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레가토"

by 비마

『레가토』


조용한 거실에서 혼자 느린 곡조의 월광 1악장을 피아노로 쳐본다. 셋잇단음표의 규칙적인 왼손 반주 위에 마치 달빛이 살포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의 오른손 연주가 얹어진다. 연주는 물론 만족스럽지 못하다. 오른손이 뇌의 지시대로 섬세한 터치를 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배운데다가 햇수로 십년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중간에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습도 하루에 평균 한시간도 못한 것 같다. 그 정도의 노력과 시간으로 피아노를 잘 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렇긴 해도 비록 서툴지만 내 두 손을 이용해 피아노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어렸을 때에는, 아니 쉰 살이 될 때까지도 내가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온 것이다. 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곧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기분이 어떠냐고? 어떨 것 같은가. 사실 이 곡에 몰입해서 연주를 마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평소에 이성에 억눌려 있던 감성이 살아나 강력한 웅변으로 자기 존재를 알린다.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내 속을 꽉 채워주는 느낌이다. 그동안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나의 온전한 절반을 확인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 수 없다. 이제 피아노라는 마라톤의 출발점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피아노 연주의 세계로 이제 막 발을 디뎠고,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한번 애를 써보자.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다 보면 혹시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을지. 그리고 피아노에서 인생도 배우게 될 지.

물론 끝까지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죽는 날까지도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가 알기로는 그런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불어로는 「셀라비 (C'est la vie)」.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를 「고도」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 전문가들의 연주를 들을 때는 정말 좋은 데 막상 내가 연주해보니 만만치 않다. 이 곡은 오 년 전에 처음 배웠다. 그리고 몇 년 동안 혼자 외워서 칠 정도까지 됐지만, 내 연주가 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틀리지 않게 건반을 누르긴 하는데 뭔가 미진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게 연주하고, 좋은 평가를 들을 것이라는 확신도 서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학원의 선생님에게 배웠다. 그녀는 처음 배웠던 운지법(손가락 움직이는 법)을 바꾸려면 복잡하니 그냥 치던대로 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숨 쉬는 법과 페달 밟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한 소절이 끝나면 반드시 숨을 쉬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숨을 안 쉬었나? 그건 아니다. 쉼표가 있는 곳에서 의식적으로 한 숨을 쉬라는 얘기이다. 피아노 치는데 숨쉬는 법이 왜 필요할까. 너무 급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쳐야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대화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부분에서 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자연스럽고, 자신의 감정도 잘 전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한소절이 끝날 때마다 숨을 쉬려고 노력하니 한결 소리가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페달이었다. 페달을 밟을 때 여전히 느껴지는, 그리고 신경을 거슬리는, 지저분한 소리를 없앨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름대로는 온 정신을 집중해 건반을 누르는데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 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곡에 투자한 시간과 학원비가 얼마인가.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선생님이 바뀌었을 때 이 곡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손가락 움직임도 다르게 변화시켰다. 처음부터 완전히 뜯어 고쳐달라고 했다. 한번 익숙해진 연주법이나 운지법을 다시 뜯어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은 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하려면 제대로 해야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학원에 새로 온 곽샘(곽선생님)은 새로운 용어 하나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레가토(legato)」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가토」란 무엇인가. 음을 옮길 때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에서 완전히 뗀 뒤 옮기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른 상태에서 다른 건반을 누르면서, 먼저 누르고 있던 건반을 부드럽게 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음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진다. 당연히 어느 손가락으로 어떤 건반을 누르냐가 중요하다. 물론 페달을 밟고 있으면 손가락을 떼었다가 다시 건반을 눌러도 음이 이어진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음을 이어주는 것과 페달로 이어주는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레가토」는 이탈리아어다. 음표들을 부드럽게 연결해서 노래하거나 연주하라는 음악용어다. 인터넷을 뒤졌지만 그 의미를 모두 단문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불친절하게. 기왕에 어떤 용어를 접했으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레가토는 음을 그냥 이어주는 건가요?” 곽샘에게 물었다.

“아뇨. 그냥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한 부분, 한 소절에 의미를 줘야 해요. 음들을 의미있게 이어줘야 한다는 거죠. 거기에는 프레이징(phrasing)도 필요해요. 즉, 한음씩 또박또박 치는 것이 아니라, 한 소절의 음들을 의미있게 이어서 치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말을 할 때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고 또박또박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컴퓨터의 합성음 아니면 이제 글을 배우는 아이가 책을 읽는 방법이다. 자연스럽게 말을 해야 한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네.” 그 말을 빨리 할 수도 있고, 천천히 할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감정에 따라 말하는 톤이나 빠르기도 달라질 것이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하듯, 아니면 시를 읊조리듯 연주해야 한다. 듣는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말이 아닌 손가락 운동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신경도 중요하고, 손가락도 유연해야 한다. 악보를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어느 부분에서는 소리를 강하게 내고, 어느 부분에서는 음이 들릴 듯 말듯 하게 건반을 눌러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나 모두 건반은 깊이 눌러야 한다. 그래야 깊은 소리가 난다고 한다. 바로 그것, 건반을 깊이 누르면서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고도 중요한 기술이다. 강약에는 강함과 약함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강함과 약함이 존재한다. 매우 강함과 매우 약함 사이에 얼마나 많은 세기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느냐에 따라 연주의 수준이 달라진다. 「레가토」가 의미를 가지려면 수없이 많은 단계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음의 연결이 의미를 갖는다.


