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내 살았습니다
"어디 사세요?"라는 물음에,
"연신내 살아요"라고 대답할 때면 두 귀로 들리는 소리가 불편한 감정을 줬다. 어감이라고 해야 할까. 연신내 산다는 게, '계속해서 끝끝내' 산다고 하는 것 같이 들렸다. 겨우겨우, 간신히, 힘겹게 말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괜히 더 발끈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대답하기 전, 조금 멈칫한 후에 "은평구 살아요~"라고 답하곤 했다.
근데 이제 곧 있으면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릴 일도 없다. 4년을 연신, 내내 살아온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어느 날 집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계약이 마무리되는 대로 짐을 빼주면 좋겠다고, 친척이 들어와 살기로 했다고. 잘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헛헛했다. 서울살이 10년 차, 이사를 세 번 다녔지만 이 집만큼 정든 집은 없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타지에서 상경해 스스로 생활을 꾸리는 이들은 알 것이다. 내 것이라고 잠시 빌린 공간에 애틋함이 깃드는 순간을. 그리고 단박에 서러워진다. 내 추억이 묻었지만 내 것은 아닌 공간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공허함이란.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거실 기준 북향, 내 방 기준 동향으로서 모든 창으로 북한산이 보이이고 방구석구석 아침 햇살이 쬐는 구조다. 내 방을 가득 채우는 찐 주황색 햇볕을 나는 내내 그리워할 테다. 막 동이 트고서의 작열하는 태양빛. 미라클 모닝 해본 사람들은 그 감동적인 쨍한 빛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찐 찐 찐 주황색에, 맨살에 비치면 그 빛이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하얀 고양이 털을 노릇노릇 익히는 다른 게 미라클이 아니라,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이 미라클이라는 것을.
한참 담배를 태울 시절, 옥상에 올라서서 굽이굽이 북한산의 능선을 보고 있자면 나를 괴롭히는 세상일이 참으로 하릴없이 느껴지곤 했다. 속을 섞이는 애인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담배를 끊어 자주 올라가진 않지만 그간의 씁쓸한 기억들은 옥상에서 다 날려 보냈다. 그런 공간이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우리 막내 리꼬를 식구로 들인 곳도, 아프게 보내준 곳도 이곳이라, 꼭 리꼬를 여기 혼자 두고 떠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손을 가장 많이 탄, 나의 고양이이지만, 내 품의 내 자식이지만. 이곳에서의 리꼬의 한이, 고통이 다 풀렸는지 나는 알 수 없으니 또 죄스러운 마음이 엄습한다.
결국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다 뒤로 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나쁜 것들은 털어버리고. 이 집에서 꾸었던 꿈들은 내내 잃지 않으리라. 연신 기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