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을 버리지 마세요”

뭐든 그냥 던져버리지 말라

by 비마


로망스의 첫 네마디는 오른손이 치는 음들을 모두 연결한다. 마치 현악기로 연주하는 것 같아야 한다. 그 음들을 똑똑 끊어 치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의미있는 음악을 만들려면 그 음들을 연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음들을 연결만 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연결은 필요조건이며 충분조건은 아니다.

“음을 깊이 누르세요.” 곽샘이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깊이 누르면 소리도 덩달아 커진다는 것이다. 페달까지 밟으면 소리는 너무 커지고, 결국 그 울림을 감당할 수 없어 지저분한 음악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소리를 줄이려고 하면 건반을 너무 얕게 누르게 된다. 깊이있는 음악이 아닌 겉도는 소리만 난다.


“음을 버리지 마세요.” 곽샘이 말했다. 그 음을 깊이있게 누르지 않고 그냥 스치고 지나가게 되면 그 음을 “버리는” 것이다.

“음을 던지지 말고, 한음 한음 정성스럽게 깊이 누르세요.” 곽샘이 말했다. 「음을 던진다」는 얘기는 그 음의 의미를 충분히 표현해주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건반을 「친다」는 얘기다. 한음 한음 정성스럽게 건반을 눌러보라. 정말 다른 소리가 난다. 서둘러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옮길 때와는 많이 다른 소리다. 빠르기가 감당이 안 되면 천천히 쳐야 한다.

“일단 페달을 밟지 말고 천천히 한음 한음 깊이 누르면서 쳐보세요.” 곽샘이 말했다. 그렇게 며칠을 연습하자 소리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아직 너무 빨라요. 더 천천히 치세요.” 곽샘이 말했다.


「음을 버리지 말라」는 말이나 「한음 한음 정성스럽게 누른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가슴에 박혔다. 꼭 악기를 연주할 때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너무 얕은 말과 행동으로 그들을 「버린」 적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아내나 아들 딸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한음 한음 정성스럽게」 누르지 않고 「건성건성 스쳐지나간」적은 없었을까. 뭘 하느라 너무 서두른 나머지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한 적은 없었을까. 그래서 내 의도와는 달리 주위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었을까. 인생을 하나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음악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다면, 인생의 건반을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누르는」 성의가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에서 「음을 버린」 적이 있었던가. 지금까지 내가 정성스럽게 건반을 누르듯 성의를 다해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무엇엔가 쫓기듯 건성으로 대했던 사람들도 있다. 나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예컨대, 내가 암 수술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잠 못자고 새벽 3시에 나에게 주사를 놓아주면서 나의 잠을 깰까봐 조바심하던 간호사나, 마라톤대회 도중 화장실이 급해 근처의 파출소에 뛰어 들어갔을 때 친절하게 화장실을 안내해주던 순경이나, 군대시절 나에게 순전한 선의로 육개장 한그릇을 제공하면서 “군생활이 얼마나 힘드냐”고 말해주던 음식점 주인에게 내가 충분히 고맙다는 표현을 했었는가. 또는 어려운 시절 힘들게 번 돈으로 나에게 과외공부를 시키고, 나이 서른이 다돼 취직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부모님에게 나는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정성스럽게」 표현했는가. 돌이켜보면 피아노 건반만 정성스럽게 누를 일이 아니다.


나의 이기심으로, 또는 말도 안되는 다른 이유로, 그때까지 상대방이 보여줬던 선의를 한순간에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런 순간들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따뜻한 눈길과 말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불행히도 내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내 인생에서 멀어졌다. 이제 다시 그들을 만나 사과를 하고 싶지만 그들은 나에게 실망해서 멀어졌거나, 그저 사는 곳이 달라 만날 수가 없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때 내가 한 행동이나 말은 너무나 경솔한 것이었다고,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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