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중요성
*비교적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저번 화에서 분명히 다음 화 주제로 동성 부부가 한국에서 사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 이 국가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건 장점이 하등 없다. 솔직히 선택하라고 하면 누가 힘든 삶을 고르겠나. 나도 편하게 국가가 인정한 'Offical' 부부가 되어서 보조생식술에 큰돈 들이지 않고 자식을 낳아서 아이가 다칠 때는 어떻게 대처할지, 갑작스러운 사고로 내가 떠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지 고민하지 않고 살고 싶다. 하지만 어떡해. 여자가 좋은... 아니다. 와이프가 좋은 걸?
욕심부리지 말라고? 버스에 탄 노인 분들께 양보하지 않으려 악을 쓰고 자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이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로 동성애자에게 막말을 퍼붓는 사람을 이웃으로 두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안다. 세상 대부분이 이성애자임을 알고 있고, 사회를 개인의 취향으로 구성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무식한 게 용기다. 오늘도 못 말리는 그들의 호승심 위로 담배꽁초를 던지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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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화나 있었는데, 다시 마음을 진정시켜야겠다.
4월 둘째 주에 일본 병원과의 상담이 있었다. 병원에서 상담 시간 리스트를 주었고, 마침 점심시간에 걸리는 타임이 있어서 선점했다.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능숙한 편이라서 중국어 통역가를 요청드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이메일로 구글 미트 링크가 날아왔다. 평소보다 5분 일찍 자리를 뜨는 게 눈치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호다닥 회의실로 들어갔다. 전화를 받으니 중국인 통역을 해주시는 중년의 여성 분과 머리가 하얗게 센 전형적인 일본 할머니 의사 분께서 들어와 있었다. '쎈세 하잇!'. 일본 애니를 좋아해서 그런지 익숙한 단어들이 들려오자 마음이 편해졌다. 오타쿠인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상담 내용은 별 게 없었다. 최근 생리주기에 대한 질문과 나팔관 조영술 검사를 받아오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병원에서는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고 병원 내규를 읽어 주었던 덴마크 병원 상담과 다르게 굵직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내 질문을 받아주는 자리 같았다. 수술 국가가 덴마크에서 일본으로 바뀌었기에 시험관 대신 인공수정을 먼저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해당 병원은 자연적인 방식을 추구해서 인공수정을 할 때는 여타 다른 주사를 맞지 않는다고 안내받았다.
나팔관 조영술이 뭔지 몰라서 상담이 끝난 후 찾아봤다. 나팔관이 막혀 있는지 확인하는 난임 검사라고 한다. 유의해야 할 점은 아프다고 했다. 이런....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고통스러웠지만, 나에게는 유독 아프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유방암 검진하는 기계도 아팠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이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생리 끝나고 3,4일 후에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인공수정 시도는 다음 달로 미뤄졌다. 5월에 일본으로 떠난다. Good luck.
최근에 아이를 양육하고 있거나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는 여성 퀴어 모임의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에 눈이 동그래졌다. 임출육 동지들이 이렇게 많다니! 역시 참여하기 잘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하물며 퀴어 (예비) 어머님들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시작 시간이 지나자 기존 운영진 분들께서 앞으로 모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안내해 주셨다. 이윽고 자기소개 순서가 다가왔다. 끝에 앉아 있었기에 마지막이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유머러스한 사람임과 동시에 진지하게 임출육을 계획하는 멋진 젊은이임을 표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 찼다.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퀴어들이 출산을 선택하기 때문에, 퀴어 자녀의 다양성을 주고자 이십 대 가난한 레즈비언으로써 출산을 결심했다..'
웃음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오니 뿌듯함이 올라왔다. 내면의 어둠을 받아들이면 유쾌함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 뒤로는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눴다. 아이를 갖게 된 과정과 힘들었던 점이나, 결심하게 된 이유 등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지만 모두 퀴어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선했다. 여태 누군가를 만나 임신을 계획 중이라고 하면 늘 '해명'에 가까운 설명을 해야 했는데, 여긴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 같은 목표를 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톤이 올라갔던 거 같은데, 티가 많이 나진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기존 멤버분들끼리 아이들과 함께 회동을 가진 적이 있다고 하셨다. 부럽다! 나도 키즈카페에 아이를 데려갈 수 있도록 일단 '임출'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육아의 어려움은 그다음이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막상 현실이 되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나 또한 그런 상태다. 지금으로서는 아이의 우는 소리조차도 비발디의 사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제발 신이시여. 동성애자에게도 육아라는 고통의 철퇴를 내려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