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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YOUHERE Mar 25. 2023

주저_사랑의 이해(2022)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


문가영, 유연석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이해' 한 줄 설명이다.


'사랑'과 '이해(이익과 손해)'는 어쩌면 양극단의 단어이지만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랑이 있기나 할까. 전에도 적었다시피 대부분 연인 간의 싸움은 "내가 더 손해 본 것 같은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나. 어찌 됐든, 이 드라마는 각기 다른 (경제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은행이라는 한 공간에서 직장동료로 일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혁진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데, 작가가 생각한 큰 주제는 결국 돈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드라마는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집안, 학벌, 직업 따위의 '조건'이라 불리는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 어떻게 논의의 주가 되는지 꽤나 처절하게 보여준다. 사랑에 대한 낭만이 있는 청년들에게도 그 조건들은 무시할 수 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도처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초라하게 만든다. 사람도, 사랑도.


안수영은 어려운 집안 환경과 비정규직이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당차다. 자기 발전에 열심이고 보이지 않지만 명확히 존재하는 사회의 불공정한 허들들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한다. 사랑에 있어도 마찬가지. 안수영은 훅 들어오는 하상수를 용감하게 맞이한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하상수가 안수영의 그 당찬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주저

머뭇거리고 망설임.


마음씨 착한 하상수의 죄가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사랑 앞에서 주저함이다. 잠깐의 머뭇거리고 망설인 것을 안수영에게 들킨 것, 그것이 그의 죄다. 안수영은 하상수를 밀어낼 뿐만 아니라 쏘아붙인다. 하상수가 스스로 머뭇거린 것을 실토할 때까지 피를 말린다. 지켜보고 있자니 죄에 비해 죗값이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고, 선남선녀에, 둘 다 마음씨도 고운데 그냥 쉽게 쉽게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면 안 되나? 안수영은 뭘 저렇게까지 하지?' 싶었는데 하상수 이 멍청이가 또 선을 넘는다. 지 좋다고 시속 200km로 돌진해 오는, 예쁘고 능력 있는 박미경과 연애를 해버린다. 착한 놈이 줏대가 없으니 이런 사달이 난다. 이건 중범죄다. 피해자가 안수영, 박미경 둘이나 되기 때문에.


뭐 대충 이런 느낌으로 여러 남녀가 얽히고설키는 내용이다. 안수영도 은행 내 청원경찰인 정종현과 연애를 한다. 마음 쓰고, 돈 쓰고, 집 한편도 내어준다. 이쯤 되니 이 드라마 정말 허구다 싶었다. 모든 인물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다 좋은 사람들이다 보니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 경계가 없고 그게 연애와도 쉽게 혼동이 된다. 사람이 결핍이 있으면 확 삐뚤어지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다들 너무 훈훈한 나머지 서로를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된 지경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수영이 보여준 사랑은 의미 있었다고 본다. 그것은 고집스러우면서 용감하고, 느릿느릿하지만 단단한 모양의 사랑이었다. 소유하고 싶고 소유당하고 싶은 마음,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함께이고 싶은 마음,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 안수영은 그 모든 욕망을 지연시킨다. 안수영은 그 모든 욕망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도 그냥 두고 본다. 실현시키지 않는다. 그 모습은 마치 도를 닦는 수도승 같기도, 앞에 둔 먹이를 잡기 좋은 때를 기다리는 하이에나 같기도 하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 어지러운 이해관계 속에서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때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아니면 안수영도 하상수처럼 현실의 벽 앞에서 주저하느라 시간을 까먹은 것일까?


어떤 감정은 지연되면 휘발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본래 오래 참는 것이라 참으면 참을수록 응축된다. 잘 숙성된 쿰쿰한 된장처럼. 그리고 그 된장의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그렇게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잘 발효된 사랑은 인생의 맛을 좌우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지연을 멈춰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모래성을 쌓기 시작해야 한다. 바람에 무너질까, 파도에 쓸릴까 고민하다 이도저도 못하는 바보 등신이 돼선 안된다. 용기 있는 자만이 제 짝을 찾으리니... 내가 못나 보여서 멈칫, 상대가 못나 보여서 멈칫, 멈칫하는 내가 부끄러워서 멈칫 하더라도, 조금씩이라도 깨고 나가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상수와 안수영이 한껏 지연시킨 사랑은 어떻게 알맞게 잘 익었을까. 둘만의 추억이 있는 장소를 걷고 서로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엔 그들의 모든 서사가 담겨있다. 한참을 서로의 주변을 맴돌면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 둘은 더 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됐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두 사람이 성사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끝끝내 Happily ever after 같은 뻔한 결말을 내지 않아서 답답한 건 사실이었으나 어떤 면에선 오히려 좋았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그 둘을 계속해서 응원하게 됐으니까. 작가의 대단한 전략에 박수를 보낸다. 바라건대 안수영과 하상수가 현실의 어떤 벽도 함께 뚫고 지나가길,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자유롭게 사랑하길 빈다. 내 코가 석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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