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달리나"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모뉴먼트나 링컨 기념관, 백악관, 의회 등의 건물이 아니라, 웃통 벗고 시내를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이 있는 프레스빌딩에서 국무부나 의회로 걸어갈 때 그런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물론 웃통 벗은 사람들은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간편한 옷을 걸쳤다. 만일 서울시내에서 누군가 웃통을 벗고 달린다면 모두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해한다. 회사 일을 하다 틈틈이 시간이 난다면 그 시간을 버릴 것이 아니라 달리는 것이 좋다. 물론 그가 달리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전제가 있다. 한시간을 달린 뒤 회사 샤워실에서 몸을 씻는다면 얼마나 상쾌할 것인가. 그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업무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내를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괜찮은 근육과 그리 보기 싫지 않은 몸매를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이나 서울 근교만 해도 집 근처 공원이나 한강 고수부지, 양재천, 일산 호수공원, 분당 탄천 등에서는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저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간편한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고, 모자와 장갑에다 물병까지 찬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듯이 보인다. 달리는 사람들, 이른바 `달림이'들은 달리는 길이 점점 더 붐빈다고 불평한다.
이렇게 달리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마라톤 대회에 입문해 본격적인 5㎞, 10㎞, 하프, 풀코스 등 각부문 경주에 나서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달리기 인구를 300만-40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한국의 전체인구가 4천700만 명이므로 달리기 인구가 전체인구의 9% 정도인 셈이다. 성인 10명 중 1명은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에 달리기 인구가 8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에 3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라는 책의 저자인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달리기를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 서문에서 "나의 꿈은 발이 빠르고, 근육이 강하며, 쉽게 잡히지 않는 영양을 쫓는 것"이라면서 "본래 우리(인간)는 애완용 개보다 늑대에 가까우며, 무리지어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기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5㎞에서 42.195㎞까지 마라톤'의 저자 제프 겔러웨이는 "나는 13살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곧 초보자의 열정 즉, 힘든 운동에 대한 매우 특별한 스릴과 내 몸이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에 중독됐다"면서 "일 주일을 달리고 움직일 수도 없이 아팠지만 몸이 회복되자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며 그후 달리기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본능적으로 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활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본능의 요구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인들은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달리는 시간을 짜낸다. 퇴근후 또는 주말 휴일에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린다.
마라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달리기 인구 증가의 대표적 요인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달리기 인구의 60% 이상이 40대인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40대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지만 신체적으로 이상을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에서 밀려나온 30대 후반 40대 남성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남산, 한강 등지에서 뛰기 시작했다. 막노동이라도 하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달리기는 건강에 얼마나 좋은가.
주위를 돌아보면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가 아예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 중에는 100㎞ 이상의 이른바 `울트라 마라톤'까지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가볍게 달리는 조깅이 정식대회의 10㎞코스 입문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하프코스, 풀코스를 거쳐 울트라까지 가는 경우가 상당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번 입문한 사람들은 점점 달리기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달리기는 여러 가지 건강 증진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림이'들은 달리는 도중 기분이 한껏 고양되고 행복한 느낌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꽃밭을 걷거나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라는 용어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자인 아널드 맨델이 1979년 발표한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에서 처음 소개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했다. 또는 그런 상태를 경험했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도 달리기 도중 그런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을 한번 의식적으로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하면 우선 땀이 난다. 겨울에는 적게 나고 여름에는 많이 난다. 땀이 난다는 것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의 수분이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수분만 나가지는 않는다. 땀의 성분은 오줌의 성분과 비슷하다고 한다. 땀은 물 99%, 요소 0.1%, 염분 0.8% 등이다. 염소, 칼륨, 질소 함유물, 젖산 등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간단히 보면 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 외에 1%는 소금과 노폐물이라고 보면 된다. 오줌과 마찬가지로 몸 속에 생긴 노폐물을 배설하는 것이다. 생물체가 섭취한 음식물 중 탄수화물과 지방은 분해되어 이산화탄소와 물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은 이산화탄소와 물외에 암모니아, 요소, 요산 등의 질소를 함유한 노폐물이 된다.
달리기를 해서 땀을 내면 이런 노폐물이 몸 밖으로 배출된다. 그 상태에서 깨끗한 물이나 이온음료를 마셔준다면 몸 속의 수분이 정화되는 효과를 낸다. 마치 `걸레를 빠는‘ 것과 똑같은 원리라고나 할까. 노폐물이 빠져나가므로 혈액이 정화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그런데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과 달리기를 할 때 흘리는 땀은 성분이 다르다. 운동으로 흘리는 땀은 체온조절 뿐 아니라 지방의 연소, 노폐물과 탄산가스 제거 등의 효과를 내며, 노폐물, 납, 중금속 등 몸 속의 해로운 물질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사우나에서 빼는 땀에는 오히려 인체에 유익한 칼슘이나 인 등 전해질 성분이 배출돼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마라톤은 잘 하면 건강을 향상시키지만 무리할 경우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달리는 운동이기 때문에 자세도 중요하고, 심폐 기능도 중요하다.
우선 달리기는 심장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라톤 전문 웹사이트인 `마라톤온라인'에 따르면 마라톤은 ▲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 혈액순환을 좋게 하며 ▲ 심장과 폐기능을 향상시켜주며 ▲ 골다공증도 예방해준다. 또 변비, 고혈압, 당뇨병, 다이어트 등에도 효과가 있다. 가히 만병통치약이다.
달리기를 하루 30분, 1주일에 네 번 이상 꾸준히 하면 심장근육이 강화돼 심장의 펌프 기능이 좋아지고, 부교감 신경 기능이 향상돼 심박동수가 낮은 안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산소공급 능력이 향상돼 폐가 튼튼해진다. 이밖에 혈액순환을 증가시키고 혈관내벽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 혈관의 탄력성을 향상시킨다. 이에따라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달리기는 또 효과적인 체중부하 운동으로 뼈의 칼슘 수요가 늘어나 칼슘이 뼛속으로 빨리 흡수되기 때문에 근육량과 골량이 증가한다.
성기능도 향상된다. 한 비뇨기과 의사는 "발기부전 등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에게 조깅이나 등산 같은 운동을 권한다"면서 "그렇게 조깅을 시작했다가 아예 마라톤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4-5년째 부인과 성관계를 거의 갖지 못했던 40대 중반의 환자에게 달리기를 처방했더니 이 환자는 몇 개월 뒤 남성기능이 살아났으며 결국 마라톤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하다보면 하체운동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만들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노폐물같은 몸에 나쁜 성분들이 감소한다"면서 "음경의 혈관조직을 막고 있는 노폐물들이 운동을 통해 감소하면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돼 성기능이 향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