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YOUHERE Nov 30. 2023

누구를 위해 김치를 담그나

내가 음식 냄새에 얼마나 기겁하는지 알면 우리 할머니는 놀랄 것이다. 먹성 좋고 반찬 투정 할 줄 모르던 손녀딸이 냄새에 예민하다는 건 상상도 못 하실 테다.


김치를 보내겠다고 알릴 때 한 번, 김치를 보내기 전 주소를 묻겠다고 한 번, 김치를 보내고서 김치가 가다가 쉴까 봐서 확인 차 한 번. 김치를 보내기 위해 총 세 번 내게 전화를 건 할머니. 감사히도 나는 맛있는 김치가 담긴 택배를 잘 받았다.


박스를 여니 진하게 풍겨오는 김치냄새. 충청도 김치는 물기가 많아서 맡아본 사람만 아는 그 특유의 물컹한 냄새가 있다. 큰 박스에 자리를 차지한 세 덩이의 비닐봉지. 각각은 세 겹의 비닐을 둘렀음에도 냄새를 감추지 못했다.


"엄마랑 잘 나눠 먹어라"

당신의 전화는 곧잘 받지 않는, 되바라진 딸에게 김치를 전달해 달라는 할머니의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의 주인공인 내 엄마는 영영 모를 것이다. 내가 그 맹목적이고 사려 깊은 관심을 얼마나 시기해 왔는지를.


내 엄마의 엄마는 역시, 나보다는 내 엄마를 더 챙긴다. 아닐 것 같지만 그렇다. 그것은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탈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내 자식에 대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친다. 내 엄마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은 그렇다.


엄마에게 전달할 김치를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이런 사랑을 당연히 받아먹으면서 고마워할 줄 모르는 엄마의 입장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마저 시기하는 나의 옹졸함에 대해서. 나에 대한 내 엄마의 사랑도 그러할진대, 나 역시 고마워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딸이어서 인지 마음엔 불만만 한가득이다. 나는 할머니 편인데 할머니는 결국 엄마 편인 것이 서러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해한다. 결국 내 자식이 최고일테지.


누군가의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을 꿈꿔본 적이 있다. 실은 여전히 꿈꾸고 있다.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 그 사람으로 인해 나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살만한 가치를 느끼는 삶을, 그 부질없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건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고, 매일을 생각한다. 삶이 오직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여정일지라도, 그걸 들여다 봐주고 귀하게 여겨줄 한 사람 또한 꿈꾼다면 미련한 일일까. 그 헛된 희망이 나만의 것이라면, 모두 자기에 도취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마저,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먹이고, 서로의 슬픔까지 안아주는 관계는 얼마나 값진가. 나는 그것을 경험하고 싶다. 경험당하고 싶다. 내가 만든 김치를 어떻게든 먹이고 싶다. 오직 한 사람에게 말이다.


삶이 끝나는 순간에 대해 자꾸만 생각한다. 그러면 가벼이 알짱대는 것들은 알아서 시야에서 사라진다. 오직 중요한 것만이 남는다. 나를 규정하고,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 그리고 나를 통과해 흔적을 남기는 것들.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는 정신머리 탓에 다 흘려버리고 마는 것 같지만 서도, 누군가가 내게 줬던 마음들을 잘 기억해 두려고 애쓴다. 내게 사랑을 고백하며 떨리던 눈동자와 따스한 손의 감촉, 함께 깔깔댔던 웃음소리 까지도. 그럼 됐다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원한 것은 내 기억이지 상대의 마음이 아니니까. 영원한 마음은 어미에게서나 바랄 수 있는 것이니까.


아직 누군가를 위해 김치 한 포기 담가본 적 없으므로, 진실한 사랑을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랑이 참으로 진귀한 것이란 것, 아주 절묘한 상호작용이란 것에 대해 생각을 한다. 열과 성으로 담근 김치를, 나는 어디로 보낼 것인가. 허투루 주지 말아야지. 냄새가 새어 나와도 봉지를 여러 겹 싸서 막아야지 결심하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2307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