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라톤 완주
인간이 과연 42.195km까지 달릴 필요가 있을까. 건강을 위해 달린다면 하루 5km 정도면 족하다. 누군가 마라톤을 한다면 건강 증진이라는 목적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저 미친듯이, 또는 무던하게, 또는 묵묵히 장거리를 달리는 그 사람은 마음 속에 달래주고 싶은 상처가 있거나, 죽음에 도전해보고 싶은 치기가 있거나, 과거의 자신의 오만함을 자책하고 싶거나, 아니면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심심한데 마라톤이나 해볼까”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뭔가가 마음 속에 쌓이고 쌓여서 그 압력이 어느날 마라톤이라는 행위로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어찌보면 달리기도 역시 점들을 연결하는 행위다. 출발점부터 결승점까지를 선으로 연결한다. 달리다보면 각 km를 표시하는 이정표들이 있다. 1km, 2km. . . 42km... 결승점. 나는 마라톤 모자를 쓰고, 마라톤 선글라스를 끼고, 마라톤 선크림을 얼굴과 목, 팔다리에 바르고, 마라톤 셔츠를 입고, 마라톤 시계를 차고, 마라톤 팬티를 입고, 마라톤 운동화를 신고 출발점을 통과한다. 운동화 끈에 묶어놓은 시간계측칩으로 인해 “삐” 소리가 난다.
이제 드디어 말로만 듣던 42.195km를 뛴다.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다. 그저 혼자 알아서 뛰는 것이다. 마라톤은 첫 5km가 중요하다. 처음에 무리하면 후반에 힘이 든다. 그런데 천천히 뛴다고 마음먹고 뛰었는데도 5km 랩타임이 29분이다. km당 6분이 채 안된 것이다. 초보자치고는 빠른 페이스다. 약간 흥분이 된데다 주위 사람들의 페이스에 말려든 탓도 있다.
오늘의 목표는 3시간50분이다. 하프 최고 기록이 1시간41분이므로 정상적으로만 뛴다면 3시간30분도 기록할 수 있다. 어떤 책에 하프 기록으로 풀코스 기록을 예측하는 방법이 나와있었다. 그 방법에 따르면 나는 4시간 이내에 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 기록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워싱턴 특파원 시절이던 2003년8월 아내가 귀국하면서부터다. 내가 워싱턴에 부임한 2002년8월부터 함께 미국생활을 하던 아내는 회사에서 휴직 연장이 안 돼 미국 생활 일 년 만에 귀국했다. 아내가 귀국한 뒤 당시 8학년(중학교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을 내가 혼자 키우면서 일을 해야 했다. 아내가 하던 집안 일과 아이들 돌보고 관리하는 일을 혼자 감당하기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한 일이 담배를 끊은 것이다. 담배를 피운다면 체력이 떨어지고,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그 연기가 환풍 통로를 타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불평을 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피우는 것도 귀찮았다.
금연의 효과는 놀라웠다. 그때까지는 식사만 하면 명치 끝에서 음식이 넘어가지 않고 걸려있는 느낌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트림을 해댔다. 나중에 한 일이지만 트림은 위산 때문이었다. 담배 때문에 기능이 어려워진 위가 계속 산을 내뿜었던 것이다. 그러나 금연 3일 만에 트림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속도 편안해졌다. 내가 그때까지 삼십년 가까이 담배를 피우면서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자신에게 화가 난다.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금연하면서 매일 아침 일찍 근처 `저먼타운(German Town)' 이라는 마을의 공원에 15분정도 차를 몰고 가서 5마일(8km)정도를 달렸다. 당시 메릴랜드주 록빌시(市) 근처의 저먼타운에는 잔디 축구장 11면과 야구장 3면, 농구장 등이 있었다. 지난 2003년 제4회 여자축구 월드컵이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개최됐을 때 우리나라 대표팀이 바로 이 공원의 축구장을 연습장소로 사용했다. 미국은 축구보다는 미식축구나 야구가 더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공원에는 축구장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그러나 마을 이름을 보면 독일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인 것 같다. 독일인들은 당연히 야구나 미식축구보다는 축구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축구장이 그렇게 많은 것 아닐까.
