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번의 고백

< 돌아갈 수 없음: Outro >

by SEEYOUHERE

아아- 그저 쓰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문이 잔뜩 묻은 도자기처럼, 서투른 대로 미숙한 대로 날것의 날들. 마감에 쫓겨 무턱대고 글을 마무리한 날도 있었습니다. 같은 단어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쓰고, 반점도 찍고픈 만큼 마구마구, 문단도 행도 내 호흡대로 자유로이 썼습니다. 카피를 쓸 때는 감히 할 수 없던 일. 제멋대로 쓸 수 있어 자유롭고 행복했습니다.


그저 쓰면서 당신들을 향한 마음도 아끼지 않고 썼습니다. 빼곡히 적히는 글씨들처럼 나는 당신들과 아주 가까이에 가 서있었습니다. 겨울의 막바지에서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는 동안에요. 오늘로써 꼬박 서른하고 한 주. 다 펼쳐놓으니 매주 호명했던 이름들이 떠오릅니다. 쓰면서 곱씹었던 기억들을 소처럼 되새김질해봅니다. 푸념과 다짐, 어쭙잖은 위로 같은 것들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나의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 여기 당신들을 들여다보고 마음 쓰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잘하는 걸 뽐내는 것보다 미숙한 걸 꺼내 보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은 것에 답하고, 부끄러운 일들도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잘 사는 것으로 화답해주셔야 합니다. 내가 솔직하게 다 나누어주었으니까. 미숙한 부분까지도 꾸밈없이 다 보여주었으니까. 같이 나눠 먹었으니까, 도로 뱉을래도 별 수 없습니다. 다 갖고 잘 소화시켜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엄밀히 따지면 <돌아갈 수 없음>의 상당 부분은 당신들의 소유입니다. 내가 당신들에게서 몰래 포착하고 갈취한 이야기들이니까요. 애초에 당신들 것이었으니까 각자의 몫을 도로 가져가세요. Can’ Go Back. 빠꾸는 없습니다.


익숙한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불확실성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과 동시에 취약해진다는 뜻이다. 취약해짐이 두려운 사람들은 갑각류처럼 딱딱한 외피를 입고는 그것을 ‘확신’이라 이름 붙인다.


언젠가 김기석 목사님이 기고하신 글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고는 적어두었습니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요. 종교는 없지만 이 두 문장 앞에서는 아주 신실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확신으로부터 부단히 달아나기를, 취약함 안에서 항상 용감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쓰지는 않았던 때 익숙한 세계를 떠나 브런치에서 연재를 시작했고, 쓰는 내내 취약했습니다. 그동안 부끄러움과 조바심과 두려움에 나를 다 노출시키느라 어딘가 화상을 입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부족함 많은 제 습작을 매주 읽으러 와주시고 간간히 다정한 피드백으로 마음을 달래준 당신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다시 한껏 취약해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마침내, 새로운 불안을 창조해낼 때 (03화: 불안아, 부탁해!). 한동안은 자기의심과 되도 않는 완벽주의 같은 것들로 또 다시 괴롭겠지만, 이번의 성취를 기억하면서 잘 이겨내 보겠습니다. 서른한 번의 일요일을 함께 맞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헤어짐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잖아요. 새로운 글로 다시 마주 할 날을 기대하면서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빌겠습니다.



https://youtu.be/uwQfWCn803Y?si=8_PX-iTkfOmMO-A0

*** 글을 쓸 때마다 찾아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합니다. 못해도 200번은 들었을 겁니다. 집중해서 끝내야 할 일이 있을 때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도입의 새소리와 '...feels like I'm born again'으로 끝나는 청명한 내레이션이 몰입도를 확 올려줄 겁니다. 제목은 여름의 숲. 마침 여름이 오네요. 매일 새로 태어나듯 개운한 여름날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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