이병헌과 신민아가 주연하고, 김지운이 감독한 영화 「달콤한 인생」에는 「로망스」가 주제곡으로 나온다. 신민아가 첼로로 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이병헌의 가슴에는 사랑이 스며든다. 첼로의 음은 연주회장의 공간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첼로의 활은 옆으로 왕복운동을 하면서 음을 아름답게 연결한다.

그런데 피아노로 그 아름다운 첼로 현의 선율을 구현하려면 「레가토」를 제대로 구현해야 한다. 현악기의 음은 여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지만 피아노의 음은 잘못하면 뚝뚝 끊어진다. 음이 연결돼야 할 곳에서 끊어져서는 안 된다. 또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을 잘 소화해야 한다. 레가토와 함께 정확한 건반 터치를 의식하다보면 급한 마음에 음이 빨라진다. 그러면 안된다. 그럴수록 천천히 쳐야 한다.

“너무 빨라요. 급하게 치지 마세요." 곽샘이 말했다.

첫 소절은 좀 느린 듯 하게 치고, 뒷 소절은 좀 빨라도 괜찮다고 했다. 그 느린 첫 소절이 곡의 반복되는 주제였다. 왠지 한여름의 불타는 정열이 식은 뒤 늦가을 바람에 쓸쓸하게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떠오르게 하는 가락이다. 그 곡을 들으면 왠지 좀 감상적인 기분이 된다. 유키 구라모토의 곡들 중에서는 가장 좋다고 느꼈다.

나는 이 곡을 매일 치면 실력이 늘 줄 알았다. 그래서 매일 이 곡을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전보다 더 잘 외워서 칠 수는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단점을 모른 채 그냥 연습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내에게 이 곡을 쳐주며 ”옛날보다 좀 늘었나“라고 물으면 ”이젠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나는 한가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보다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깊이 있게 파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쪽이 더 편했다. 그래서 이제는「로망스」에 싫증을 내고 다른 곡에 빠져들 법도 한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아마도 무엇을 해도 제대로 하자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게 혼자 연습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부어도 별로 소리가 나아지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의 소리를 듣고 평가해주고 조언을 해줄「고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특히 예술은 「고수」가 옆에서 지도를 해줘야 한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은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곡을 처음 배운 지 몇 년 만에 다시 배운 것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용어가 바로 「레가토」였다.


피아노를 배운 지는 햇수로는 십년이 됐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보면 신기했고, 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스피커로 울려나오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완전히 나의 마음을 빼앗았다. 어떻게 인간이 이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음악을 들으면 몸과 마음이 허공에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 그러나 당시에 그것은 별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꿈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나 자신도 믿지 않았다.

이후 다른 피아노곡들을 많이 들으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쇼팽의 「발라드 1번」이나 「녹턴 13번」 등 내가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작품들의 수가 늘어났다. 나이가 들면 그런 마음이 사라질 줄 알았으나, 피아노를 칠 줄 알면 좋겠다는 욕구는 더 강해졌다. 그러나 욕구는 욕구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세월이 그냥 흘러갔다. 가끔 기타를 튕기며 음악에 대한 욕구를 달랬으나, 뭔가 미진했다. 숨가쁘게 달리던 젊은 시절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 나의 인생 후반기를 지배할 큰 결정을 내렸다.

마흔다섯에 처음 회사 근처의 피아노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첫 이 년 간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건반을 두드려댔다. 하농이나, 바이엘, 체르니 등등. 기타를 틈틈이 치면서 악보를 보아왔기 때문에 악보를 읽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리듬에 맞춰 건반을 눌렀다. 페달도 요령을 익히지 못하고 그냥 눌렀다 떼었다 했다. 이 년이 지났을 때 내가 엄청난 일을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평생을 노력해도 만족하지 못할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달간 외국 출장을 가게됐다. 그리고 출장을 갔다온 뒤 피아노를 포기했다. 감각을 다시 찾기 위해 또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할까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피아노를 친 것은 글자그대로 「두드려댄」행위였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음들을 내멋대로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정말 피나는 노력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그때는 그런 피아노의 깊은 세계를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칠년이 지났을 때 어떻게 하다 보니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다.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본다. 언젠가 다시 시작하게 돼 있었던 것이다. 삼년간의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개인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이 계기가 됐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이 기회에 악기를 다시 배워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릴 때 혼자 책을 보고 배운 기타를 더 잘 쳐보려고 옛날 다니던 피아노학원 옆에 있던 기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익숙한 악기를 더 잘 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 기타학원은 이미 몇 년 전 문을 닫고 간판만 방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다시 그 옆의 피아노학원에 가서 기타학원이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왜 기타를 배우려고 하세요. 차라리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요.“ 원장이 말했다.