주말에 그 공원을 달리다보면 그 11면이나 되는 축구장들이 모두 경기를 갖고 있다. 가족들이 축구장 밖에서 아이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긴다. 경기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며, 남자보다는 여자 아이들이 더 많다. 그러나 평일에는 축구장이 대부분 비어있고, 한산했다. 그 공원을 한바퀴 도는 거리는 5마일이다. 공원 주위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나무들이 많이 들어찬 언덕이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 숲에서 맹수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 넓은 공원의 산책길을 아무도 없이 혼자서 달린다고 생각해보라. 사람이 없는 곳이 복잡하지 않아 좋기는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누군가와 마주치면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하이(Hi)'라고 인사한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래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많은 인종이 뒤섞여 사는 곳인데 내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자기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해가지면 범죄의 우려 때문에 절대로 산책을 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는 의미는 `내가 당신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으며, 해칠 의도도 없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이므로 그런 인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모르는 사람끼리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라도 교환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한적한 거리에서 서로 지나갈 때 그런 인사를 한다면 조금 어색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의 매일 그곳을 달리다보니 어떤 날에는 개를 끌고 산책하는 아줌마들을 만날 때도 있다. 어느날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한 뚱뚱한 아줌마가 엄청나게 큰 개를 끌고, 아니 개에게 끌려, 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개는 큰 셰퍼드보다 조금 더 큰 몸집이었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다가는 그 개가 위협을 느껴 나에게 달려들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m앞에서 속도를 늦춰 걸어갔다. 그 아줌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개가 나에게 달려든다면 그 아줌마는 그 덩치 큰 개를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나를 추월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반드시 말을 하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른쪽으로 지나갑니다(On your right)'라고 말한다. 오른쪽으로 지나가니 길을 막지 말라는 뜻도 되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자신에게 내가 위협을 느낄 수도 있음을 배려하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약 50분간 공원을 한바퀴 돌면 정말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달리기를 반복하니 건강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내가 풀코스 마라톤에 입문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변 차도를 뛰다가 한강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고수부지쪽으로 내려간다. 10km 기록이 58분. 3시간50분대를 기록하려면 55분에 통과했어야 한다. 내가 초반에 느리게 뛰고 후반에 스퍼트하는 스타일이지만 내심 조바심이 난다. 약간 속도를 높였다. 양쪽 다리가 번갈아 가며 약간씩의 통증을 전해준다. 불안해진다.
아침에 전기밥솥에서 다 된 밥을 플래스틱 주걱으로 휘젓다가 주걱이 똑 부러졌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거 밥숟갈 놓으라는 얘긴가?’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재수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필이면 풀코스 뛰는 날 아침 숟가락도 아니고 주걱이 부러지다니... 아무래도 속도를 너무 높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가족을 생각해야지...
등에 ‘인천마라톤’을 새긴 아저씨를 추월한다. 고향사람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아는 체 하기는 좀 쑥스럽다. 그가 고등학교 동문일 수도 있겠지만. ‘런조이 여의도’ 유니폼을 입은 아줌마도 뒤로 제친다. 아줌마들이 뛰는 폼이 만만치가 않다. 앞선 주자들을 하나씩 추월하는 기분은 좋다. 그러나 한 마라톤 입문서에는 35km까지는 계속 현재의 속도를 유지하라고 돼 있다. 그 지점에서도 힘이 남으면 그때 속도를 높이라는 것이다.
거리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 지금까지 가장 긴 거리라고 연습한 것이 고작 30km였다. 그때 25km 지점에서 갑자기 배가 고프고, 힘이 빠져 고생했던 생각이 난다. 25km 이후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발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연 42.195km를 달릴 수 있을까.
