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기부금

시러큐스대 유학기 1997

by 비마

우리나라에서도 잊혀질 만 하면 가끔씩 거액을 대학에 기부하는 할머니들이 나타난다. 그 할머니들의 공통점은 김밥장사를 해서 돈을 모았건, 행상을 해서 돈을 벌었건 간에 거액을 대학에 기부하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


미국에도 그런 할머니가 있었다. 한국의 할머니들과 다른 점은 남편의 유산이었고, 생전에 기부하지 않고 사후에 기부했다는 것.


씨라큐즈 대학은 1996년 여름 루스 프리맨이라는 93세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로부터 1천2백만달러를 받았다. 씨라큐즈 태생인 그녀는 이 대학에 1920년대에 2-3년 정도 다녔으며 졸업은 하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그만뒀다. 그녀는 남편을 대학에서 만났다.


그녀의 남편은 허버트 마이어라는 사람이었는데 1924년에 씨라큐즈대학을 졸업한 뒤 광고업과 지하철 뉴스가판점을 뉴욕시에서 시작해 떼돈을 벌었다는 것.


루스할머니의 기부금은 이제까지 씨라큐즈대학의 1백26년 역사상 개인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중에는 가장 많은 액수였다.


딱 한 번 더 많은 액수의 기부금이 들어온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난 1964년 S.I. 뉴하우스 재단이 뉴하우스 언론대학원을 씨라큐즈에 설립해달라면서 1천5백20만달러를 기부했을 때였다.


루스 할머니는 대학측에 기부금의 반을 지난 1975년 자신이 이미 돈을 내서 만든 장학기금에 넣으라고 하면서 그 돈이면 더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스할머니가 낸 1천2백만달러는 씨라큐즈대학이 2000년까지 목표로 하는 3억달러의 학교발전기금 모금운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루스 할머니는 먼 친척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식도 없고 남편도 사별해 직계가족은 없었다. 그녀는 22만5천달러를 한 유태인단체에 10만달러를 뉴욕시의 한 병원에 기부했다.


1903년에 씨라큐즈에서 태어난 루스할머니는 어렸을 때 부모를 사별하고 숙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920년대 씨라큐즈에 있는 결핵 건강협회에서 비서를 하거나 금융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기도 하다가 씨라큐즈대학 경영학과에 2-3년간 다녔다.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으나 자신은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결혼했다. 그리고는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던 것. (씨라큐즈 헤럴드 아메리칸 1996.8.18 A8)


작가의 이전글존 베넷 램지의 죽음과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