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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지 Sep 22. 2021

아이들의 국어 공부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가 뭘까?


"2021학년 대입 정시에서는 대학수학능력(수능) 국어가 당락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2월 4일 / 비즈니스워치)


"국어는 역대급 불 수능... 만점자 작년의 20%뿐"  (2020년 12월 23일 / 중앙일보)



국어 공부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 아니,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아이들이 문해력과 독해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문해력' 이란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입니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언어의 모든 영역이 가능한 힘이지요.



[에듀워치]‘코로나 수능’…쉬웠다던 국어, 2019 불수능 ‘데자뷔’? /비즈니스워치 2020년 12월 4일 기사 중 발췌



문해력과 독해력이 낮다는 것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능력(힘)은 그냥 되는 것이 없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반복적인 훈련이요.



<10대를 위한 그릿 (매슈 사이드 저/다산에듀)>에서 나온 예시를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1. loweonl tetnmis ysea ilhwe a enirwga egelPin otn is nabaan.

2. Peeling a banana is not easy While wearing woolen mittens.



 위 두 문장은 모두 알파벳 49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번 문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리 내어 읽을 수도 없고요. 하지만, 2번 문장은 영어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직 장갑을 끼고 있어서 바나나 껍질을 벗기기 쉽지 않다.'라는 뜻이지요.



10대를 위한 그릿 (매슈 사이드 저/다산에듀)



왜일까요? 갓난 아기가 위 두 문장을 본다면 어떨까요? 두 문장이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신생아에겐 두 문장 모두 도무지 알아먹기 힘든 상형문자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2번 문장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도의 복잡한 기술을 훈련해왔기 때문입니다.



읽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두뇌 작용입니다. 우리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글을 읽어나가다 보니, 저절로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알아야 하고,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언어별로 다른 어순, 문장 간의 관계까지 이해하고 추론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읽기를 훈련해 왔습니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부족하다고 하는 문해력, 독해력, 추론 능력도 '훈련을 통해' 당연히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럼, 가장 좋은 훈련이 무엇일까요? 모두가 예측하는 바로 그것, '독서'입니다. 물론, 아무 책이나 아무렇게 읽는다고 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적절한 책을 선택해 올바른 방법으로 읽는 것이 효과가 훨씬 좋습니다. (아이들 독서교육을 기획하다. 참고)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문해력이나 독해력을 이토록 중시하는 이유가 뭘까요? 독서의 좋은 점에 대해서만 써도 글을 따로 하나 쓸 수 있지만, 이 글의 논점인 공부, 그중에서도 국어 공부에 대해 일단 살펴보기로 하지요.



독서를 통해 공부 능력을 높이는 것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때로는 어떤 명제가 너무 익숙해서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독서가 좋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하도 들어서, 너무 당연해서,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인 것이죠. 막상, "독서  도움이 되지요?" 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라는 질문을 들으면 당황하게 됩니다. '당연히 좋은 거지, 왜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빠르게 읽고,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하나하나 풀어 설명해 주어야 이해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상황 파악이 빠르고,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유추를 잘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차분히 생각하기를 힘들어하고, 누군가가 답을 줄 때까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합니다.



다 같은 인간의 뇌이지만, 수십 년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즉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구조적,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뇌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든 아이들이든, 가끔 글을 읽을 때 속독을 중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몇 권, 한 달에 몇 권 하며 독서 기록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지요. 부모님들도, 아이가 하루에 몇 권 읽었다는 기록을 중시해서, 읽은 책의 권수의 의미를 두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한때,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 쌓아 놓고, 빨리 읽어 치우려 한 적이 있습니다. 읽으면서도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고, 책을 덮은 후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분명 읽은 기록이 있는데 책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 '내가 읽은 게 맞나' 싶었었지요. 맞습니다. 읽은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을까 싶겠지만,  하루가 쌓여 한 달, 일 년, 3년, 10년이 되면,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따라. 사람의 두뇌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의 두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발달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수준까지는 비슷한 형태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경가소성*이라는 두뇌의 특성으로 인해, 어떤 활동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사람마다 두뇌구조가 달라지게 됩니다. (* 반복되는 행동에 관여하는 신경회로가 강화되고,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퇴화되는 특성)



