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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플 Jun 11. 2024

산너머



어제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유년시절의 기억은

각인된 듯 또렷하다.  생각할 때면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다섯 살 때 부모님은 시장옆에서 작은 중국집을 하셨는데 그 뒤엔 산이 있었다.  산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다른 세계로 가는 커다란 문 같았다.

산의 앞면만 보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뒷면은 나의 상상의 영역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세계는 바다였다.


다섯 살까지 바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사진첩에도 없는 걸 보니 가지 못했나 보다.

여섯 식구 먹고살기 바빠 여행 갈 여유가 없었으니까.

내가 아는 바다는 중국집에 작은 텔레비전 속에 담겨 있었다.


’올여름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피서객들이 …’


파란 파도가 넘실대고 고운 모래사장 위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휴가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모래성도 만들어 보고 싶고 내 발등을 덮어주는 시원한 파도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었다.


저 산만 넘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 가는 길이고 심지어 길도 나있지 않은 나무만 무성한 산이었다.

괜히 산을 넘어가려다 길 잃고 집에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산이 하나가 아니라 그 뒤에 또 산이 있으면 또 어쩌나. 나는 그저 산 앞에 서서 서성였다. 산이 하얀 셀로판지처럼 투명해지면서 뒤에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아주 작았나 보다.

산 뒤에 바다가 있고 바다의 깊이는 가늠할 정도였으니까.


자라면서 그 산 뒤엔 바다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에 내가 본 거대한 산은 그저 뒷산이었고

다른 세계로 가는 커다란 문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 시절 내가  산을 넘지 않아서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매번 산을 넘어간다.

몇 개 일지 모르는 산을. 산 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산 하나 넘고 평야가 나오면 걷다가 뛰다가 또 산을 마주하면 넘는다.

그 끝엔 내가 보고 싶고 가고 싶어 했던 나를 위한 바다가 펼쳐져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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