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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플 Sep 10. 2024

관심



내가 다섯 살 때.

산 뒤에 바다가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부모님과 친할머니는 가게 앞에서 짬뽕에 들어갈 홍합을 자주 다듬으셨다. 플라스틱 목욕의자에 앉아 커다란 망에 가득 들어 있는 홍합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이유로 손질하는지는 몰랐지만, 어린 나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가끔씩 계산대 위에 있던 콩가루를 떠서 입에 털어 넣어 혀로 녹여 먹고 등유난로 위에 얹어있는 양푼주전자의 주둥이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사탕을 대고 있으면 사탕이 녹는데, 겉이 녹은 사탕을 호호 불어 먹기도 했다. 가게 주변에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집 근처에도 친구가 없긴 했지만…나에게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두 살 어린 여동생 한 명이 전부였다. 날마다 이렇게_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서 혼자 또는 말이 통하지 않는 동생과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하수구 공사를 하는 것인지 뚜껑이 열려 있고 두꺼운 호스가 하수구 안쪽으로 넣어 있었다.

커다란 구렁이가 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늘 덮여 있는 맨홀 뚜껑의 안 쪽이 궁금했었다.

얼마나 아득히 깊을까, 물이 있을까, 아니면 지저분한 오물이 가득 담겨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늘 궁금하게 만든다.

어른들은 없었다. 주변에는 펜스도 쳐있지 않았다.

이미 모여있던 몇 명의 동네 꼬마들 옆으로 가서 동생과 구경했다. 바닥이 보였고 축축한 진흙 같은 것이 있었다. 별것 없는 하수구인데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때, 캄캄한 하수구안쪽으로 뭔가 떨어졌다. 옆에 있던 동생이 하수구에 들어가 있었다.  들여다보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어린 동생은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었고 그 소리를 듣고 어른들이 달려와 동생을 꺼냈다.

다행인 건 하수구에 물을 빼낸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다.

다행히도 동생은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 후에 현장에서 일을 하셨던 아저씨는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까만 비닐봉지에 과자를 가득 채워 우리 가게에 와서 동생에게 주셨다.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_나는 동생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동생이 어려서 그 많은 과자를 잘 먹지 못했을 것이다. 끽해봐야 녹여먹을 수 있는 바나나킥 정도.

먹었어도 대부분 내가 먹었겠지. 과자를 먹으면서도 마음은 뭔가 불편했다. 내 것이 아닌 걸 먹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표현은 못 했지만 속으로 몇 번이나 ’ 내가 하수구에 빠졌어야 하는데 ‘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자를 먹고 싶어서가 아닌, 내가 받고 싶었던 건 관심이었던 것 같다.나를 좀 봐줬으면.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는 미안해하신다. 먹고살기 바빠서 잘 돌봐주지 못했다고.

이런 환경에도 바르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그 시절에는 많이들 그랬으니까.

커가면서는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알았다.

무관심이 아니었다는 걸.

그동안 내가 받고 싶어 했었던 것을 내가 세상에 나오고부터 계속 주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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