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위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러모로 처음 뵙겠습니다. 언젠간 이 글들이 책으로 엮어지길 바라는 작가 '파래'입니다. 필명은 파란색을 좋아해서 '파래'라고 지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파란색은 남자 거, 분홍색은 여자 거라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어요. 문방구에 가면 마치 남과 북이 쪼개져 있는 것처럼 한쪽 벽면은 새파랗고, 다른 쪽은 핑크빛이 가득했죠. 하지만 저는 유독 파란색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다와 하늘이 온통 푸르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좋아한 건 비단 색깔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자도 좋아했습니다. 제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동성애자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가볍게 써 주신 사회면 댓글을 통해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전정신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저는 2025년 10월에 세 살 연하의 감자를 닮은 귀여운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을 모시고 말이죠.
누군가 저에게 결혼을 왜 했냐고 물어본다면 '아이를 갖기 위해'라고 대답할 거 같습니다. 저는 와이프 어머님도 인정한 '가부장 레즈'입니다. 일부 보수적인 면이 없지 않거든요.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결혼도 없이 아이를 가지면 안 될 거 같아서 전 여자친구이자 현 와이프인 감자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으니 결혼을 해야 할 거 같아'라고 말입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결혼 제안하시면 안 됩니다! 다행히 선량한 와이프는 뜻을 같이 해주었고, 저는 또다시 연애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세상에 이런 가족도 있다'라는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과 '뒤따라올 가족들을 위한 안내서'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저는 호기심이 유독 많은 사람이거든요. 제가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로부터 알게 된 세상의 단면이 있습니다. 독자분들도 저처럼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알기 어려운 타인의 인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자발적 비혼모 혹은 아이를 고민하는 동성부부에게 궤를 함께하는 동지로서 이 글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문을 쓰고 있는 현재는 아직 임신과 출산 중 무엇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2개월 후면 머나먼 유럽으로 열댓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시험관 시술을 받을 겁니다. 운이 좋게도 임신에 성공하면 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닐 테고, 끝까지 운이 좋다면 별 탈 없이 출산을 할 겁니다. 그리고 이 글은 아마도 그 시간을 눌러 담기 위해 1년이 넘게 연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잃는 경험'을 한다면 더욱 길어질 테지만, 그 또한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가는 거보다 집에 있는 것이 더 편하고,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약자를 혐오할 때면 말을 얹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게 편합니다. 흔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고 하죠. 서로 싸우지 말고, 좋게 좋게 넘어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건 십수 년 전 사회면에 올라간 동성애자 관련 기사에 달렸던 악플이 아닌, 그 밑에 달렸던 따뜻한 선플 덕분입니다. 모르는 이에게 살아갈 용기를 얻은 경험을 했기에 좋게 좋게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싸워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권태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실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존재 가능성'에 스스로를 내던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실존의 정의라고 하면서요. 저는 키보드로 써 내린 글을 통해서 세상에 내던져지고자 합니다. 일련의 시련이나 아픔 그리고 외면이 얼마나 두터운 형태로 존재할지 알 수는 없으나, 최대한 소화해 가며 실존하겠습니다. 그래야 아이가 태어나고 저와 아내가 이윽고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들이 네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책도 쓰고 했어'라고 생색낼 수 있을 테니깐요. 그 과정을 지켜봐 주실 독자 분들에게 미리 감사의 인사와 반가움의 악수를 함께 건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