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게 되나요
수험생 땐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대학이었는데, 막상 입학하고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고등학교 내내 1 지망이었던 전공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1학년은 으레 그래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끝내주는 새내기 시절을 보냈고, 노름에 대가를 치르듯이 나의 학점은 국가장학금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수준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정규 교육과정 12년, 나라에서 정한 국수사과영 따위를 공부하다가 전공을 갑자기 결정하는 게 말이 되나? 그 전공을 해본 적도 없지 않은가. 해본 적 없는데, 무슨 수로 적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불만만 쌓여갔으나 해결되는 건 없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누군가에겐 평범했을 2학년 여름방학은 나에겐 선택의 시간이었다. 전과를 해야 하나. 하지만 전과는 학점이 높아야 할 수 있다. 전공이 맞지 않아서 성적이 안 나왔다. 전공이 맞지 않으니 전과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전과는 학점이 높아야 해. 돌고 도는 팽이처럼 고민하던 청년은 이런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두 달 동안 나는 인생의 답을 찾고자 도서관에 갔다. 철학자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 던데, 똑똑한 그들은 답을 알지 않을까. 전공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흔한 청년에게 길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은근하고 노골적인 희망이었다.
결국 철학에 'ㅊ'자도 알지 못하고 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철학 입문서적들로 점철된 여름방학은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다. 이 책을 봐도 맞는 말이고, 저 책을 읽어도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맞는 말은 없고, 틀린 말도 없다. 어쩌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우린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게 아니라 누가 더 빈틈없이 논리구조를 설계하는지 대결하는 거다. 그게 그 순간에 답이다. 이렇게 초입을 길게 뺀 이유는 난 앞으로 내가 맞다는 논리를 펼칠 거고, 이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온 김에 욕심을 더 부려 보자면, 독자 중에 설득당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그랬다. 살아가는 건, 단어를 정의하며 거라고. 들어본 적 없을 거다. 왜냐하면 내가 한 말이니깐. 내 단어장을 살짝 열어보자면 나에게 '사랑'은 상대방의 끼니를 걱정하는 거고, '자유'는 할 일을 다 끝내야만 주어지는 해방감이고, '가족'은 가족관계증명서에 올라와 있어서 채무 관계를 함께 지는 사이다. 사람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건, 각자의 단어를 정의해 가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법'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추상적인 단어에 비해 이건 쉬워 보인다. 법이 법이고, 국가는 국가지. 그 또한 맞다.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강제력 있는 모든 규범을 통칭하는 개념이기에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된 '법률'과는 차이가 있다.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라는 말처럼 나에게 법이란 '존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고 국가란 '법령을 통해 국민을 지켜야 하는 주체'이다.
철학이란 어려운 이야기를 했으니, 간단한 질문을 해보고자 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으며, 매우 쉽다.
Q. 대한민국에는 동성애자가 있나요?
답은 '네'이다. 대다수가 답을 맞혔으리라 추정된다. 틀렸으면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각 국가의 성소수자들이 동일한 비율로 나타나는 점을 미루어 전문가들은 한국에 성소수자가 4.6%, 약 230만 명으로 추정한다. '에이, 말도 안 돼. 그 정도나 있다고?'. 필자도 확실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공식적인 조사를 한 적이 없다.
2025년 인구총조사에서는 처음으로 동성 배우자 등록이 가능해졌다. 성소수자들도 성소수자가 얼마나 있을지, 어쩌면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 말이다.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국가가 성소수자를 옹호한다며 비판했다. 이에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은 국정감사에서 '통계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며 이 거울은 자기가 원치 않는다고 해서 빼고 비출 수는 없다고,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게 본인들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묻고 싶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존재를 지울 수 있나? 성소수자 가족은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인데, 나 또한 여기에 존재한다. 평일마다 눈을 떠서 지루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소득세가 나가는 걸 보고 눈물을 흘리는 성소수자 직장인으로 이곳에 존재한다.
성소수자는 분명히 사회에 섞여 함께 공존한다. 이에 성소수자는 한국에 없다고 대답할 정치인과 지식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깐.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을 보호하지 않는 건, 국가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거다. 내가 정의한 법, 내가 생각하는 국가는 이런 게 아니다. 책임 소재를 회피하는 거다. 마치 나의 난자 채취 관련 약 처방을 거부한 병원들처럼 말이다.
구매한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만족했다는 후기를 남길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댓글로 필자를 평가할 수 있는 거처럼 말이다. (악플이라면 말이 다르지만) 언젠간 이 절이 삶을 영위하는데 진심으로 어려움을 준다면, 그래서 나의 가족이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불편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떠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떻게든 고쳐 쓰고 싶다. 난 구멍 난 옷을 몇 번이고 꿰어 입는 사람이니깐.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깊이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창씨개명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지우고자 했지만, 우리는 지우면 지울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우린 애초에 굴복하는 민족으로 태어난 적이 없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싸워서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과 힘내보겠다.