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금만 오래 기다려 주세요!>

한국에서 비혼출산을 준비하는 법과 난임병원에서의 상담

by 파래

우리나라의 비혼출산

2020년대 들어서 한국의 비혼출산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에 있어서 디어드벤티지로 작용해 이성애자들이 혼인신고를 미루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런 거 같다. 실제로 주변에 결혼식을 한 지 3년이 지났으나 아직 혼인신고를 안 한 커플도 있다.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하면 세액공제를 해주는 혜택도 제공하지만, 신고를 주홍글씨처럼 대하는 지금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미비한 거 같다. 오늘은 비혼 출산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미혼의 정자기증은 불법인가요?

한국에서 미혼이 정자기증을 받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기증자에게 금품을 제공하지 않고 순수하게 기증을 받는다면 법적인 문제는 없다. 이는 정자은행은 난임부부나 사실혼 관계에서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증자를 따로 찾아야 하는 거다. (사실혼 관계도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있는 건,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성애자 부부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퀴어 프렌들리하고 흔쾌히 정자를 기증해 줄 좋은 남성을 찾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미혼들에게 시술을 해주지 않는다.


산부인과학회에서 윤리강령으로 비혼 여성의 난임 시술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2년 대한산부인과학회장에게 비혼여성에 대한 시험관 시술을 제한하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학회는 이를 거부했다. 관련 법률 개정과 동성 커플의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살면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러니 한국의 비혼 출산을 원하는 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



비혼출산은 어떻게 하나요?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 하나 쉽지는 않다. 합법적인 영역도 있고, 회색지대인 부분도 있다. 제3 국에서 브로커를 통해 정자를 구매해서 또 다른 나라에 가 시술을 하는 등에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다들 통했던 방식이 막힐까 봐, 선뜻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여기서는 합법적인 부분만 설명하려고 한다.


'해외 정자은행 + 해외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해외로는 유럽인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등과 미국이 있다. 각 나라마다 정자은행 및 시술 관련 사항들도 다르다. 덴마크 같은 경우에는 가장 큰 상업 정자은행이 있다. 신원이 공개를 허용한 기증자에게 아이가 원한다면 연락을 할 수 있는 옵션도 제공한다. 스페인 같은 경우에는 정자 기증자의 익명이 철저히 보장된다. 의사의 재량으로 환자와 유사한 정자를 선택한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정자뿐만 아니라 난자 기증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대리모도 가능하다.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구매한 후, 시술을 할 병원으로 배송하여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을 진행하면 된다.


덴마크 병원에서 전달해준 프랑스 약국, 한국으로는 배송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금액은 어느 정도 드나요?

비용은 성공 확률에 따라서 그리고 환율에 따라서 변하지만 최소 2천~8천까지 든다. 임신이 자꾸 되지 않거나 미국 병원을 이용할 경우엔 억대로 늘어난다. 비용으로는 시술비, 약제비, 정자 비용, 체류비, 비행기 값, 배아 보관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득이 이성애자 부부 및 게이부부에 비해 낮은 한국 레즈비언 부부에게는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동성 커플도 많고, 아이를 갖는 나이대도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난임 부부가 시험관을 시도한다면 나라에서 지원받아서 1,2백만 원가량의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또 서울시는 미혼 여성에게 최대 200만 원 난자 동결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퀴어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미혼이고 시험관 시술을 받고 싶어요

덴마크 병원과 계약서를 썼다. 5만 원 정도의 해외송금 수수료를 납부하고 유럽 은행으로 600만 원을 송금했다. 병원에서는 입금을 확인하고 처방전을 보내줬다. 한국 병원에서 비슷한 약제를 처방받거나, 프랑스에서 약을 시키기면 된다고 했다. 처방전을 출력하고 번역을 해서 포스트잇에 약제명을 적었다. 일단 병원에 가볼 예정이었다.


트랜스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퀴어프렌들리한 산부인과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병원이 난임병원도 아니거니와 자꾸 서류를 영어로 번역해 달라는 나의 요구가 업무에 지장을 줬나 보다. 이번 혈액검사만 도와주겠다는 말씀에 우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출산한 분께 도움을 청해 병원으로 소개받았다. 불과 2년 전에만 해도 약 처방을 해주셨고, 친절히 도와주셨다고 했다. 목요일에 회사 일을 마치고 난임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 진료를 볼까 했지만 얼른 불안감을 없애고 싶었다. 자꾸만 불안했다.


난임병원은 목 좋은 역세권에 있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칼같이 뛰어왔건만,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혼자 온 임산부와 어색하게 앉아 있는 부부들이 보였다. 달려오느라 격해진 숨을 내쉬며 접수를 했다.