그 권유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다시 학원에 등록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팔년간 학원을 한번 옮기고, 선생님도 여러번 바뀌었다. 중간에 재즈피아노를 일 년 정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바로 곽샘이다. 지금은 피아노 연주 실력이 조금 향상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아내는 ”옛날에는 음이 뚝뚝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연결돼서 들려“라고 말했다. 레가토가 된다는 얘기다.


영어에 「connecting the dots (점들을 연결하기)」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이 표현이 레가토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최소한 「연결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본다. 이 표현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사용해 유명해졌다. 그 연설에 나온 이 표현의 맥락은 이렇다. 잡스는 자신을 입양한 부모의 빈약한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학비가 엄청나게 비싼 사립대학인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곧 그렇게 비싼 돈을 내며 대학을 다니는 것이, 즉 가난한 양부모가 평생 번 돈을 학비로 몽땅 쓰며 대학을 나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지 고민한다. 마침내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신 재미있어 보이는 과목의 수업을 청강하기로 한다. 그때 청강한 수업이 바로 `서체(calligraphy)‘ 수업이다. 나중에 애플사를 창업한 그는 그 서체 수업 덕분에 자신이 만든 맥킨토시 컴퓨터에 아름다운 글자체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점들을 연결한다」는 의미는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사건으로 연결시킨다는 얘기다. 물론 여러 가지 현상들을 종합해 사건의 전말을 알아낸다는 의미도 있다.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낼 때 이런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러나 잡스가 이 표현을 사용한 의도는 조금 다르다. 과거의 사건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오늘의 사건과 연결한다는 뜻이다. 점들이 저절로 서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먼저 자신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의미를 예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점들을 연결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본다. 과거의 점들을 연결해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때 현재의 점으로 연결하는 능동적인 행위가 나올 수 있다. 과거의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현재의 선택과 연결시킬 때 하나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사람은 그렇게 연결된 의미의 연장선에서 미래의 목표를 정한 뒤, 그 목표를 위해 현재의 과제를 수행한다.

잡스는 입양과 양부모의 가난, 자신의 대학중퇴, 서체수업 청강 등이 연결돼 맥킨토시 컴퓨터의 서체까지 나왔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서체를 자신의 컴퓨터에 쓸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것이 `레가토‘와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잡스는 연설에서 `점들을 연결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일 내가 애당초 대학을 중퇴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서체 수업에 청강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는 오늘날의 그 멋진 글자체를 갖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물론 내가 대학 다닐때에는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후 과거를 뒤돌아볼 때 그것은 매우 매우 분명했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다시 말하지만, 점들은 미래를 내다보며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과거를 돌이켜보며 연결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래서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뭔가를 믿어야 한다는 거죠. 즉, 직감과 운명, 인생, 업보 같은 것들을 믿으라는 얘기입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 접근법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렸을 때 그림책에 있는 점들을 연결해서 그림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점들로 존재할 때에는 별 의미가 없으나, 그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하나의 의미있는 그림이 된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똑똑 끊어지는 피아노 음들은 하나씩 들어보면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음들을 박자와 리듬을 넣어 서로 의미있게 연결하면 하나의 훌륭한 음악이 되는 것이다. 남녀간에도 몇 개의 연관되지 않은 듯 보이는 사건들이 결국 연결돼, 그들을 결혼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또 한 사람의 인생에서 별 의미 없던 일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만들 수도 있다.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메이저리그 슈퍼 에이전트로 통하는 스캇 보라스. 그는 추신수와 류현진의 에이전트로 한국사람들에게도 유명하다. 그는 원래 야구선수였으나, 마이너리그 시절 무릎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둔다. 그리고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야구선수인 마이크 피실린의 에이전트가 된다. 그리고 내친 김에 야구선수들을 위한 에이전트 회사를 차린다. 그래서 그 유명한 「보라스 코퍼레이션」이 출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만일 무릎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로스쿨에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슈퍼 에이전트는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우연한 사건들로 가득차 있지만 우리는 그 사건들을 하나의 의미로 연결해주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냥 점들이 저절로 연결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그보다 자신이 그 점들을 어떻게 연결하면 더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행동할 때 점들이 효과적으로 연결된다. 그 수많은 점들중 어떤 것을 선택할 지는 자신의 몫이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점들을 연결해 의미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레가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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