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내가 나를 찾아왔다.
2011년작. 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 마이크 케이힐 (Mike Cahill) 각본 감독.
원래 이론물리학 특히 평행우주나 초끈이론 등에 관심이 많던터라, 제목만 보고 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러나 제목처럼 근사한 공상과학 장면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스타트렉(Star Trek)'처럼 요란하고 빠른 장면 전환이 없다. 돈을 엄청나게 쓴 폭발 장면이나 우주 전투 장면 같은 것도 없다. 나는 원래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조용하고 차분한 영화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또다른 지구가 갑자기 하늘 위에 보인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는 지구가 복제돼 나타났다는 설정을 한다. 그것도 육안으로 크게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평행우주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곳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산다. 또다른 내가 그곳에 있다. 그리고 깨진 거울이론이라는 것도 나온다. 두개의 지구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활을 하지만, 서로 상대방 지구를 발견하는 순간 두개의 지구와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영화에서는 그저 이론만 제시한다. 그리고, `로다' 라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MIT 대학생인 그녀는 어느날 친구들과 파티를 마치고 음주상태에서 밤늦게 차를 운전한다. 그런데 라디오에서는 "또하나의 지구(Another Earth)"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지금 여러분의 맨 눈으로 밤하늘을 쳐다보면 그것을 볼 수 있다"고 라디오는 알려준다. 지붕이 없는 차였기에 그녀는 바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또다른 지구를 찾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교차로에서 신호대기중이던 한 승용차와 충돌한다. 그 차에는 타고 있던 사람들은 부부와 5세 아들, 그리고 아직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그중 남편만 살아남는다.
4년뒤 출소한 로다는 죄책감을 씻을 수 없다. 그녀는 음악가 일을 그만두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남자를 찾아간다. "누구냐"는 질문에 얼떨결에 "청소부"라고 대답한 그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그의 집을 청소한다. 그리고 제2의 지구로 여행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모한다. "내가 왜 제2의 지구에 가야하나"를 주제로 글을 써서 보내고, 심사위원이 합격점을 주면 우주선을 타고 제2의 지구로 가게되는 것이다.
남자와 로다는 가까워지고, 로다는 사실을 얘기해준다. 내가 당신의 가족을 죽였노라고. 남자는 분노한다. 로다는 제2의 지구 여행에 선발되지만, 그 여행권을 남자에게 준다. "아마 그곳에서 당신의 가족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면서. 그리고 4개월뒤, 그녀는 자기 집 뒷뜰에서 제2의 지구에서 자신을 찾아온 또하나의 로다와 조우한다.
이 영화의 강점은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차분하고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매력적인 음악이다. 특히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치는 피아노곡 "Sonatina in D minor"는 짧지만 마음을 잡아끄는 음악이다.
또다른 지구의 출현이라는 설정은 여러가지 질문을 유발한다. 나의 실수를 제2의 지구에 있는 또다른 나도 저질렀을까. 내가 제2의 지구에 있는 또하나의 나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 내가 평행우주 속의 나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로다처럼 누구나 고쳐보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이다. 과거를 돌아가 과거 나의 행동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그 과거 행위의 결과를, 또 그로 인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죄책감에 어쩔줄 모르는 가엾은 나 자신을 마주보는 느낌은 어떨까.
여주인공은 '러브인 베를린(Love in Berlin:2014)' `바빌론(2014)'에 나왔던 브릿 말링(Brit Mar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