'오래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약을 받을 수 있으면 몇 시간을 기다려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간략하게 '네'라고 답했다. 초진이니 상담표를 작성해 달라고 하셨다. 상담 내역에 '시험관'을 체크했다. 결혼 유무에 '미혼'이라고도 체크했다. 와이프랑 결혼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어딜 가도 미혼이었다. 막힘없이 체크를 하다 피임방법 문항에서 멈칫했다. 동성부부라고 작성해야 할지 아니면 싱글이라고 할지. 솔직하게 퀴어라고 말하기보다는 미혼 출산이라고 하는 게 더 낫다는 글이 떠올라서 '콘돔'이라고 작성했다. 뭐… 피임 용도로 쓰는 거는 아니지만 거짓말은 아니니까. 상담지를 제출하고 나니 데스크 분께서 '네~ 조금만 오래 기다려주세요!'라고 안내해 주셨다. 조금만 오래. 재밌는 말이었다.




동성애자의 간절한 바람도 들어주시나요?

난임병원 벽면에는 무수한 간절함 속에서 태어난 아기들의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외국인들도 왕왕 보였다. 해외에서 방문하는 사람도 꽤 많은가 보다. 가운데 크게 적힌 '간절한 바람을 이뤄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병원이 나의 간절함도 들어줄까.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코디네이터 분이 상담실 안으로 안내해 주셨다. 코디 분께서는 궁금하다는 눈빛을 굳이 감추지 않고 물으셨다.


'안녕하세요, 여기 미혼인데 시험관으로 체크하셨더라고요. 사실혼 관계일까요?'


미혼과 기혼의 상담지가 다르다고 하셨다. 나는 우물쭈물거리다가 말했다.


'아, 제가 미혼인데 해외에서 시험관을 진행할 예정이라서요.'


코디네이터 분은 이해가 된다는 듯이 밝게 대답하셨다.


'아, 그렇군요! 어느 나라에서 진행하세요? 약제는 보험처리가 안 돼서 가격이 좀 나가실 거예요'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상담 태도에 희망을 느꼈다. 그래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건가 싶었다. 역시 서울은 달라. 시골쥐스러운 생각을 하다 보니 타닥이는 키보드 소리가 지나가고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다시 대기했다. 사이트에 안내된 마감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진료가 이어졌다.


기다림 끝에 내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과할 정도로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눈이 마주친 의사 선생님은 꽤 피로해 보이셨다. 선생님께서 모니터를 힐끗 보시더니 초연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해외에서 시험관 하시려는 거죠? 안 돼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해서 오히려 당황했다. 다짜고짜 안 된다니. 들어보니 약제를 처방하면 아무개 기관으로 보내져서 안 된다고 하셨다. 거짓말을 쓸 수는 없지 않냐고 하셨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미혼도 난자 동결할 수 있잖아요'


'그건 우리나라에서 했을 때!'


그럼 제가 미혼 난자 동결한다고 하고 약제 처방받은 후에 병원에 방문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억울한 마음에 왜 안 되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어찌 됐든 안 된다였다. 몇 년 전에는 해줬는데 이젠 안 된다는 거다. 이성부부가 성별 선택을 위해 미국에서 시험관을 한 적은 있었다고 했다. 미혼은 약제 처방을 못 해 준다고 하셨다.


병원이나 선생님 탓을 하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으시겠지.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업무가 있으니 이해한다. 이해하기 싫지만, 이해가 된다. 단지 개인의 온정에 기대야 하는 현 상황이 주는 무력함이 싫었다. 저출산 나라에서 소중한 아이를 낳고 싶다는데 왜 안 되는 건데. 규제의 벽은 돈의 벽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



힘든 길인 걸 알았지만, 정말 힘든 길이군요

그분의 힘겨운 야간 진료를 더는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알겠다고 체념한 뒤 병원을 나왔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약을 사서 들여와야 하나 싶었지만, 세관 통과가 안 될 거 같았다. 미국-이란-이스라엘 여파로 해외 배송도 명확하지 않았고, 배아 주사는 냉장 보관해야 하는데 날짜 맞추기도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닐 거다. 머리가 아팠다. 다른 산부인과에서 미혼 난자 동결한다고 거짓말을 치고 덴마크로 날아갈까 고민했다. 사회에서 모두가 솔직하지는 않고, 비급여라서 비용도 지원받지 못하니까.


저녁도 못 먹고 병원을 간 거라 눈에 보이는 수제버거 집에 들어가서 비싼 세트를 시켰다. 감자튀김에 치즈도 추가했다. 하지만 햄버거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미뢰가 기능의 일부를 상실한 거다. 화가 났다. 내가 임신을 시도하려고 할 때 규제가 강화됨과 동시에 국제 정세는 혼란스럽고, 환율은 고공행진했다. 어려운 길임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 진짜 쉽지 않은 길이구나. 대충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와이프는 화가 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화가 나서 먹은 수제버거

막상 와이프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 헬스장에 가서 러닝을 했다. 머신의 속도를 올리니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온몸에 산소가 공급되며 혈류가 도는 게 느껴졌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운동을 하니 잡생각들이 정리됐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다짐이 섰다.


'그래, 내가 고른 길은 쉽지 않은 거 알고 있었잖아. 이 정도 시련에 무너지면 안 돼.'


그날 밤, 친절하게 대해 주셨던 덴마크 병원에 메일로 죄송하지만 한국에서는 약을 구할 수 없어 계약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자, 다시 시작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