연습때 통증을 느낀 왼쪽 아랫배가 다시 살짝 아파온다. 9월10일 하프코스 마라톤에 출전했을 때 막판에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듯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때 아랫배에 너무 힘을 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일주일 전 토요일에 지인과 둘이서 소주 네병을 마신 것이 후회가 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전화를 걸어 “집 근처에 왔으니 술 한잔 사달라”고 했다. 소주 한 병 이상은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손님 대접이 시원치 않다”는 그의 불평 때문에 할 수 없이 네병이나 마셔야 했다. 그는 내가 마라톤 핑계를 대자 “뛰다가 도중에 쓰러지면 부음기사를 잘 써주겠노라”고 선심 쓰듯 말했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간 연습을 제대로 못했다. 아랫배도 아프고, 과음의 후유증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과도한 음주가 낳은 결과를 달리는 내내 감내해야 했다.
워싱턴특파원 생활에서 달리기의 효과를 느끼고 달리기를 취미로까지 삼게된 것은 행운이었다. 메릴랜드주 록빌시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치과가 있었다. 그 원장은 백씨였는데 자기가 그 지역 한인 마라톤회 회장이라고 했다. 그의 병원에는 환자들의 치아 사진보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더 많이 걸려 있었다. 동호회 사진과 마라톤 골인 장면을 찍은 사진들이다. 한눈에 그가 마라톤 매니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치과에 갈 때마다 말했다.
“이번 일요일 아침에 우리 마라톤회원들과 함께 연습하시죠.”
“저는 일요일 아침에 늦잠 자는 버릇이 있어서 좀 ...”
“이번에 워싱턴 마라톤이 있는데 한번 출전해 보세요.”
“예? 아직 실력이 안돼서...”
“달리는데 무슨 실력이 있나요? 그냥 달리면 되는거지. 이번에 우리 동호회 참가신청하는데 넣어줄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동안 옆에서 듣고 있던 간호사들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백원장의 달리기 전도가 한두번이 아님을 직감했다.
나는 혼자서 달리기 연습을 하면 되지 왜 굳이 함께 연습을 하자고 하는지 의아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것 아닌가. 그때만 해도 마라톤 매니아들이 주위의 사람들을 마라톤으로 끌어들이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마치 요가 매니아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요가를 권유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치과의사의 권유를 끝까지 뿌리친 뒤 2005년8월에 귀국했다. 미국에서 2년간 혼자 달리기를 취미로 삼았으므로 한국에서도 달리기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이삿짐을 찾고 다시 정착할 시간을 갖느라 한동안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활이 정리가 되자 다시 하루에 8km정도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역시 나에게 마라톤 입문을 권유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동갑내기 동료인 심부장이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해 동안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던 베테랑이었다. 몇 달 동안 권유를 받으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마침내 그의 끈질긴 권유에 못이겨 일단 하프마라톤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스포츠용품점에 가서 러닝팬티와 셔츠, 모자 등을 구입하도록 도왔다. 대회는 2006년4월이었다. 대회 당일 그는 나를 포함한 두명의 초보자를 데리고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로 함께 달렸다. 페이스메이커란 초보 달림이들이 적절한 시간에 완주할 수 있도록 함께 뛰며 속도를 조절해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코스였는데, 등산광이라는 또 다른 초보자는 출발 후 십여분이 지나자 혼자서 멀찌감치 달아났다.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심부장은 나의 옆에서 적당한 속도를 유지해주었다. 반환점까지 시간은 57분 정도였다. 반환점을 돌자 그는 뒤처진 등산광 초보자를 찾아보겠다며 나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그 등산광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심부장은 그를 추월할 때 알아본 모양이다. 반환점을 돌자 세찬 맞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끝까지 힘차게 달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페이스를 조절하지 않고 마구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스톱워치에 찍힌 시간은 1시간48분이었다. 반환점까지의 시간보다 반환점에서 결승선까지의 시간이 5분여 빨랐다. 심부장은 그것을 「마이너스 주법」이라고 말했다. 보통은 반환점까지의 시간보다 반환점에서 결승선까지의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나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심부장은 나의 기록에 놀라며 “마라톤 신동”이라고 나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뒤 첫 풀코스를 뛰고 있는 것이다. 잠수교에서 하프와 풀코스 주자들이 갈라졌다. 풀코스는 계속 양화대교 쪽으로 뛰고 하프는 잠수교를 건너 여의도 수변마당으로 간다. 풀코스는 양화대교에서 다시 돌아와 잠수교를 건넌 뒤 역시 63빌딩 앞에 있는 수변마당에 골인하게 된다.
