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7
지난 1996년 12월26일 존 베넷 램지라는 이름의 6살짜리 꼬마 아이가 콜로라도의 부자동네인 보울더의 자기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일제히 톱뉴스로 다루었다.
피플과 뉴스위크誌는 이 사건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고, 전국적인 네트워크 텔레비젼에서도 “래리 킹 라이브 (Larry King Live)” “데이트라인 (Dateline)” “하드 카피 (Hard Copy)”같은 유명 프로그램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었다. 일간 신문들이 이를 크게 다룬 것은 물론이다.
이것이 그렇게 큰 뉴스거리였을까.
美연방수사국(FBI)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 1995년 9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모두 7백65명이나 피살됐다. 다시말해, 이 나라에서는 하루에 평균 두명씩의 어린이들이 피살된다는 얘기다.
물론, 이 어린이들의 죽음이 모두 톱뉴스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지방언론에서 크게 취급했을 뿐, 전국적인 미디아에서는 본 척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유독 존 베넷 램지의 죽음은 전국적인 톱뉴스가 되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씨라큐즈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캐롤 리블러 (Carol M. Liebler)라는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 현지 신문인 포스트 스탠다드에 기고를 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왜 이 사건이 크게 취급되는 지를 물어봤다. 학생들은 램지가 예쁜 아이였고, 크리스마스 다음날 숨진 채 발견됐으며, 이 사건이 평화롭고 상류층이 사는 마을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였다는 것.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램지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인대회의 우승자였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텔레비젼등 영상매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램지가 미인대회에서 마치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섹시(sexy)"하게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춤을 추는 모습을 방영해댔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이유만이었을까.
리블러교수의 주장을 보자.
“램지의 죽음은 그 애가 백인 어린이이고 부유한 부모밑에서 자랐다는 사실 때문에 더 뉴스가치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그러했다. 확실히 그 기사들의 밑바닥에 흐르는 성적인 면 -- 어린이를 마치 어른처럼 옷을 입히고 어른처럼 화장을 시키는 -- 도 이 기사의 한 부분이다.
존 베넷 램지의 사진과 비디오들은 우리가 이 나라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판에 박힌 정의, 즉, 금발에다 푸른눈이라는 요소와 산뜻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여성을 매일 객관화시키는 방법과 일치하고 있다. 언론은 중상류층의 얘기를 많이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 시대의 언론인들이 중류층 출신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감성이나 분별력도 중류층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그들이 쓰는 기사에 반영된다.
학생들이 옳았다. 이 살인이 디트로이트 같은 곳보다 보울더같은 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백인들이 사는 교외 마을의 삶의 스타일이나 가치가 위협받을 때 언론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것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인종도 역시 이 얘기를 크게 만드는 요인중 하나였다.
우리는 새롭고 거슬리는 패거리 언론의 형태를 보고 있다. 주요 언론들과 타블로이드판 3류신문들이 다른사람의 비극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