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
세상의 수많은 사건들중에서 의미있는 것들을 찾아 연결하는 행위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탄생시켰다. 아무리 의미있는 사건들이 많아도 또는 많이 경험했어도 그것을 연결해 하나의 의미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이 점들을 이렇게 연결해서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한다면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던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각이요 사색이다. 사색의 사전적인 뜻은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이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문장 이상의 뜻이 그 단어에 담겨있다. 사색은 한번의 짧은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한가지 문제에 대해 또는 여러 가지 일들을 연결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혼자서 한참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그가 사색에 잠겨있다”고 표현한다. 물론 사색에는 생각하는 힘 즉, 사고력이 뒷받침돼야 뭔가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사고력은 많은 독서와 경험으로 키워진다.
우리는 사고력이 뒷받침된 사색의 힘을 이용해 점들을 연결한다. 잡스의 말처럼 과거의 점들을 현재에 「연결하는」 일이나, 곽샘의 말처럼 과거의 음들을 현재의 음과 「연결해주는」 일을 위해서는 일단 그 연결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연결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되면 우리는 그 연결의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리고 연결에 대한 의미의 파악과 방법의 발견이 이뤄지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 연결을 이뤄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영국의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사과의 낙하를 중력과 연결시켰다. 뉴턴은 24세이던 1666년 가을의 어느날 과수원의 사과나무 아래서 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과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뉴턴은 사과를 집어들고 생각에 잠겼다. 사과는 왜 떨어졌을까?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던 그는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힘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연구했다. 마침내 그는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데에는 어떤 힘, 즉 중력이 작용하며 그 힘은 행성을 포함해 우주의 모든 만물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는 44세이던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을 발표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했다. 뉴턴이 사과의 낙하에서 연결시킨 이 법칙은 당시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이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을 증명한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나중에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에 의해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대체되지만, 그 자체로 중요한 인류의 업적이다. 뉴턴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올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1879년 독일에서 태어난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1902년부터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특허청의 업무를 자신의 이론으로 연결시켰다. 당시에는 기차가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기차역들의 시간을 똑같이 맞추는 기술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기차역의 시간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이 일하고 있던 베른 특허청에는 이와 관련한 특허가 쏟아져 들어왔다. 기차역들의 시간을 똑같이 맞추는 특허가 자주 출원됐던 것이다.
시간을 똑같이 맞추는 기술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베른에서 출발하는 기차와 취리히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시간을 과연 어떻게 맞출 것인가. 베른역의 시계가 오전 6시27분을 가리킬 때 취리히역의 시계도 같은 시간을 가리킬 것이라고 과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각 역의 시간을 맞추는 특허는 1902년부터 갈수록 늘어나 1905년에는 절정에 달했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기차역 시계의 시간을 맞추는 방법에 대한 특허 신청을 살펴봤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기차가 빛처럼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 오랫동안 빛에 대해 생각해왔던 아인슈타인은 기차의 속도를 빛과 연결시켜본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기차가 빛처럼 빨리 달린다면 기차 안에서 시계를 맞추는 것과 밖에서 시계를 맞추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기차의 속도와 빛의 속도를 연결시켜본 이 생각이 특수상대성이론을 탄생시켰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이론은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이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빛의 속도로 달리면 우주선의 시간은 지구 위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바로 속도와 공간의 움직임이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엮여 있고, 움직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시간은 더 이상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1916년 이 이론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연결시켰다. 그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의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이론이다. 즉, 지구가 중력으로 사과를 끌어당겨 땅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지구의 질량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으로 사과가 빨려들어갔다는 얘기다.
이런 이론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높아진다는 것, 즉,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대충 생각해보고 안되면 포기한다. 그러나 그는 방에 틀어박혀 이 문제가 풀릴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우주의 신비를 어느 정도 풀어주는 「신의 방정식」을 완성한다. 그는 나중에 고백했다. 상대성이론의 출발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받았던 나침반이었다고. 그는 나침반에 작용하는 신기한 힘에 대해 끈질기게 사색하고 연구한 끝에 결국 일반 상대성이론을 완성한 것이다. 나침반의 힘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리고 베른의 특허청에서 시간에 대해 사색할 계기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없었더라면,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은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런 「점」들을 「의미있게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레가토의 역사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식과 경험이 전수된다. 그것을 더 잘 전수받는 사람이 더 잘 성공한다. 그는 그것을 전수받아 한단계 더 발전시킨 다음 다시 그것을 자신의 다음 세대에게 전해준다. 그런 행위는 역시 한세대와 다음 세대를 「의미있게 연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레가토」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