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리뷰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맞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유한 개인, 최민진, 나정만, 강민호, 한정희. 이들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을까.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돌려주는 삶을 이기호 본인의 시선에서 보여주는 「최미진은 어디로」. 이 소설은 제임스셔터내려와 최미진의 일화뿐만 아니라, 보험사 직원의 비웃음을 보고 모욕감을 느끼는 자신과 겨울 점퍼를 껴입은 사내에게 아무렇지 않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개인이 다른 이에게 느끼는 모욕과 수치를 어떤 식으로 되돌려주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고 아주 사소한 일들 사이 오가는 모욕과 수치를 의식하게 되면, 주변에서 날아오는 비수 같은 것들을 피하기 급급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적의 자체에도 덜컥 겁이 나게 된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은 아주 흥미로운 지점에서 시작한다. 세세한 사건 경위를 말하면서 그날 오지 않은 크레인 기사를 불러와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소설가가 용산 사건에 대한 당사자가 아닌, 현장에 가지 못한 나정만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처럼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워서일까. 마음 놓고 안타까워할 수 없는 이유와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이 개인을 탓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탓하는 일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를 탓해야 옳은 가. 뿡뿡이 뿡순이 공익, 건설회사 상무인가 부장, 좆같은 도로법, 병신같이 꾸물거린 나정만, 불법점거인, 경찰……. 누구 하나를 골라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탓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 자신을 탓하기 전에. 소설가 역시 비슷한 이유로 나정만을 만났을지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친절한 강민호」 역시 자신이 알지 모르는 적의를 가지고 있고, 이에 윤희는 모욕 혹은 수치를 느꼈다. 강민호는 소설이 끝날 때 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받지만 이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한다. 윤희의 태도와 스프라이트 수영복이라는 단서로 생각해보면 꽤 문제적인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민호는 이를 전혀 기억하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은 백치적 존재를 내세우면서 문제를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고,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인물이 무언가 깨닫지 못하는 지점이 있어, 우리로 하여금 끝내 찝찝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 인물이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점 때문에 서늘하기까지 하다.
「한정희와 나」에서는 개인이 개인을 받아들이는 일을 보여준다. 개인이 개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내를 키워주고 재경을 입양한 마석 아빠와 정희를 집에 들이게 된 나. 마석 아빠는 아내를 좋아했지만 끝내 아내는 곁을 떠나야만 했고, 후에 재경을 입양했지만 때문에 고된 말년을 보게 됐다. 나 역시 처음에는 정희를 좋아했지만 끝에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이는 온전히 정희 때문만은 아니다. 정희가 보여준 모습을 질려한 탓도 있지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과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한 자신의 적의가 무서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호의나 환대가 있는 반면 이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모욕과 적의로 변하고, 우리는 이런 일들을 통해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혹은 느끼게 될까 봐 먼저 모욕과 적의를 내보이는 게 아닐까.
이기호는 소설가를 화자로 자기 본인을 내세우면서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동안 보여야 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기호의 소설은 유머러스하면서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적 지점을 명확하게 짚어낸다.
이 소설집은 개인들의 고유한 이름을 내세우면서 개개인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개인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아무리 친절하더라도 개인은 개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맞이하려 할 때 누군가는 수치심을 느끼며 우리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의 거부에 다른 수치심을 느끼고 누군가를 모욕하려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개인이다.
각각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소설집 전체가 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쓸쓸하고 씁쓸한 마음이 남게 된다는 점에 마냥 웃으며 볼 수만은 없는, 이기호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기호의 소설 전체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기호 하면 유머러스하다는 점이 먼저 생각난다. 유머에도 여로 종류가 있는데, 이기호는 찌질하고 웃픈, 때론 어이없어 터지는 실소에 가까운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웃게 하는 것들을 싫어하지 않아서 이기호의 소설 역시 좋아한다.
또, 앞서 말했듯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고 정확하다는 점이 있다. 이를 여러 소설들을 통해 반복하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더 명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주제가 너무 잘 드러나서 아쉬운 것 같기도 하다. 각 소설 후반부에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키워드를 직접 언급하기 때문에도 그렇고……, 한참 웃다가도 누군가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하는 이야기 같다는 점 때문에 이기호의 소설은 소설가 이기호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이는 소설가 이기호를 잘 알지 못해 소설을 읽는데 방해받지 않아는 다는 이유로 다행이다.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기호를 찌질하고 웃픈, 때론 어이없는 실소를 터지게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