22km를 지나 양화대교 쪽으로 계속 뛰었다. 4시간을 써놓은 풍선을 매단 페이스메이커를 이미 추월한 지 오래다. 페이스메이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다. 모두 `서브 포(Sub-4)‘ 즉, 3시간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추월하면서 내 목표는 3시간50분이라고 다시 다짐했다.
마스터스(일반인) 마라토너의 스타가 된 외환은행의 김영아(여)가 이미 반환점을 돌아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날렵한 자세로 보아 서브 쓰리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의 기록은 2시간58분20초였다. 마치 날아가는 것 같다. 폼도 완벽하다. 발이 지면에서 높이 올라가지 않으면서 보폭은 넓다. 그리고 몸도 차려 자세처럼 꼿꼿이 서 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면 상체가 계속 중력과 싸워야 한다. 그러면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간다.
아침밥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좋지 않다. 뛰다가 배고프지 않으려고 많이 먹은 것이 후회된다. 마라톤을 잘 뛰려면 심장과 폐, 다리가 튼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위장이나 대장까지도 좋아야 한다. 뛰기 전에 든든히 먹어둬야 할 뿐만 아니라 뛰면서도 계속 초코파이나 바나나, 파워젤 등을 먹으면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도 많이 마셔야 한다. 인간은 달릴 때 보통 1시간당 500cc의 물을 섭취해야 한다. 4시간을 달린다면 2리터를 마셔야 한다는 얘기다. 장이 좋지 않으면 뛰면서 배가 아파 고생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설사를 할 수도 있다.
양화대교 밑에서 유턴을 한다. 25km. 이제 17.195km를 더 가야 한다. 양쪽 다리의 무릎과 발목, 고관절이 모두 아우성이다. 이제 그만 좀 달리라고... 그에 반해 상체는 더 빨리 달리라고 주문한다. 폐와 심장은 이상 없는 것 같다. 하체가 문제였다. 하체 근육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야할 것 같다. 하체가 점점 무거워진다. 미치겠다. 힘은 남아도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어느새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뒤에 바짝 붙어있다.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28km 지점에서 기어이 페이스메이커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저 놈을 따라가야 4시간 안에 골인하는데... 4시간 풍선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속도는 km당 9분, 10분까지 떨어졌다. 30km 급수대가 보일 때 나는 거의 걷다시피하고 있었다. 파워젤 2개는 이미 모두 먹어치운 상태였다. 미적지근한 게토레이를 두 컵이나 마시고 바나나를 반쯤 먹은 뒤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잠시 무릎을 흔들면서 풀었지만 다리가 여전히 무겁다. 태양은 뜨겁고 날은 마치 한여름처럼 무덥다.
