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평불만해 볼게요>

이것저것 규탄한다 죄다 보상해라

by 파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어. 뭐부터 들을래?'

유명한 문장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질문이다. 굳이 고르자면 나는 나쁜 소식을 먼저 들을 거 같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좋은 소식을 나중에 들으면 그나마 기분이 좀 누그러진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동성애자 가족이 살기 어려운 이유를 적을 거기 때문이다. 다음 주는 동성 부부가 한국에서 살기 좋은 이유에 대해 말해보겠다. 과연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곰곰이 고민해 봐야겠다. 물론 이는 퀴어 신혼부부의 평범한 불평불만이고, 소란스러운 구시렁거림일 뿐이다.


생활의 불편함

동성애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오해를 산다. 일례로 아버지는 커밍아웃한 직후, 내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여자 목욕탕에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셨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순수한 헤테로다. 이런 말도 들은 적 있다. 해외 유명 연예인이 동성애자이자 소아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너도 동성애 자니깐 동시에 소아성애자냐는 질문도 들었다. 세상에. 아무리 동성애자가 흔하지는 않다 해도 이토록 무지하다니. 소아성애자는 범죄다. 오히려 이성애보다는 동성애가 공평하다. 신체나 정신에서 오는 차이가 이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 그렇기에 동성혼 합법화라는 말도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애초에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동성혼 '법제화'라는 고급스러운 말로 *앨라이를 표방하자.


*앨라이(Ally)는 성소수자나 사회적 소수자 당사자가 아니면서, 이들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는 '협력자' 또는 '지지자'를 뜻합니다.


사실 동성애자로서 국가가 우리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적 왕따를 시키는 게 불편하기는 하다. 퀴어혐오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노출된다는 건, 누군가 갑자기 들이민 칼에 그대로 찔리는 것과 같다. 장담컨대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개인으로 하루하루 흘러가는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솔직히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는 그다지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라고 이동권을 침해받아서 버스를 못 타지는 것도 아니고, 국밥집에서 날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개인의 지향성과 성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버스 기사님은 내가 캐리어를 들고 있는지, 국밥집주인 분껜 바쁜 점심시간에 혼자 왔는지가 중요한 점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라는 건,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점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모두의 손을 잡고 가느다란 선으로 살고 싶다.

조직의 불편함

직장인으로서 동성애자로 사는 건, 개인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다. 일단 내향형 K-직장인의 고질적 고민거리인 'SMALL TALK'부터 문제가 생긴다. 흔하게 던지는 애인이 있냐는 질문부터 결혼까지 이어지는 개인정보 파밍 단계에서 매번 거짓말을 하는 건 스트레스가 큰일이다. 시원하게 커밍아웃하면 일순간에 편해지겠지만, 그냥 절교한다는 다짐으로 친구에게 하는 커밍아웃과 계좌와 직결된 직장에서의 커밍아웃은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인사고과에서 어떤 불이익을 얻을지, 소문이 어떻게 나서 인간관계가 협소해질지, 그 파급력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직장 내 커밍아웃이 어쩌면 가족에게 하는 커밍아웃보다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애자 중심의 대화 주제에서 나아가 이성애 중심의 복지체계도 불편하기만 하다. 사소하게는 배우자 건강검진부터 임직원 가족 할인, 경조사 지원, 육아휴직까지 동성애자들은 마음 편하게 신청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부 친한 동기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했으나 회사에는 알리지 않았다. 따라오는 물음표에 모두 답을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이전 부서 팀장님께서 갑자기 전화가 오셨다. '너 결혼했다는 말이 들리더라?'. 어디서 새어 나갔을까. 나는 웃으며 '제가요?'라고 답했지만 입꼬리는 딱딱해졌다. 최근 이성애자 사이에도 결혼 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 청첩장이나 사실혼 관계 서류만 내도 결재 승인을 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은 거 같다. 5G 네트워크보다 빠른 '소문' 때문이다.


부부의 불편함

퀴어 커플이 결혼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무엇일까. 부모님께 인사 혹은 임신하기? 아니, 바로 '유언장 쓰기'다.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 없는 한부모 가정이 된다. 여자를 위해 애도 낳아주는 *부치인 내가 서류상 엄마가 될 것이고, 와이프는 잘 쳐 줘 봐야 동거인의 자녀로 찍힐 거다.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게 되면 아이는 어디로 갈까. 나의 재산은 원가족에게 귀속될 것이다. 원가족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기에 와이프를 나 몰라라 하지는 않겠지만, 법적으로 강제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지더라도 불안하지 않게, 내가 떠나도 와이프와 아이가 불안해지지 않게 말이다. 모두들 이토록 지독하게 얽히고 싶어서 결혼하지 않는가.


*부치는 레즈비언 용어다. 구글 사전에는 '여자들의 관계에서 능동적이고 상대를 리드하는 쪽'을 부치라고 한다. 나는 '완벽하게 여자를 위하는 삶을 추구하는 레즈비언'이라고 말하겠다.


이것저것 죄다 보상하라

1. 동성혼 법제화해라.

2. 차별금지법 제정해라.

3. 이성애 위주의 복지 정책을 바꿔라.

4. 보조생식술 미혼도 가능하게 바꿔라.

5. K-퀴어드라마 만들어줘라.

6. 성교육에 퀴어 관련 내용을 포함시켜라.

7. 퀴어축제 때 시청을 내어줘라.

8. 인천공항에 여자 커플 광고 걸었는데 내려라고 한 거 사과해라.

9. 레즈비언 클럽에 행사인 걸 알고 취소한 분 사과해라

10. 퀴어 배우자 마일리지 적립해 줘라.

11. 퀴어 가족 세액공제 및 부부 합산 어쩌고 다 해줘라.

12. 이것저것 죄다 규탄하고 보상하라.

세상은 넓고 나의 존재는 미미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