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 斷想 12
결사반대
우리 동네 면사무소 앞을 지나다 보면 일년 열두달 형형색색의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주민들이 알아야 할 것을 홍보하는 내용도 있고, 입학시험 때가 되면 ‘ 경축! 000씨 아들 000군 00대학 합격’ 같은 애교스런 것도 보인다. 이런 것 말고는 거의 대부분의 현수막에는 ‘결사반대’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레미콘 공장 들어오는 것 결사반대, 채석장 들어오는 것 결사반대. 요새는 열병합 발전소 들어오는 것 결사반대 등등, 모두 합쳐 스무 개가 훨씬 넘게 걸려있다. 무슨 무슨 운동단체, 무슨 무슨 동네 모임 등, 이런 것을 내거는 단체도 이만큼 많다. 농사는 언제 짓고 맨날 반대 운동만 하고 회의만 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문구도 내용도 참 살벌한데 여기다 또 무조건 결사반대니, 정말 나같이 심약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겁이 난다. 어떤 플랑카드에는 ‘죽음으로 결사반대한다’고 써 있는 것도 보인다. 그러니까 두 번의 죽음도 마다 않겠다는 것인가. 참 너무 무시무시하다. 그냥 ‘우리는 채석장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 이러면 안 될까. 결사(決死)는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한다는 말 일 텐데, 내 목숨이 채석장 들어 온다고 버릴 정도의 가치 밖에 안되는 건가. 물론 내 집 가까이 채석장이 들어와, 날마다 돌 깨는 소리로 스트레스 받는 다면 나라도 반대하겠지만 그렇다고 진짜 채석장이 들어오면 내 목숨을 버릴 건가, 뭐 그건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모든 반대는 ‘결사반대’지 그냥 ‘반대’는 없다. 그냥 반대라고 하면 그건 반대가 아니라고 여기는 거다. 어디 가서 조용조용 얘기하면 잘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그래도 잘 안 들으면 악을 쓰게 되는 것과 같다.
시골에 와서 보면 동네 어디를 보아도 젊은 사람들 보기가 쉽지 않다. 이웃 동네에 이곳 토박이 집안의 후손인 40대 농부가 있지만, 정말 열심히 농사 지어도 아이들 공부 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간간이 직장일도 하고 농사도 지어 겨우 살아간다. 그러니 주변에 이런 채석장이라도 들어와야 농촌이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현실은 이렇게 복잡하다.
‘일자리가 가족의 흩어짐을 막아주고 이어주는 바탕이 된다’ 이 말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 한 말이 아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씀이라고 한다. 이 말은 정말 우리나라 농촌에 꼭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시골 농촌에도 적당히 기업들이 들어와 어느정도라도 일자리가 있다면 오늘날과 같이 농촌에 노인들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노인과 젊은이가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말고 뭐가 있을까? 거기다 이곳 내가 있는 곳은 한강 상류 지역으로 엄격한 수질환경 보호지역이라 왠만한 기업은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기껏 들어오겠다는 것이 채석장 정도인데 이런 것도 결사반대니 참 가슴이 답답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는 우리 주변의 일상이다 보니, 사회는 겉보기에 항상 살벌해 보이고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보이고 어디서건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것이다.
언제쯤 우리 주변에서 결사반대가 줄어들 수 있을까. 그런 것이 가능이나 할까. 아마도 점점 많아지면 많아지지 줄어 들 가능성은 없지 않을까. 그러나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은 이런 문구에 나처럼 겁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으니, 이런 무서운 문구들의 효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플랑카드를 내 걸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니 더 무서운 문구들이 등장할 것이라고요?
오뉴월
이문구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