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영화 "오발탄"

보고나면 울고 싶어진다.

by 비마

1959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소설을 유현목 감독이 영화화했다. 국내에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지만, 1963년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됐던 필름이 최근 발견돼 디지털로 복원됐다고 한다. 30대 후반의 김진규, 30대 초반의 최무룡, 그리고 역시 30대 초반의 문정숙, 20대후반의 이대엽과 윤일봉 등을 볼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기라성같은 스타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한꺼번에 본다는 것만 해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유튜브에서 본 영화는 비록 낡은 필름이었지만, 화면도 소리도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이 영화는 당시 춘향전 제작비의 10분의 1에 불과한 800만환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임에도 지금까지 나온 한국영화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한국일보, KBS, 영화진흥공사 등 여러 기관에서 실시한 한국영화 순위 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가난에 억눌려 사는 한국인의 삶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랫동안 말로만 들어온 영화를 직접 볼 기회를 가진 것이 너무 기뻤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속에 무엇인가 묵직하게 걸려 있음을 느꼈다. 눈물은 나오지 않지만 속으로 울고 있었다. 영화는 흑백의 낡은 화면이지만 너무 사실적이어서 더욱 가슴을 긁어놓는다. 소설로 읽었다면 이렇게 가슴이 먹먹했을까.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으니 바로 옆에서 보는 듯 더욱 사실적이었고 생생했다.


이야기는 여러 세대의 남녀가 처한 상황을, 고질적인 치통을 앓고 있는 봉급쟁이 김진규를 중심으로 엮고 있다. 병석에 누워 고향인 북한으로 "가자"만을 외치는 치매걸린 노모, 제대후 2년째 놀면서 한탕을 노리는 동생(최무룡), 가난때문에 `양공주'가 되어 미군들과 같이 다니는 여동생, 신문을 돌리는 막내 남동생, 새 구두를 사달라고 조르는 딸 등이 나온다.


카메라는 이야기를 끌어가면서도 여러 대목에서 은연중 시대의 아픔을 보여준다. 최무룡이 은행을 턴 돈을 갖고 복개(하천에 덮개 구조물을 씌우는 일) 직전의 어두운 청계천을 뛰어 도망간다. 청계천에는 각목들을 세워 복개를 준비하던 상태. 최무룡이 돈을 갖고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려 도망갈 때 각목에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흰 옷의 여인이 보인다. 등에 업힌 아기는 "엄마"를 외치면서 울고 있다. 최무룡은 그녀를 보고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도주를 계속한다. 그를 쫓던 경찰도 그 여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감독은 전후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의 어두운 상황을 이 장면 단 한컷으로 리얼하게 보여준다.


김진규 가족은 해방촌에 살고 있다. 해방촌은 지금 남산3호터널을 용산쪽으로 빠져나오자 마자 오른쪽에 있는 동네다. 당시는 가난에 찌든 판잣촌이다. 그 고지대 판잣촌에서 보는 서울시내 전경은 거의 폐허에 가깝다. 그곳을 중심으로 전차가 다니는 남대문과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최무룡이 잡혀간 중부경찰서, 문정숙이 애기를 낳으러 갔다가 사망한 서울대학교 병원, 복개중인 청계천 등 50년대 후반에 얼기설기 만들어지고 있던 서울의 중심부를 모두 볼 수 있다.


최무룡은 김진규의 아내인 문정숙을 "형수"라고 부르지 않고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그때는 "형수"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판잣촌의 한 방에서 치매걸린 노모와 김진규 부부 및 딸, 최무룡, 명숙, 막내 남동생 등 일곱명이 나란히 누워 자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족의 중심인 김진규는 계리사(공인회계사의 옛말) 사무실의 서기다. 가장으로서 가난과 무력감에 짓눌린 김진규는 항상 축 늘어진 모습으로 걷는다. 그는 조여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그는 "가자"를 외치는 병석의 노모에게 마침내 "가세요, 갈수만 있다면!"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여동생 명숙의 남자친구인 상이군인 윤일봉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의 100분의 1도 채우지 못하는 이따위 현실에 굴복하긴 싫여(어)" 라면서도 이내 "난 6.25때 쏘고남은 탄피야"라며 무력한 자신을 비웃는다. 가난에 저항하면서 "왜 우리가 양심의 새장에 갇혀 살아야 하느냐"고 말하는 동생 최무룡, 김진규의 부인(문정숙)이 애기를 낳으려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오빠에게 그동안 모은 돈을 병원비로 빌려주는 여동생, 은행강도를 하던 형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담은 호외를 돌리는 막내동생, 서울대병원에 간 부인이 사망했고, 바로 영안실에 안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치과에 가서 앓던 이를 뽑는 김진규. 영화는 이 와중에 제트기 4대가 서울 하늘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는 모습을 굳이 보여준다. 우리 민족의 비참한 가슴을 사정없이 뚫고 지나가는 냉엄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지금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견뎌내고 이겨낸 시련이었다. 그들이 시련을 훌륭하게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경제적 풍요도 없을 것이다.


여동생 명숙은 서울대병원에서 문정숙이 낳은 애기를 보며 "오빠, 이제는 우리가 이 애기가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눈물을 흘리며.


김진규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앓던 사랑니 두개를 한꺼번에 뽑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택시를 탄다. 그는 "해방촌으로 가자, 아니 서울대학병원으로, 아니 중부경찰서로 가자"며 횡설수설한다. 당시 택시에는 기사와 함께 조수가 옆자리에 타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수는 "아니, 어디로 가자는 거냐"라고 묻는다. 김진규는 거의 실신 직전에서 "가자, 그냥 가자구, 가재니까"라고 말한다. 운전기사는 조수에게 "아니, 어쩌다 오발탄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라고 말한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암울한 절망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메시지는 "이제는 애기가 웃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명숙의 말 뿐이다.


한번 생각해본다. 그런데, 오발탄으로부터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오발탄을 다시 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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