영화' 모글리' 아시죠?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늑대 무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간이라 보기 힘든 행동과 사고를 합니다. 결국, 인간답게 하는 언어, 행동, 사고, 지적 수준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누적된 훈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양육자의 말을 듣기만 하다 말문이 터지고, 말을 하다 책을 읽고, 읽기가 누적되어 글을 쓰게 되는 것처럼요. 우리 모두가 동일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저절로 된다고 생각되는 이 모든 활동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반복 훈련의 결과라는 겁니다.



여기서 스마트폰 이야기를 또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단순히 글 읽는 능력을 훈련할 기회를 상실하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 시간에 짧고 단편적인 정보 습득,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경험 누적으로, 쓸모 있는 신경 덩어리는 퇴화되고, 쓸모없는 신경 덩어리들이 점점 커지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대신, 주로 누워 있거나 군것질 많이 하면, 쓸모 있는 근육은 사라지고, 부담스러운 살덩어리들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 기기 사용이 전 연령층에 보편화되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도 오프라인 활동이 많이 줄었습니다. 물론, 코로나 영향도 큽니다. 하지만,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속도를 빠르게 앞당긴 것이 맞을 겁니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의 아이들이 특별히 책을 더 많이 읽은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지금보다는 좀 더 읽었습니다. 여가 시간을 보낼 편리한 디지털 기기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전에는 책을 많이 읽다가 (스마트폰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 유독 요즘 아이들의 독해력과 문해력이 더 나쁘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활동을 통한 두뇌활동 때문입니다. 단편적인 정보 검색, 짧은 시간 내에 시각적으로 문자를 스캔하는 활동, 자극, 쾌락, 잠시의 지루함도 참기 힘든 상황들이 온라인 활동의 대표적 성격입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조금만 지루하다 싶으면, 참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종료하고 다른 영상을 클릭합니다. 영상의 길이도 짤막하고, 썸네일부터 자극적입니다. 빠른 말투와 화면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시청(구독) 유지를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빠른 반응을 유도하는 영상을 제작해 올립니다.



이런 활동이 누적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상대적으로 느긋하고 유익한 내용이 담긴 영상도 한두 시간 이상보면 머리가 띵하고 멍합니다. 우리가 성격, 기질이라고 하는 것들이 두뇌와 연관이 깊습니다. '난 성격이 급해.', '지루한 거 못 견뎌.', '차분하게 생각을 잘 못하겠어. 원래 이래.' 타고난 것으로 생각한 것들이, 두뇌 활동의 영향으로 개선되기도 악화되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많은 시간 노출이 되면, 두뇌는 그에 맞게 세팅됩니다. 신경가소성에 충실하게요. 아이들이 그냥 책을 안 읽는 것과, 그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수준에 맞는 책을 천천히 이해하면서 읽어내는 '독서'는, 국어 공부를 위해 필요한 문해력과 독해력에 큰 도움을 줍니다. 초등학교~중학교 수준의 국어 공부는, 국어 교과서만 온전히 이해하고 습득해도 충분합니다. 국어 교과서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독서를 통해 훈련이 가능합니다.



국어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의 활동이,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국어를 어렵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술은 점점 더 발달할 것이고, 유혹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처음은 유혹이고, 그다음엔 관성과 습관입니다.



대입 수학 능력 시험 관련, "수학으로 변별력을 높일 수는 없고, 영어와 한국사는 절대평가라서, 국어 난이도 조절을 통해 변별력을 높여 나갈 수밖에 없다"라는 입시 전문가들의 의견에, 또다시 '불수능', '불국어'란 말이 나오지 않을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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