워드(Ward)였다. 워드교수는 대단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으로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많이 웃기기로 유명했다. 그는 시카고 선 타임즈 (Chicago Sun Times), 시카고 트리뷴 (Chicago Tribune),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Los Angeles Times) 등 유명신문사들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학위코스를 신청할 때 추천서까지 써 줬기 때문에 나는 그를 인간미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좋아했다.
그 수업시간의 주제는 “포르노와 검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는 자기 손자가 듣고 있던 노래라면서 흑인가요인 랩송의 흉내를 내었다. 랩송의 가사들이 얼마나 저속한 지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년은 내돈을 돌려주는게 좋을거야 (The bitch'd better give me my money back)." 그는 그 구절을 수십번이나 반복하면서 자기노래의 리듬에 맞춰 배가 심하게 나온 뚱뚱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염이 하얀 늙은 흑인교수가 그런 저속한 노래를 부르면서 몸을 흔들어대는 것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모르겠다. 그 수업시간은 완전히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포르노에 대한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무심코 “암시장” 즉, 블랙마켓 (Black Market)이라는 말을 여러번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포르노를 금지하고 있지만,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암시장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워드교수는 정색을 하고 잠시 나의 말을 중단시키더니, “암시장 (Black Market)이라는 말 대신 불법시장 (Illegal Market)이라는 말을 사용해 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그러자고 말하고 말을 바꾸었으나, 교수가 왜 그런 주문을 했는 지 궁금했다. 즉, 블랙마켓이라는 말이 영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여서 그런 주문을 했는 지, 아니면 블랙이라는 말이 자기들의 피부색인데 그것을 나쁜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건 지 알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웹스터 사전을 펼쳐보았다. 블랙마켓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나와 있을 뿐 아니라, 그 뜻도 내가 생각했던 대로 였다.
워드교수는 1950년대만 해도 미국 영화에서 흑인남자가 백인여자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면, 어떤 주(州)에서는 그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킬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다는 말도 했다. 기자나 교수등 비교적 높은 사회적 위치에 까지 올라간 그였지만, 역시 인종차별에 대한 수많은 기억을 갖고 있는 듯 했다.
흑인들은 집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 아파트나 타운하우스 등을 구하려고 돌아 다니는 흑인들은 어떤 곳에서는 “빈 집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백인들은 환영받고 흑인들은 버젓한 대접을 못 받는다.
씨라큐즈대학의 한 교수는 미국 전역에서 부동산 중개인이나 집주인들이 비슷한 소득과 사회적 지위에 있는 백인, 흑인, 히스태닉계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에 대해 연구해 “닫혀진 문들, 잃어버린 기회들 (Closed Doors, Opportunities Lost)”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그 논문으로 96년 12월 한 시민단체로부터 상 (Gustavus Myers Center Award)을 받았다.
알리슨 루벤스타인 (Alison Rebenstein). 텔레비젼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백인이었지만, 유태인이었다. 어느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유태인도 인종차별을 당하나?”
“그럼요.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유태인이기 때문에 당한 차별보다는 여자이기 때문에 당한 차별이 더 많아요.”
알리슨은 위로 두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변호사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유명한 변호사라고 했다.
“유태인으로서 당한 차별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심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을 당했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회피했다.
다시 칼 터너.
나는 가을 학기가 끝날 무렵 그를 불렀다. 맥주나 한잔 하면서 인종문제에 대해 좀 더 들어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를 학교앞 딸기분식에 데려가서 잡채밥을 대접한 다음 맥주집으로 갔다.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백인들중에는 흑인들의 손도 잡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상점에서 잔돈을 거슬러 줄 때에도 테이블 위에 동전을 던지곤 하죠. 또 밤에 내가 거리를 걸어다니면 사람들은 나를 범죄인으로 지레 짐작을 하고 피하곤해요.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만일 어떤 흑인이 뉴욕시에서 살인을 했다면, 이곳에서 사람들이 나를 피하죠. 나와 그 살인자를 동일시하는 거예요.”
칼이라는 친구는 키가 180센티가 넘고 체격도 좋았다. 하긴 밤거리에서 그런 친구와 마주치면 위협을 느낄만도 했다. 그의 고향은 버지니아주였다. 그는 미국 재무성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기자가 되기 위해 씨라큐즈로 왔다고 했다. 재무성은 버지니아주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버지니아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당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아니요. 그러나 재무성에서 근무할 때 어떤 흑인이 피부색 때문에 승진이 늦어졌다면서 나의 상사를 고소한 적이 있어요. 나는 개인적으로 그 상사로부터 어떤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재무성에서는 재판까지 가지 않으려고 그냥 그를 승진시켜줬고, 고소는 취하됐죠. 또 내가 조지타운 대학에 다닐 때에도 한 해프닝이 있었어요. 이 대학의 한 동아리가 연극을 하는데 백인 남학생이 얼굴에 온통 구두약을 바르고, 등뒤에 흑인 아기 인형을 업고, 또 한 인형을 안고 “나는 애가 넷이나 되고, 복지수당 (Welfare)으로 살고 있죠...”라고 노래한 적이 있었어요. 가난한 흑인여성의 전형을 흉내낸 것이었어요. 그 사건은 대학당국에 보고되고, 대학은 그 동아리를 학교밖으로 내쫓았죠. 그런데, 그 동아리가 올해 대학당국을 고소했고, 결국은 대학측이 졌어요.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대학에서 생물학을 배울 때 교수가 “만일 우리가 모두 백인이라면,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반에는 흑인학생 4명을 포함해 4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나만 그 말에 대해 항의를 했죠. 교수는 그저 다른 뜻이었다고 이해하지 못할 말로 변명하더군요.“
“흑인이기 때문에 앞으로 출세에 지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아마도 직업을 얻는 데 있어서는 내 피부색깔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각 회사마다 일정 비율을 유색인종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점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분명히 내 피부색이 나의 출세에 장애가 되겠죠. 사람들은 유색인종을 드러나게 차별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문제가 되니까. 그러나, 같은 조건이라면 흑인 대신에 백인을 승진시키겠죠.”
“그럼, 흑인들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없나?”
“아, 그건 대단히 큰 질문인데... 차별이란 대개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죠. 힘이 있으면 차별할 수 있어요. 그런데, 흑인들은 아직 다른 인종을 차별할 만큼 힘이 없죠. 좀 더 생각해보면, 글쎄요, 아마도 흑인들 중에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을 거예요.”
나는 칼이 몇 주전에 “한국여자와 동남아 남자가 결혼할 수 있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아마 칼도 백인여자와 결혼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백인 여자와 데이트 한 적 있어?”
“예, 버지니아에서도 있었고, 여기 씨라큐즈에서도 백인여자와 데이트 한 적이 있죠. 백인 여자와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봐요. 그러나, 나는 신경 안써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죠. 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예요.”
칼은 비교적 솔직하게 인종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그가 그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동양인인 나에게 마음을 열고 대답해 준 점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