코스 중간 중간에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생수와 바나나, 초코파이는 모두 받아먹었다. 풀코스 마라톤대회에서는 주최 측이 이렇게 음료와 먹을 것을 제공한다. 먹을거리는 주로 바나나와 초코파이다. 때로는 탄수화물 덩어리로 만든 `파워젤‘이라는 땅콩잼 맛이 나는 치약 같은 것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을 빨아먹은 뒤 물을 마시면 탄수화물이 보충되는 것이다. 마라톤을 할 때 가장 먼저 타는 에너지원은 탄수화물이다. 그리고 탄수화물이 다 떨어지면 지방이 타기 시작한다. 지방마저 다 타버리면 그때는 근육이 탄다. 근육 마저 다 타버리면 그때부터는 뼈가 타기 시작한다. 생수 마시고 바나나를 먹을 때는 좋았으나 코스 후반에 난생 처음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경험했다. 30km지점을 지나면서 고관절과 무릎관절, 발목관절이 모두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알게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풀코스 완주를 못하는 것은 심폐기능보다는 관절과 근육의 통증 때문이라는 것을. 다리의 모든 관절이 `타버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나무로 만든 피노키오의 다리처럼 모든 관절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풀코스를 뛰면서 마음은 설레었으나, 몸은 갈수록 나를 배반했다. 잠수교를 건널 때에는 거의 팔의 탄성을 이용해 뛰다시피했다. 다리는 여전히 말을 안 듣는다. 허벅지 윗부분과 무릎 주위 근육, 발목 등이 이제는 타들어가다 못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멈춰 서서 가쁜 숨0을 추스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나를 추월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천마라톤’은 오래 전에 나를 추월했고, 이제는 ‘런조이 여의도’ 아줌마까지 나를 앞서간다. 후회된다. 초반에 km 당 6분이 아니라 7분에 뛰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잠수교를 건너 여의도쪽으로 뛰면서 서서히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매일 연습하던 곳이라 그런가 아니면 30분간 걷다시피 뛴 것이 다리에 휴식을 준 것일까. 결승선이 6km 남았다. 사력을 다해 뛰었다. 아직도 심폐기능은 이상이 없다. 심장도 빨리 뛰지 않고, 숨도 차지 않는다. 문제는 다리다. 이제부터는 다리 근육 붙이기에 주력해야겠다. 4시간10분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 38km 지점을 지나면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망가진 다리가 고통에 익숙해진 것이다. 내가 느끼는 통증도 줄었다. 인체란 정말 묘한 것이다. 극한의 고통도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63빌딩이 눈앞에 보인다. 말 안 듣는 다리를 달래가며 죽어라고 뛴다. 갑자기 영화 마이웨이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60대 노인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결승선 앞에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하면서 간신히 골인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골인을 위한 주인공의 의지에 감동해 눈물이 났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행이다. 힘은 남아있다. 다리가 말을 안들을 뿐이다. 40km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4시간6분이다. km 당 6분으로 뛰어야 10분대가 가능하다. 골인지점 10m앞. 시계를 보니 이미 4시간20분이 넘어있다. 결승선 앞에서 전문 사진사들이 나를 찍는다. 며칠 뒤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나에게 팔 것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위로 골인한 황영조처럼 카메라 앞에서 양팔을 들어올릴까 생각했다가 이내 포기했다. 아무도 환호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폼 잡는다고 사람들이 웃을 것이다.
헉헉대며, 삐걱대며 정말 간신히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기록 계측기가 “삐--” 소리를 낸다. 4시간20분53초. 나의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기록이다. 목표기록에서 30분 늦었다. 그러면 어떤가. 오히려 앞으로 기록 단축의 여지가 더 많아져서 좋지 않은가.
누군가가 ‘아리수’를 건네준다. 생수도 아니고. 수돗물을 주다니... 아리수를 마다하고 걷는데 잘 걸어지지가 않는다. 이대로 흙바닥에 드러누웠으면 좋겠다.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고 누워 잘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맡겨놓은 짐을 찾아 얼려놓았던 게토레이를 마시니 좀 살 것 같다. 집에 전화를 하니 아내가 묻는다.
“기권 안하고 완주했어?”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입고 나자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말로만 듣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마라톤은 내가 죽을 때까지 즐길 취미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여러 일들이 첫 풀코스 완주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내가 워싱턴 특파원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내가 일 년 만에 중도 귀국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또 내가 아내의 귀국을 계기로 담배를 끊고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마라톤의 세계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심부장의 권유로 결국 「점들을 연결한(connecting the dots)」 것이다. 레가토.
과거의 일들이 지금 시점에 의미를 갖게 됐다. 어찌보면 바둑도 마찬가지다. 고수는 먼저 둔 수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착수한다. 먼저 둔 수가 의미 없게 돼버리면 한 수를 허비한 결과가 된다. 바둑에서 한 수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래서 고수일수록 자신이 먼저 둔 수에 어떻게든 의미를 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수를 찾아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이 의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가 과거의 점들을 연결해 개인용 컴퓨터에 아름다운 서체를 사용한 것처럼 누구나 지금 의미있는 연결을 시도할 수 있는 점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의미를 만드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물론 레가토를 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더라고 인생은 그 나름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레가토를 의식한다면 한정된 인생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