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5,860불이 넘지만, 그래도 거지들은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다. 워싱턴에서도 지하철역을 나오면 가끔 동전을 구걸하는 홈리스 (집없는 사람들: Homeless)들을 볼 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들을 `거지'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그들을 ‘홈리스’라고 부른다.
워싱턴에 있을 때 나이가 20살 정도 돼 보이는 흑인이 거리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돈을 달라”고 해서 대단히 귀챦았던 적이 있다. 내가 딱 잘라 거절하자 그는 포기하는 듯 하더니, 점심먹으러 들어간 식당에 들어와서는 식당주인에게 다시 구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돈을 얻지 못하고, 풀이 죽어서 나갔다. 나는 그가 대단히 안돼 보여서 그를 불러서 1달러를 주었다. 그는 “탱큐”라고 말하더니 곧이어 “감사합니다”라고 제법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사람들을 많이 상대해 본 모양이었다.
씨라큐즈대학앞의 거리에도 앉아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돈 좀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경찰이 나타나면 재빨리 숨어버린다. 어느날은 경찰이 그들중 한사람을 차에 태워서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이곳의 대규모 쇼핑타운이 있는 카루셀 (Carousal)이라는 곳으로 가는 길목에 신호등이 하나 있는데, 그 신호등 옆에는 “돈을 달라”는 글씨를 큰 널판지에 써서 옆에 놓고 지나가는 차들을 처량한 눈으로 바라보는 홈리스가 있다. 그는 경찰도 포기한 모양인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씨라큐즈 지역 사람들은 카루셀에서 쇼핑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는 이 지역사람들에게는 유명하다.
한 번은 홈리스들에 대한 에이피 (AP) 통신 기사가 이곳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홈리스 수용소에 살고 있는 홈리스들의 33%는 제대군인들 (veterans)이라는 것이다. 그 기사는 “베트남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많은 제대군인들에게는 아물지 않은 채로 있다”는 한 사회사업가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홈리스가 미국의 명문 코넬대학에 입학한 사례도 있다. 한국에서도 종종 구두닦이등 어려운 환경에 있던 사람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기사화되는데, 이곳에서도 그것이 기사화된 것이다.
카마라 바렛 (Camara Barret)이라는 19세의 흑인 청년이 뉴욕의 홈리스 수용소 (Shelter)에 살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95년 가을에 대학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1년에 20,000불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아이비리그 (Ivy League)의 명문인 코넬대학에 입학했다.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인 자메이카에서 할머니에 의해 키워진 그는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뉴욕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나섰다고 이곳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의붓아버지와 5살짜리 의붓동생이 있는 뉴욕의 가정은 그가 공부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의 의붓 아버지가 그를 밖으로 내쫓은 것이다.
집을 나온 그는 2년간 홈리스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뉴욕의 부룩크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코넬대학에 원서를 낸 것이다. 조간신문 포스트 스탠다드에 실린 그의 인터뷰. “나는 이제 열등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가 의사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학생들과도 친구가 됐고, 멋진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냅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상류사회의 생활을 할 수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