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옷장 속으로 들어간 아이>

사랑이 부족하다면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by 파래

옷장 문이 잠긴 이유

공개적으로 성 지향성을 드러내는 사람을 '오픈리(Openly)'라고 한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유치원에서 관심 있는 여자애의 보디가드를 자처했던 본투비 퀴어인 내가 느끼기에도 퀴어를 대하는 사회 분위기는 확실히 변했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오픈리 게이인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했던 때가 2000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그런 사람이 있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본인이 중학교를 다니던 2010년대에는 키가 크고 잘생긴 여자아이와 동급생 여학생의 연애 스토리가 옆학교 평범한 학생인 나한테까지 흘러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호출했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자녀를 아웃팅 시키는 학교라니 지금도 그런 식으로 대처할까?


고등학교 때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은 아이가 교탁 앞에서 소리쳤다. '옆 반에 레즈비언 있데, 구경 가자!'. 당시 뱉은 말이 어른이 된 그 친구에게 어떤 말로 남았을지 궁금하다. 기억 못 할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만... 그 아이는 뭐가 그리 보고 싶었던 걸까. 굳이 옆 반에 갈 필요 없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말이다.


수능이 300일 정도 남았을 시점에 나름 친했다고 여겼던 친구는 걱정 반, 의심 반인 눈빛으로 '너 여자랑 사귄다고 소문난 거 알아? 조심 좀 해.'라며 일러줬다.(어떻게 알았지) 깜짝 놀란 나는 과도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부정했다. 수능이 다가오자 문과반 여자아이과의 오묘한 관계는 연기처럼 흩어졌지만 미숙한 아이는 모든 걸 지키진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건 나였다.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과 친구의 오지랖 덕분에 옷장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이건 어른들에게 절대 들켜서 안 되는 비밀이야. 하물며 가족한테 말하다니, 그중에서도 엄마에겐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엄마가 알려준 인생

엄마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동기들과 사회 불평불만 타임을 가지는 나와 달리 주어진 삶에 불만이 없으셨다. 매일 같이 뜨는 태양을 매번 아름답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집 앞에서 열리는 작은 축제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손바닥 만한 인형을 사서 깜짝으로 선물해 주는 엄마였다. 자식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학창 시절에 자고 일어나면 발에는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엄마가 신겨준 덕분에 차가운 바닥을 밟지 않아도 됐었다. 또 집 밖을 나서기 전이나 자기 전에 꼭 안아주셨다. 포옹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이 나온다나. 엄마는 자신을 위해 5천 원도 쉽게 쓰지 않으셨다. 자식들이 큰맘 먹고 산 비싼 신발은 아깝다고 몇 번 신지도 않아서 아끼면 뭐 된다는 막내의 핀잔을 들어도 엄마는 장난스레 웃으셨다. 그런 엄마의 아름다운 미소 덕분이었을까? 살면서 가장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오히려 오염되지 않은 시간으로 남았다.


아이가 있는 가족을 꿈꾸게 된 거는 엄마의 영향이 컸다. 엄마가 의도치 않게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은 종종 삶의 어두운 면까지도 밝힌다는 걸 말이다. 내가 만들어 갈 가족도 충만한 사랑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그랬기에.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사회의 어둠이 가족을 덮친다면 이 나라를 버리겠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가족을 지킬 거다. 엄마가 남겨준 순수한 사랑을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한다.


현실적인 아빠의 부재

엄마와 아빠가 자녀에게 주는 영향은 각기 다르다. 성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음양의 조화 측면에서 다르다고 느낀다. 나의 엄마는 아이가 느낄 아빠의 부재를 걱정하신다.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는 숨김없이 우리 가족의 상황을 이야기를 하자고 정했다. 우리가 부부로써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아이가 겪을 혼란은 더욱 클 것이기 때문이다. 게이 유튜버 분께서 미국 여행에서 만난 자식이 있는 게이 부부에게 아빠가 두 명인 걸 어떻게 설명하냐는 말에 그들은 심플하게 답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돼요. 그런 건 학교에서 배우는 거예요.'


우리가 아이에게 가정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사회의 시선이다. 비단 동성애에 한정 짓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많은 가정이 있다.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있을 수도 있고, 할머니만 있을 수도 있고, 소년소녀가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건 확실컨데, 행복은 사회에서 '정상가족'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행복이 특정 집단에 갇히지 않게 말이다.


2016년 미국의 아동 건강 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Same-Sex and Different-Sex Parent Households and Child Health Outcomes)에 따르면, 부모의 성별 구성 자체는 아이의 건강이나 정서, 학습 발달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눈에 띄는 차이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동성부모 가정의 부모들이 비교적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점이다. 이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그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아이가 걱정된다'라는 댓글을 달기 이전에 동성부부의 자녀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에 일조하는 것이 어떨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