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7
봄학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은 겨울학기나 마찬가지다. 1월14일부터 4월말까지 약 3개월반 동안 학기가 계속되는데 중간에 일주일간의 봄방학 (Spring Break)이 있다. 그리고는 5월중순에 졸업식, 즉 학위수여식이 있다.
학기가 시작됐다. 조용하던 학교앞 거리가 북적거리기 시작하고, 주차할 곳을 찾는 차들이 이리저리 방황한다. 첫 수업에 들어간 학생들은 자기 소개의 시나리오를 외우느라고 바쁘고,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나눠줄 수업계획표등 서류를 한아름씩 안고 수업에 들어간다.
“나는 포르투갈에서 텔레비젼 프로듀서를 했어요. 이곳에서는 텔레비젼 방송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나는 타이완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이곳에 공부하러 왔어요.” “나는 이곳 신문사에서 2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11년 전에 이 학교에 다니다 애들을 키우느라 바빠서 그만두었는데, 이번에 다시 학위를 따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씨엔엔 (CNN)에서 프로듀서를 5년간 했어요.”
모두들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한다. 자신을 알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자기의 경력을 하나하나 읊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재기넘친 말솜씨로 다른 사람들을 활짝 웃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교수들은 첫 시간에 그 학기의 수업계획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그 수업계획서들을 보면 그 과목이 대충 얼마나 어려우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과목이 어렵다고 하지만, 도전 (Challenge)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도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또 도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도전을 이겨내고 자존심을 또는 자신에 대한 긍지를 확인하는 것이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 미국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다.
학기초에는 서점들이 붐빈다. 씨라큐즈대학의 교재를 파는 서점은 두군데. 하나는 학생회관에 있는 씨라큐즈 대학 서점 (Shine Bookstore)이고, 또하나는 학교 앞 거리에 있는 오렌지 서점 (Orange Bookstore). 서점에 가면, 당연히 교재를 파는 코너가 따로 있고, 그 곳의 서가에는 과목번호가 붙어있고, 그 밑에 해당 과목의 교재들이 놓여있다. 특이한 것은 “헌책 (used)"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책들도 볼 수 있다는 것. 헌책은 당연히 새책보다 싸기 때문에 먼저 교재를 사러가는 학생들은 싼 헌책을 구입할 수 있다.
책값도 만만치 않다. 보통 한 학기에 네과목을 듣는 학생들은 150불 (약 126,000원)을 서점에 지불해야 한다. 책 한권에 40불-70불 정도.
서점들은 학생들이 영수증을 갖고 오면 이유도 묻지 않고 책값을 그대로 환불해준다. 학생들로부터 헌책을 싸게 사기도 한다.
책을 산 다음에 할 일은 그 책을 읽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한 과목당 한주일에 보통 200 쪽을 읽어치워야 한다. 네 과목을 신청했으니, 800쪽이다. 그러나, 과목에 따라서는 그냥 읽어만 가서는 안되는 과목도 있다. 노트에다 읽은 것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수업시간에 교수가 물어도 답변을 할 수가 있다.
연구방법 (Research Method)이라는 과목. 매주 2쪽씩의 보고서를 써가야 한다. “아무 논문이나 찾아서 그 논문의 중요 개념과 변수를 찾아내고, 그 변수는 어떤 식으로 측정하고 있는 지 알아보시오. 또 그것을 당신의 논문과 비교해 보시오.” 모든 숙제가 이런 식이다.
매스미디어의 역사연구 방법 (Historic Method in Mass Media)이라는 과목. “1960년대에 미디어와 관련된 문제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그에 관해 15쪽의 보고서를 쓰시오.” 그러나, 그냥 쓰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방식에 따라서 보고서를 써야한다. 우선, 파일 정리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도서관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모든 문장은 자기가 찾아낸 자료에 근거해서 써야 한다. 논리의 비약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성적이 한등급씩 내려간다.
한국에서는 대학원을 다녀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대학원에서도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학까지는 그런 식의 수업을 받아보지 못했었다.
봄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생각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쓰지않던 쪽의 뇌를 쓰고 있구나’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무척이나 괴롭고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봄학기동안은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을 자 본 일이 없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함께 연수를 간 사람중에 중앙일보의 K기자는 딸 들이 중학교 (4학년, 7학년)에 다녔는데, 나를 만나면 미국의 교육에 관해 혀를 내두르곤 했다. 숙제를 내주는데 그것들이 모두 실제 생활에 관계되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혼자서 사막에 버려졌을 때, 생존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은 무엇인가,” 또는 “감명깊게 들은 음악 (대중가요, 영화음악, 클래식등 전 분야를 망라) 중 하나를 골라서 그 음악의 분야를 밝히고, 그 음악을 왜 좋아하게 됐으며, 그 음악을 부분 (악장등) 별로 나눠서 특징을 쓰시오.“ 모든 숙제가 그런 식이라는 것이다.
영어숙제는 “잡지나 신문에서 문장들을 오려서 학교에 가져와서 그걸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라’는 것이고, 사회 (Social Study) 숙제중에는 “자기 자신이 직접 공책 한 쪽 분량의 신문기사를 써보라”는 것도 있고, “시사만화를 그려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 숙제중에는 “역사책을 읽고 그 책에서 나온 의상이나 무기들을 조사해서 그려오던지, 그 의상이나 무기를 학교에 가져오라”는 것도 있다. 그 의상을 입고 가면 점수를 더 준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미국 학생들이 수학을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중간 정도의 석차였던 학생이 미국에 전학와서는 수학시험에서 단 한문제도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사람이었는데, 아들이 몇번 수학시험을 봤는데,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수학수준의 문제는 나도 직접 경험을 했다.
96년 가을에 대학원 학위코스에 지원하기 위해 대학원 수학능력 시험 (GRE)을 봤을 때였다.
시험장에는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놓고 시험장에서 제공하는 연필과 백지 몇장만을 들고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영어, 수학, 논리등 3과목을 4시간 동안 치렀다. 컴퓨터 시험이었으므로, 시험이 끝나자 마자 성적을 알 수 있었다. 수학이 800점 만점에 720점이었다. 수학의 수준은 중학교 3학년정도의 수준보다도 쉬웠다고 느꼈다. 그런데, 시험을 마치고 나오자, 시험 감독관이 나의 수학성적을 보더니, “전공이 수학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정말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